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건드렸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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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달러 포상금 내건 플린트의 反트럼프 활동 까닭

 

취임 이후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둘러싼 ‘러시아 게이트’로 위기를 겪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워싱턴에서는 탄핵이 이야기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은 막무가내 발언과 트윗을 쏟아내며 예측 불가능한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뜨거웠던 ‘트럼프 탄핵론’도 지금은 소강상태다. 그런데 갑자기 대담하게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는 큰손이 나타났다. 

 

10월15일 워싱턴포스트에는 모두가 주목할 만한 광고가 실렸다. “트럼프를 탄핵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최대 1000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자사에 실린 광고를 기사화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광고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트럼프를 비판했다. 파리협정 이탈과 제임스 코미 전 FBI국장 해임을 강행한 트럼프를 ‘오늘날 미국의 명백한 적’으로 표현했다. 

 

1000만 달러의 포상금을 건 사람은 미국 성인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도 이 광고를 게시했는데, 리트윗이 6만회를 넘어서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자신에 대한 탄핵 포상금을 건 이 트윗에 ‘트위터 정치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는 큰손이 나타났다. 성인업계의 대부인 래리 플린트가 직접 포상금을 걸고 탄핵 정보 수집에 나섰다. © 사진=AP연합

 

“음란물 장사꾼이지만 예산 균형을 더 잘 맞출 수 있다”

 

플린트는 트럼프를 탄핵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근거 없는 엉터리 정보를 계속 확산하고 있는 점, 자신의 친인척을 정부의 주요 위치에 앉힌 점, 자신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정부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점 등이 그렇다. 트럼프의 당선을 둘러 싼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부정한 거래에 관한 모든 것을 밝힐 필요가 있는 점도 탄핵 근거 중 하나였다. 

 

플린트는 정치와 매우 밀접한 인물이다. 스스로가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한 과거가 있다. 당시 그는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의 380억 달러 적자예산 인책론으로 생긴 불신임 투표와 함께 실시되는 후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음란물 장사꾼이 주지사가 되고 싶어 한다 해서 문제 될 것이 있겠는가. 새크라멘토(캘리포니아주 수도)에 앉아 있는 멍청이들보다는 내가 예산 균형을 더 잘 맞출 수 있다"며 특유의 독설을 내뱉으며 선거전을 시작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플린트는 정보 포상금을 오래 전부터 내걸었다. 포춘지에 따르면 플린트는 1970년대부터 “의원의 불륜 관계를 증명하는 정보를 공급하는 자에게는 최대 100만 달러를 지불한다”라고 광고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미트 롬니의 소득 신고 비리를 파헤치는 등 보수파 정치인의 비리 폭로에 앞장서왔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한지 오래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플린트가 트럼프의 당선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미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는데 트럼프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당시에도 트럼프의 성추문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으니 이번 포상금 제안이 처음은 아니었던 셈이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플린트가 보유한 허슬러의 가치는 2014년 기준으로 약 5억 달러(약 5600억원)에 달한다. 지금은 출판사업 외에도 라이센스 사업, 부동산과 카지노 사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사업가 플린트의 자금력은 어마어마하기에 1000만 달러의 포상금은 별 문제가 아니다. 

 

10월15일 워싱턴포스트에 래리 플린트가 게재한 광고. “트럼프를 탄핵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최대 1000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정치인의 민낯 드러내기 위한 포상금 제도

 

플린트의 反트럼프 입장의 근원은 결국 허슬러와 공화당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는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인 자서전적 영화 ‘민중 대(對) 래리 플린트’의 실제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 성인잡지인 펜트하우스 발행인으로 성공했지만 음란물과 표현의 자유라는 충돌 지점 탓에 끊이지 않는 법정 싸움을 벌여왔다. 심지어 법원 밖에서 총격을 받고 휠체어에 의존하는 풍파를 겪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치권, 특히 보수정당인 공화당과 등을 지고 민주당을 지지한 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2004년 허슬러 발행 30주년을 맞아 ‘와이어드’와 인터뷰를 가진 플린트는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게다가 (재선을 노리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좋지 않다. 따라서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것 같은 마술을 해야 할 판이다. 그 탓에 성인업계가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추고 싶을 것이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격에 이골이 났던 그였다.

 

스캔들과 관련한 포상금을 내걸었던 까닭은 그 자체가 상품성이 있기 때문이지만, 정치인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싶은 개인적 욕심과도 맞물렸다. 특히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정치인들을 그가 노린 이유다. 2007년 허슬러는 워싱턴에서 고급 매춘조직을 13년간 운영한 죄로 고발된 데보라 팰프리의 고객 중 데이비드 비터 공화당 상원의원이 포함된 사실을 폭로했다. 비터는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 4명을 뒀으며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했던 정치인 중 하나였다. 비터의 전화번호는 2004년부터 팰프리의 기록에 나타났다. 그는 “이건 매우 심각한 잘못이다”고만 말했을 뿐 매춘조직과의 구체적인 관계를 실토하지도 않았고 의원직을 내놓지도 않았다.

 

플린트의 반트럼프, 반공화당 노력은 어떤 결말을 낳게 될까. 그는 “탄핵은 불쾌한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를 권력에서 끌어내리지 않으면 앞으로 3년은 더욱 악화된다. 이건 애국자로서의 의무다”고 강조했다. 플린트의 이런 호소에 응답하는 제보는 과연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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