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식민의 상징 된 식민지 악기 ‘기타’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7 10:02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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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기타’의 사회사, 그리고 1960년대 칠레의 민중 음악

 

우리를 둘러싼 ‘사소한 것들’의 역사는 소위 ‘거시사(巨視史)’의 부산물 내지는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정도로 치부되곤 한다. 오늘 이야기의 중심이 될 이 물건의 역사 역시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 물건을 온 세계 여기저기로 끌고 다닌 정치적 힘들이 쇠하고 또 바뀌는 동안, 이 물건은 유유히 지구의 대부분을 점령해 냈다.

 

책 이름으로도 유명한 ‘총·균·쇠’와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오늘 다루게 될 이 물건은 그것들보다 더 평화롭게, 하지만 잔혹하게 다섯 세기가 넘도록 인간사를 지배해 왔다.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악기 ‘기타’에 대한 이야기며, 그에 얽힌 지구 반대편의 한 나라, 칠레의 몇몇 음악들에 관한 이야기다.

 

© 사진=Pixabay

 

기타, 칠레 민주화와 新자유주의의 상징

 

열두 줄짜리 포르투갈 기타도, 일곱 줄을 쓰는 러시안 기타도, 프렛(음계 구분을 위해 지판의 표면을 구획해 놓은 금속 돌기) 사이사이가 동그랗게 파여 있어 농현(한국 전통 음악의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과도 같은 특이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베트남 기타도 모두 다 기타다. 하지만 기타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스패니시 기타 혹은 클래식 기타라 불리는, 나무통에 여섯 개의 나일론과 구리줄이 붙은 모양을 떠올릴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15세기 말 에스파냐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사람과 권력의 이동만이 아니라 생물과 미생물, 언어, 이념, 그리고 기타를 포함한 여러 물건들의 이주를 뜻했다. 《갈란드 라틴아메리카 음악사전》에 따르면, 16세기 초 쓰인 스페인어로 된 사료들에 이미 푸에르토리코를 비롯한 ‘신대륙’의 침략지에서 기타의 조상 혹은 전신(前身)이랄 수 있는 비웰라(vihuela)에 대한 기술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기타는 침략자들 중에서도 선발대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전선에는 늘 군악이 함께하는 법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렇게 등장한 이국의 악기들은 시간이 지나며 각 지역 특유의 색을 입고 변형되었다. 예를 들면, ‘기타론 칠레노(Guitarrón chileno)’라 불리는 25현 악기가 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타론 칠레노는 ‘칠레의 기타’로서 독자적인 형태로 진화해 지금껏 이어 왔다. 민족음악학자 에밀리 핀커튼에 의하면, 이 기타론 칠레노는 굴곡의 칠레 근현대사 속 민속·민족음악 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악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정권의 장기 군부독재가 종결된 1980년대 말부터 칠레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악기로 떠오르며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스패니시 기타 역시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의 여러 동네로 침입했고, 각 지역의 음악 생태계 속에서 휘저어지며 각 민족문화의 일부로 섞여 들어갔다. 1960년대 점진적 민주화의 희망 아래서 한창 피어나던 칠레의 민족·민중운동은 말 그대로 ‘민족적이면서 민중적인’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수반했다. 여기서 기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칠레를 비롯한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이루어지던 이러한 민중적 가요 지향 움직임과 그에 연관된 음악적 시도들을 일컬어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이라는 표현을 쓴다. 칠레의 음악가들은 시간적으로나 영향력 측면에서나 이 음악-문화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칠레에서 있었던 이른바 ‘누에바 칸시온 칠레나(nueva canción chilena)’의 주인공들 중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이들로는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나 빅토르 하라(Victor Jara)와 같은 솔로 싱어송 라이터들이 있다. 모두 기타 한 대를 들고 노래한다. 인티 이이마니나 킬라파윤 등 밴드들의 구성 속에서도, 케나(일종의 피리)·삼포냐(국악기 생황과 유사하게 생긴 목관악기)들 사이에 기타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가져왔던 도구인 기타가, 이제는 탈제국·탈식민주의적 태도를 표출하는 일종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1973년의 군부 쿠데타 이후 인티 이이마니가 유럽으로 망명해 발표한 《비바 칠레!》란 앨범 표지에도,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격랑을 거쳐온 뒤 발표한 2014년의 앨범 전면에도 기타가 상징처럼 그려져 있다.

 

인티 이이마니의 1974년 앨범 《비바 칠레!》(왼쪽)와 2014년 발표된 앨범의 표지에 기타가 상징처럼 그려져 있다.

쿠데타의 현장에서 체포되어 살해된, 누에바 칸시온의 상징과도 같은 빅토르 하라는 《매니페스토(manifesto)》라는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기타의 민중성·기층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민에서 탈식민의 진영으로, 가진 자들에서 못 가진 자들의 진영으로 기타라는 하나의 사물을 전유(專有·특정한 문화적 요소들의 원 의미를 ‘빼앗아나가는’ 행위를 의미하는 학문적 용어)해 나가려는 의지가 간결하게 가사로 표현된 한 예일 것이다.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배윤경 저,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속의 번역 버전

필자가 기타·노래의 작법을 연구하던 습작 시절 참 많이 들었던 전범(典範) 중 하나가 이 빅토르 하라의 노래들이다. 글을 쓰며 다시 찬찬히 듣고 감탄하며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우리 한반도에는 기타 소리가 언제, 어디서 처음 울렸을까?

 

개인적으로는 19세기 말에 이미 6현, 혹은 7현 기타가 (혹은 기타 소리가 녹음된 어떤 것이라도) 한반도 어딘가의 소리경관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누가 알까. 물론 그 해답은 음악인류학자, 음악사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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