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에 놓인 ‘집밥’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9 10:44
  • 호수 146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유진의 시사미식] 요리 자체를 잊어가는 인구수 점점 늘어나

 

경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편의점은 불황을 모른다. 수요가 많아지면 투자가 뒤를 잇기 마련. 연구와 개발이 집중되면 재화나 서비스는 진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간편식의 경우가 두드러진다. 도시락이 주인공이다. 맛있어지고, 다양해지고, 가격 만족도까지 완벽하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온기다. 온기가 없으면 향이 없고, 향이 없으면 뇌가 완벽하게 만족하기 어렵다. 음식은 혀로 먹는 게 아니다. 뇌와 소장이 먹는다. 분명 훌륭한 한 끼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진정한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레인지에서 강압적으로 올린 건 ‘온도’지 ‘온기’가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찬밥 먹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새 밥 지어줄게”라고 말씀하셨던, 그런 온기를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선택은 고통을 수반한다. 인간에게 선택이란 단순히 좋은 것을 고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선택을 노동력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선택 후의 후회도 가세한다.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기회비용도 따지기 마련이다.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또다시 딜레마에 빠진다. 매일의 식사 선택이 노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진화한 ‘편의점 도시락’의 대공세

 

판단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경기가 안 좋아지고 소득이 줄어들고 미래가 불확실해지면 소비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식에 몰린다. 편의점 도시락이 주목받는 건 이 때문이다. 도시락이 등장했던 초기에는 별 염려가 없었다. 맛이 ‘정말’ 없었기 때문이다. 설익은 밥, 짜디짠 장아찌류, 트레이를 반도 채우지 못한 양 등등. 아무리 빅 모델을 내세워도 단지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먹는 사료라는 인식을 버릴 수 없었다. 비난 여론도 들끓었다. 초기 도시락 모델에 나섰던 연예인들은 개그와 뒷담화의 대상이 돼야 했다.

 

하지만 편의점 브랜드들은 시장을 일찍 읽었다. 불경기와 ‘혼밥족’ 증가를 미리 점치고 과감한 투자에 들어간다. 연구·개발과 요리연구가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화한 만큼 고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급증한 수요는 결국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퀄리티가 좋아지니 고객의 만족도는 더 높아졌고, 인기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수란을 넣어 비벼 먹는 한우 소고기 도시락, 열두 가지 반찬을 넣어주는 12첩 반상 도시락, 부대찌개나 김치찌개처럼 국물을 함께 넣어주는 찌개 도시락 등등. 편의점만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치를 끌어들였다.

 

게다가 싸다. 여기에 편의점 브랜드마다 대여섯 가지 도시락을 내놓다 보니 골라 먹을 수 있는 스펙트럼도 아주 넓다. 최고의 장점은 시간이다. 매장에 들어가 도시락을 고르고 계산한 뒤 데우는 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식사 시간에 투입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샐러리맨과 학생들에게 이만한 종합선물세트는 없다. 마지막 쐐기는 칼로리다. 편의점 도시락에 대해 깊이 분석해 보면 또 다른 인기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고칼로리. 식사는 결국 에너지를 채우기 위함이다. 성인 남성 기준 대략 2700kcal를 섭취해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런데 편의점 도시락은 보존을 위해서라도 기름에 튀기고 볶고 지진 음식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끼 식사의 평균 칼로리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는 매력은 중독을 부른다. 여기에 국물을 먹어온 습성 때문에 생긴 컵라면 동반 섭취는 칼로리 폭탄을 만든다. 만족도와 구매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집밥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 ‘우리’

 

반면 ‘집밥’은 향후 20~30년 내 멸종 위기 음식이 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너나 할 것 없이 생산활동에 참여한다.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요리할 여유가 없어진다. 홍콩이나 대만에 주방 없는 아파트가 있단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생산현장에 빼앗긴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가족을 모셔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온기와 생존 중 하나만 고르라면 백이면 백, 생존을 선택할 것이 뻔하다. 정말 슬픈 사실은 요리 자체를 잊어가는 인구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집안의 조리법을 물려받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 고추장·된장·간장·김치·젓갈 등 대물림되던 음식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집밥을 대신할 간편식이 많아졌다는 사실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퇴근 무렵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를 가보라. 국·찌개·나물 등 집에서나 맛볼 수 있던 찬들이 3~4팩 1만원에 불티나게 팔린다. 재료를 사서 다듬고, 씻고, 무치고, 볶고, 지지던 노동을 대신해 준다. 시나브로 상당수 집밥의 맛과 간이 닮아가고 있다. 이 불가항력의 트렌드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필자의 어린 시절, 달그락 달그락 소리에 잠을 깬다. 눈을 비비고 부엌으로 가면 벌써 고소한 기름내와 달달한 바닷내가 코를 간질인다. 월남한 아버지 덕분에 유독 우리 집 밥상에는 비린 것 빠질 날이 없었다. 유별난 식성을 가진 아버지는 매일 생선을 구웠다. 연탄아궁이를 부지깽이로 꺼낸 뒤 석쇠 위에 고등어나 갈치, 또 가끔은 꽁치를 올려 구웠다. 생선에 소금을 훌훌 뿌리면 희한하게도 소금이 닿았던 그 자리만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부풀어 오르고 노르스름하게 변한다. 생선 굽는 향이 온 집 안에 퍼지기 시작할 때쯤 나머지 반찬들이 행렬을 잇는다. 계란을 톡 깨서 들기름 반, 참기름 반으로 부친 계란프라이. 입이 짧은 아들을 위해 밥솥 안에서 쪄주시던 계란찜. 스테인리스 대접에 계란 두 알을 깨 넣고 휘휘 저은 뒤 약간의 새우젓과 채 썬 파를 듬뿍 올려주시던 계란찜은 지금도 집밥 랭킹 3위 안에 든다.

 

잊지 못할 나물도 하나 있다. 가지. 냄비밥 뜸을 들일 때 건성으로 던져 놓고는 누룽지 냄새가 날 때 다시 꺼낸다. 용암처럼 뜨거운 녀석을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간장과 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고춧가루를 넣어 주물럭댄다. 매끄러운 촉촉함이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집밥 앞에는 이상하게도 우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우리 집은 된장찌개도 좀 남달랐다. 다른 집처럼 멸치를 넣고 푹 우린 국물에 바로 된장을 풀지 않고, 먼저 감자를 볶는다. 감자를 기름과 함께 달달 볶다가 색이 변하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된장을 풀어 넣었다. 그래야 더 진해지고 톱톱해지고 감칠맛이 넘쳐난다. 다른 집 된장찌개와 깡장의 중간쯤 되는 녀석은 유난히 짠맛이 강하다. 그 덕에 밥과 섞거나 비벼 먹게 된다. 커다란 국그릇으로 밥을 옮기고 걸쭉한 찌개를 서너 숟가락 넣어 가장자리부터 살살 긁듯이 비벼 먹으면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날은 과식이 분명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