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정권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추악한 진실
  • 조해수·안성모·조유빈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0 13:17
  • 호수 146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수단체 통해 여론조작, ‘돈’ 미끼로 탈북민까지 이용…실무자 허현준 전 靑 행정관 구속, ‘화이트리스트’ 수사 막바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10월19일 구속됐다. 시사저널의 ‘어버이연합 게이트’ 단독 보도 후 1년6개월 만이다. 허 전 행정관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을 압박해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자금 지원을 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또 다른 한 축인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러나 검찰은 추 사무총장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어서 ‘화이트리스트’ 수사 역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허현준 전 행정관이 10월1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화이트리스트란 이명박(MB)·박근혜 정부가 친정부 성향의 단체에 자금 지원 등 특혜를 몰아 준 것을 말한다. 검찰은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 등을 동원해 대기업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받은 200억원의 자금을 특정 보수단체에 지원한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시시저널 보도 후 1년6개월 만에 허현준 구속 

 

화이트리스트 의혹은 시사저널이 지난 2016년 4월 단독 보도한 ‘어버이연합 게이트’로부터 시작됐다. 본지는 2016년 4월12일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4월19일 ‘보수집회 알바비, 경우회·유령회사가 댔다’, 4월22일 ‘“청와대 행정관이 집회 열라고 문자 보냈다”’ 기사를 연이어 게재했다. 이 기사를 통해 세월호 반대 집회를 비롯한 각종 보수 집회에 ‘알바’로 동원된 탈북자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으며, 어버이연합의 보수 집회를 움직이는 자금줄이 대한민국 재향경우회·전경련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핵심은 자금줄을 움직이는 ‘윗선’이었다. 본지는 허 전 행정관을 비롯한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직접 집회 지시를 내린 사실을 밝혀냈다.

 

추 사무총장은 어버이연합이 ‘박근혜 보위단체’임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추 사무총장은 기자에게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대통령 보위단체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박근혜 보위단체’다”면서 “어버이연합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그녀의 보위단체였으며, 그녀가 대통령직을 떠나도 ‘박근혜 보위단체’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규탄 집회를 열었다. 2014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7·14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 의원) 규탄 집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버이연합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MB의 홍위병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에 출범했다. 하지만 어버이연합이라는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MB 정부가 출범한 이후다. 어버이연합은 과격한 집회·시위를 통해 이른바 ‘아스팔트 보수’를 자처하면서 기존의 보수단체들을 밀어냈다.

 

‘아스팔트 우파의 대부’로 불리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어버이연합에 대해 “당시 어버이연합은 우리 사무실에 2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마다 버스 2대를 타고 몰려와서 ‘국민행동본부 해체하라’고 외치고 아주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 어버이연합이 무쇠로 만들어진 사무실 간판을 망치로 두드렸는지 찌그러뜨렸다. 심지어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찾아와서 서울기동대 경비 1개 중대가 와서 정리하기도 했다”면서 “나는 배후조종 세력이 있다고 확실히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10월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 2010년부터 어버이연합 추적

 

어버이연합이 주목을 받은 것은 집회·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이 ‘아스팔트 보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2010년경 이 단체를 추적 보도한 바 있다(2010년 1월26일자 ‘사법부 공격 선봉에 선 그들은 누구인가’ 기사 참조).

 

어버이연합은 2008년 4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을 때, 회원 50여 명을 동원해 한남동 조준웅 특검팀 사무실로 찾아가 삼성을 비호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북한에서 온 조문단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어버이연합이다. 같은 해 9월 흑석동 국립현충원 앞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묘를 설치하고 “DJ 묘 파내서 평양으로 이장하라”며 모형 불도저와 굴착기로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10월에는 진보개혁 성향 인사들의 시민사회 정치 참여를 위한 ‘희망과 대안’ 창립행사장에 몰려가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며 소동을 벌여 창립 행사를 무산시킨 적도 있다. 2010년에는 광우병 사건을 보도한 MBC 《PD수첩》이 무혐의 처리되자 연일 법원과 판사들의 집 앞으로 몰려가 판사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빨갱이’라며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판사의 화형식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다.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는 휘발유를 뿌리며 위협을 가하기까지 했다. 같은 해 1월22일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달걀을 던진 것도 어버이연합이었다.

 

어버이연합의 튀는 행동이 계속되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국정원이 뒤에 있다’‘정치 세력이 든든한 배경이다’ ‘누가 돈을 대주고 있다’ ‘돈을 받고 움직인다’ 등이다. 당시 어버이연합은 자금 출처를 묻는 기자에게 “회비에서 활동비 전액을 충당한다”고 밝혔다. 추 사무총장은 “재정국장이 100원짜리 하나까지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어르신 돈 모아서 사무실 넓히는 것을 보면 기자들도 놀란다. 노인들의 투철한 국가관이 군자금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관제데모 윗선 청와대·국정원 지목 

 

추 사무총장은 자신들을 도와주거나 뒤를 봐주는 세력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앞으로는 솔직히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곧 현실화됐다. 어버이연합은 MB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국정원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대가로 각종 관제데모를 주도했다. 시사저널이 앞서 보도한 어버이연합의 과격 시위가 국정원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MB 시절 국정원은 2009년 12월 “보수단체들이 국정 버팀목으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고정적 자금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주요 대기업과 보수단체의 1대1지원을 연결해 주는 매칭사업을 추진했다. MB 정부의 보수단체 지원 금액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도 11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정원의 보수단체 자금 지원에는 국정원장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2016년 5월10일 “이병기 비서실장 국정원장 시절, 보수단체에 창구 단일화 요청”이라는 단독 기사를 통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기 직전에 보수단체 대표 등과 회동을 갖고 이들에게 ‘창구 단일화’를 요구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장에서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기기 보름 전인 2015년 2월12일, 국민행동본부·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재향경우회 등 내로라하는 보수단체의 대표들과 회동을 갖고 “우파 진영이 하나로 뭉쳤으면 좋겠다”면서 “집회를 각 단체에서 나눠서 할 것이 아니라 한 단체에서 하는 것이 어떠냐. 돈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그 창구에다 (돈을) 쉽게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1월 박영수 특검에 출석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은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라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을 움직인 것은 결국 ‘돈’이었다. 어버이연합 측은 2016년 4월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 기자에게 어버이연합 외의 다른 보수단체들도 허 전 행정관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허 행정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 지원하는 예산을 자르거나 보류했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 측은 “말 그대로 지금 이 시민단체들이 다 걔(허 전 행정관)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면서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 보수단체들 사이에도 경쟁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허 전 행정관의) 지시를 안 들었을 경우 ‘예산 지원하는 거 다 잘라라. 책정된 거도 보류시켜라. 못 준다’ 이런 식으로 허현준이가 (자금줄을) 다 잘랐다”고 덧붙였다.

 

어버이연합은 보수단체 후발주자로서 이름을 알리고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스폰’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여론을 호도할 수 있는 충직한 단체가 필요했을 것이다. 과격한 폭력 시위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던 어버이연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한 셈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돈’이라는 미끼를 이용해 어버이연합에 접근했고, 어버이연합 역시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무자로는 시민단체를 잘 아는 인물이 활용됐다. 허 전 행정관이 적임자였다. 허 전 행정관은 전북대 88학번으로 1993년 전북대 총학생회장과 전북총련 의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범청학련 사건과 서울대 범민족대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다. 그러나 허 전 행정관은 1990년대 후반 노선을 갈아타 보수진영에 참여했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전향386’과 ‘시대정신’이라는 단체의 핵심 멤버였다. 진보와 보수를 오간 이력 때문인지 허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입성했고,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16년 4월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사 앞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여론 조작 위해 푼돈 미끼로 탈북민 이용

 

허 전 행정관을 비롯한 청와대가 관제데모를 지시하고 이 지시를 받은 어버이연합이 시위를 주도했다. 그런데 이 관제데모가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단체로 움직여줄 인원이 필요했다. 어버이연합은 이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으로 충당했다. 탈북민들은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고, 이 때문에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띤다. 그렇다고 해서 어버이연합의 집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극우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단지 ‘알바비’로 나오는 일당 2만원을 받기 위해 별 고민 없이 집회에 참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5월 19대 대선에서도 탈북 알바가 동원됐다. 장성민 전 의원이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북콘서트에 탈북 알바가 대거 동원된 것이다. 시사저널은 당시 현장에서 탈북민들이 일당을 지급받는 장면을 촬영해 보도한 바 있다(1월19일자 “[단독 영상] 대선 판에 동원된 알바들 일당 지급 장면 단독 포착” 기사 참조).

 

어버이연합은 생활고를 겪고 있는 탈북민들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어버이연합은 보수단체 후발주자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선 돈과 정치적 뒷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버이연합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충성심과 이를 보여줄 수 있는 과격한 폭력시위였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요구와 맞아떨어졌다. 즉,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여론 조작을 위해서 어버이연합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로 최하층민 취급을 받고 있는 탈북민들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추악한 진실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