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에 반기 든 괴짜 경제학자 노벨상 받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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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에 영화 찬조출연까지…노벨경제학상 받은 리처드 세일러 누구?

 

‘인간은 때때로 불합리하게 행동한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로 들리지만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애써(?) 무시해오던 사실이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는 이 지점을 바로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합리하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해도 제한적이며, 때론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도 있다. 인간이 지극히 합리적이며, 이익과 손실을 따져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경제적 선택을 한다고 전제하는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과 정면 배치되는 인간관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 심리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며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설명한다.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가정들을 경제적 의사결정 분석에 결합한 그의 연구는 인간의 합리성을 맹신하는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세일러 교수는 그의 연구에 대해 “경제의 행위 주체가 사람이며, 경제 모델이 그러한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H. 세일러(72)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10월9일(현지시간) 시카고대학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벨상 이전에 이미 대중적으로 ‘뜬’ 경제학자

 

세일러 교수는 행동경제학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는 가운데 대중과의 연결점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그는 노벨상 수상 이전에 이미 대중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몇 안 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넛지(Nudge)》,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 등을 통해 간결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로 행동경제학을 알려왔다. 이들 책은 그를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올렸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꾸준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TV쇼 속 참여자들의 행동을 분석한 논문을 몇 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가 직접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한 괴짜 천재 4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2015)에서 깜짝 찬조출연을 한 것이다. 영화에서 세일러 교수는 블랙잭 게임 장면에 등장해, 연달아 공을 넣은 선수가 이번에도 공을 넣을 것이라 확신하는 ‘뜨거운 손의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미국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짧지만 중요한 장면이었다. 

 

(왼쪽)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캐스 선스타인 교수와 공동 저술한 베스트셀러 《넛지》의 표지. (오른쪽)세일러 교수가 깜짝 출연한 영화 '빅쇼트'의 포스터.

 

현실 경제 참여도 적극적인 세일러 교수

 

세일러 교수 자신도 미 의회에 적극적으로 출석해 ‘넛지’ 이론을 활용한 자신의 방법론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전 총리는 별도의 행동경제학 스터디 팀을 꾸려 정부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발표된 미국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저축 장려책 ‘점진적 저축증대 프로그램(Save more tomorrow)’이 그 결과물이었다. 넛지의 공동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로 영입돼 미국의 경제 정책에 일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09년 여름휴가를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 화제가 된 바 있다.  

 

72세의 나이에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활용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평소 현실 경제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가를 자처해온 그는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하다”며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상금으로 900만(한화 약12억6400만원) 스웨덴 크로나를 받게 될 예정이다.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며 “최대한 불합리하게 사용하겠다”고 답변했다. ‘인간은 불합리하게 행동한다’는, 그에게 결국 노벨상의 영예를 안겨준 학문적 명제를 염두에 둔 답변이었다.  

 

세일러 교수는 미 뉴저지 태생으로, 로체스터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와 MIT 경영대학원을 거쳐 현재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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