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투하 당시 출근길에 ' 꽝'… 모두 싹 타버렸어"
  •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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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원폭피해 심포지엄…원폭 피해자들 '귀환 생활' 구술증언

그 당시 빗방울이 떨어졌지요. 그래서 일본말로 욕을 했어요. 또 기름을 뿌렸다고. 다른 곳은 기름을 부어 태웠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검은 구름이었나봐. 난 그때 비를 조금 맞았던 것 같은데…”

당시 15세의 나이로 근무하던 히로시마 철도역에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한 A씨에게 그날은 지옥이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 숨진 한국인은 5만여 명, 전체 피폭자의 10%에 이른다. 피폭 이후 현재까지 살아남은 한국인은 2400여 명에 불과하다. 

 

원폭 투하 72주년을 맞아 지난 10월20일 열린 창원대의 ‘합천 원폭피해자 구술증언과 역사 컨텐츠의 생성’ 심포지엄에서 피해자들은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다.  ​

 

10월20일 창원대 사회과학대학의 '합천 원폭피해자 구술증언과 역사 컨텐츠의 생성'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는 서울대 오은정 교수(좌)와 창원대 남재우 교수(우) ⓒ 이상욱 기자


당시 16세로 집에서 폭탄을 맞은 B씨는 집이 무너져 유리파편이 몸에 박히는 상처를 입은 채 찾아들어 갔던 방공호와 육군병원에서 참상을 목격했다. “방공호는 집에서 가까웠습니다. 2학년 학생이 퉁퉁 부은 얼굴로 들어왔습니다. 큰 문이 날아와 얼굴에 박혔는 데, 피가 절절 흘러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당시 방공호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

 

그는 이어 “그 다음에 뛰어 와 물을 찾는 사람은 타버렸는 지 머리카락이 없었지요. 시내에서 오는 사람들은 옷 입은 사람도 없었고 남녀를 구분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새까만 숯덩어리였지. 물을 줬더니 마시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그만 죽더라고요"라고 어제 본 듯 그 당시를 회상했다. 

 

피폭됐지만 생존한 한국인 3만여명 가운데 2만3000여명은 한국으로, 2000여명은 북한으로 귀환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원폭 피해도 자녀들에게 대물림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일제 착취 하에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했거나 전시에 강제 동원된 이들은 피폭 이후 한국으로 귀환했지만 돌아와서도 고단한 삶을 살았다. 이들은 고향에서 친척한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거나, 한국어를 못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며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여성들은 가난해서 ‘입 하나 덜기 위해’ 시집을 가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C씨는 “결혼할 때 중매쟁이들이 원폭으로 일본에서 나온 처자라서 균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중매를 해 멀리 시집갔습니다”며 피폭이 결혼마저 가로막았다고 강조했다. 

 

또 D씨는 구술 증언에서 “자녀 중에 종양이 발견된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손자 중에 손가락이 기형이고 피부병이 심하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5월 국회에서 통과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 원폭피해 2·3세가 적용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다. 

 

지난 8월6일 합천군 영창리 일원 합천원폭피해자 복지관에서 열린 72주기 원폭희생자 추모 위령제 모습. ⓒ 합천군 제공 자료사진

 

 

뒤늦은 치료비 보상, 원폭 피해는 '현재진행형'

 

일본 정부는 1957년 원폭 피해자 보상 법률을 제정해 피폭자들을 위해 무료 건강진단과 치료를 보장하고 점차 의료 수당과 특별 수당, 장례비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 법률은 ‘일본에 거주 중인 자’로 대상을 한정했다. 때문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이 법률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1967년 한국원폭피해자 협회가 결성되고, 1971년 피폭자 손진두씨가 일본에 건너가 피폭자 특별조치법을 한국인 피폭자에게도 적용해줄 것을 제소하면서 일본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2015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원폭 투하 당시 태내에서 피해를 입은 이홍현씨가 낸 치료비 지급 소송에서 한국 거주 원폭피해자들에게도 일본 정부가 치료비를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창원대 사회과학대학의 합천 원폭피해자 구술증언에는 합천 지역 피폭자 23명의 증언이 실려 있다. 이와 관련, 오은정 서울대 교수는 “한국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 문제는 ‘이미 지나간, 너무 오래된’ 것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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