올 추석 극장가도 ‘사극=흥행’ 이어갈까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02 14:47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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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대 추석 흥행작 《광해》《관상》《사도》 계보 이을 유력 후보에

 

추석 연휴다. 9월30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연휴는 10월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최대 열흘간 이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이어졌던 지난 5월 징검다리 황금연휴 때 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95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1000만 명 정도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 결과도 기대해 볼 만하다. 게다가 명절은 여름 휴가철, 연말과 더불어 극장가 최대 성수기 중 하나로 꼽히는 대표적 기간이다. 전통 사극과 휴먼 코미디, 액션 블록버스터 등 다양한 상차림이 준비된 올해 최대 황금연휴 기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미리 전망해 본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은 이병헌 © CJ 엔터테인먼트

 

《남한산성》, 《킹스맨: 골든 서클》과 대격돌

 

오는 10월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은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는 정통 사극이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청나라가 파죽지세로 공격해 오자 임금과 조정이 이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 《남한산성》이 원작. 2007년 출간 이후 7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군사적 열세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47일간 남한산성에 고립됐던 임금과 신하들 사이의 갈등, 그중에서도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이 극의 중요한 축이다.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해 청나라와의 화친을 택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과, 청의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고민은 깊어간다. 그 사이 논쟁의 내용이 무엇이든 무사로서의 본분을 더 우선하려는 무장 이시백(박희순)과 평범한 백성 날쇠(고수) 역시 각자의 신념과 선택대로 움직인다. 명분인가, 실리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치열한 갈등 앞에 나라의 운명은 위태롭다.

 

오랜만에 만나는 묵직한 톤의 정통 사극이라는 점, 이병헌과 김윤석 등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고루 갖춘 스타들이 총출동했다는 점은 《남한산성》의 강점이다. 특히 극장가 대목마다 대작 사극과 시대극은 전통적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상품이다. 순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라는 점도 기대를 높인다. 다만 웃음기라곤 없는 진중한 극의 분위기, 승리의 역사가 아닌 치욕의 역사로 알려진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흥미롭게도 《남한산성》은 작품 외적으로도 외세의 적을 상대해야 한다. 《남한산성》보다 한 주 앞서 9월27일 개봉하는 《킹스맨: 골든 서클》 얘기다. 이 영화는 추석 연휴 극장가에 불어닥칠 가장 강력한 해외 태풍으로 꼽힌다. 2년 전 개봉한 《킹스맨》의 속편으로, 1편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6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역대급 히트작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콜린 퍼스·태런 에저튼·마크 스트롱까지 주연 배우들이 내한하면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덕분에 예매율은 개봉 3일 전 이미 50%를 돌파했다.

 

영화는 전편에서 죽음으로 퇴장했던 해리(콜린 퍼스)의 재등장, 영국의 비밀정보국 킹스맨 요원들을 돕는 미국의 비밀정보국 스테이츠맨 요원들이 겪는 문화 차이, 전 세계를 주무르는 범죄 악당 골든 서클의 수장 포피(줄리안 무어) 등 풍성한 이야기들을 추가하며 사이즈를 키웠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액션과 유머 감각은 여전한 반면, 볼거리가 늘어난 대신 재미는 전편보다 덜하다는 입소문이 일찍 퍼졌다. 개봉 초반 이 영화가 뚫어야 할 난관이기도 하다.

 

추석에 개봉하는 영화들

 

흥행 복병 《아이 캔 스피크》와 《범죄도시》

 

복병은 9월21일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다. 개봉 3일 차에 이미 5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웃음과 감동’이라는 실패 없는 작전으로 전 연령대를 아우르며 순항 중이다. 벌써부터 조심스레 천만 관측도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20년간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제기한 할머니 옥분(나문희)과 그를 상대하는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벌이는 콤비 플레이를 유쾌하게 펼친다. 특별한 거래를 통해 시작된 두 사람 사이의 영어 수업을 중심으로 웃음을 유발하던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옥분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극 중 옥분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입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공무원 재민으로 대변되는 국가는 그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인 조력자가 된다. 이웃은 옥분을 힘껏 끌어안는다. 모두가 그에게 지금껏 제대로 몰라서, 속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를 통해 전쟁범죄로 짓밟힌 소녀들끼리 혹은 소녀의 과거와 현재가 서로의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는 방식 이상의 것을 제시한다. 옥분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말들을 반복해서 듣는 건 유의미한 영화적 경험이다. 결국 그들에겐 그 말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복병은 《남한산성》과 같은 날 개봉하는 《범죄도시》다. 2004년을 배경으로 신흥 범죄 조직의 보스 장첸(윤계상)과 그에 맞서는 강력계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이야기를 그렸다. 중국에서 넘어온 왕건이파·흑사파 등의 조직을 대한민국 강력반 형사들이 일망타진한 실화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마동석은 카메오로 등장해 결국 그가 최대 수혜자가 됐던 《베테랑》(2015)의 ‘아트박스 사장’ 이미지, 《부산행》(2016)에서 얻은 ‘의리 넘치는 덩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다. 최초로 악역에 도전한 윤계상의 연기도 합격점. 시원시원하게 펼쳐지는 액션을 주무기이자 강점으로 내세운 것에 걸맞게, 개봉 전 일반 관객 시사회 등을 통해 통쾌한 영화라는 평이 쏟아졌다.

 

이 밖에 틈새를 겨냥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성영화들과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하면 추석 극장가는 그야말로 개봉 전쟁터다. 전생을 기억하며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는 특별한 아홉 살 앙뚜와 그를 위해 헌신하는 스승 우르갼의 여정을 그린 《다시 태어나도 우리》, 거제여상 학생들의 댄스 스포츠 도전기를 담은 《땐뽀걸즈》,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소년 오웬의 감동 실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과 같은 양질의 다큐멘터리들이 즐비하다. 1979년 미국 샌타바버라에 사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20세기의 면면을 돌아보는 《우리의 20세기》, 엄마가 남기고 떠난 생일카드들을 받아보며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영화 《해피 버스데이》 등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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