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일본’ 아베의 꿈, 실현 기반 다졌다
  • 일본 도쿄 = 임수택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1 16:08
  • 호수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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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원 선거 승리로 헌법 개정 길 열려, 북한 문제 명분 삼아 방위능력 키워

 

10월22일 중의원 선거는 예상대로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 초반만 해도 일부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자민당이 고전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선거 구도를 자세히 보면 자민당의 승리는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선거 초반 고이케 유리코 도쿄지사가 이끄는 ‘희망의 당’이 깃발을 올리자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지난 7월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지사가 이끈 ‘도민퍼스트회’가 55석을 확보하고, 고이케 대표를 지지하는 지지세력까지 합해 79석으로 전체 127석 중 과반을 넘기는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이케 지사가 정치적으로 기대되는 인물로 부상했지만, 고이케 브랜드가 아베의 이미지와 전국적 지지 기반인 자민당 세력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희망의 당’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이케 지사의 판단력 부족이었다. 고이케 지사가 민진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고즈 리키오 회장을 만나 회담을 하고 민진당 전원이 고이케 지사가 주도한 ‘희망의 당’으로 옮긴다는 보도가 있을 때만 해도 일본 정가는 술렁였다. 국민들 사이에도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일본 중의원 선거가 치러진 10월2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 자민당 당사에 도착해 의원 당선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를 붙이고 있다. © Xinhua


 

하지만 고이케 지사의 “헌법 개정과 안전보장 정책이 일치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 배제한다”라는 발언으로 분위기는 급변했다. 민진당 내 헌법 개정 반대의 선봉에 선 에다노 유키오가 즉시 탈당해 입헌민주당을 만들면서 선거 분위기가 바뀌었다. ‘희망의 당’에 먹구름이 다가왔고 민진당, ‘일본 유신의 회’, 사민당, 공산당 등 다수의 야당은 더 분열돼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헌법 개정 검토 단계 들어선 아베 정권

 

선거 구도에서 자민당은 이길 수밖에 없었다. 승리는 당연했고 과반 확보 여부가 관심사였다. 게다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강한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국민이 늘기 시작했다.그 결과,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465석 중 284석을 얻어 과반인 233석을 훌쩍 넘겼다. 연립정권인 공명당의 29석을 합하면 313석으로 개헌 가능한 310석 이상을 확보했다. 

 

‘희망의 당’의 자멸, 고이케 지사의 발언으로 야기된 민진당 분열의 원인은 헌법 개정 문제였다. 아베 총리 못지않게 강경보수자인 고이케 지사는 헌법 개정 지지자다. 자민당 시절 국방대신까지 지냈다. 이번 선거에서 고이케 지사는 어떤 면에서는 아베 총리를 지지해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희망의 당’은 자민당과 정책적으로 크게 차별화하지 못했다. 반면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자민당, ‘희망의 당’, ‘일본 유신의회’ 등과 달리 ‘호헌’을 명확하게 주장한 입헌민주당은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급조된 당이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고 제1야당이 됐다. 

 

‘헌법 개정’과 ‘호헌’은 작년 7월 참의원 선거와 10월22일 중의원 선거는 물론 향후에도 일본 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아베 총리의 필생 숙원 사업, 어쩌면 아베 총리의 정치적 대부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염원인 헌법 개정의 토양은 다져졌다.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 개헌할 수 있는 의석수를 확보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예상대로 헌법 개정 추진에 시동을 걸었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희망의 당’과 ‘일본 유신의회’ 소속 야당 의원들에게도 헌법 개정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개헌 절차는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개헌 초안을 제안하고 국회 내에서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다. 그런 다음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면 국민투표를 갖는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힘을 합치면 여기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공명당은 헌법 개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일본 유신의 회’와 ‘희망의 당’과도 연대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2013년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만 해도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쳐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하는 헌법 개정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2014년도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갔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자민당은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했다. 그래도 헌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반을 넘었다. 그런데 10월22일 중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헌법 개정문제는 가능·불가능의 차원을 넘어 검토단계에 들어섰다. 

 

10월24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의원 465명 중 답변자 453명의 88%가 개헌에 찬성했다. 자민당 97%, 공명당 86%, ‘일본 유신의 회’ 100%, ‘희망의 당’ 88%, 입헌민주당 25%였다. 헌법 개정 내용 중에는 9조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교육무상화, 긴급사태 발생 시 각의에서 긴급 사태를 선언할 수 있다, 가족과 혼인관계, 지방자치 강화 등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있다. 

 

 

강력한 미·일 관계 구축…관심에서 밀린 한국 

 

9조는 유지하면서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정에 대해서는 자민당 74%, 공명당 38%, ‘일본 유신의 회’ 91%, ‘희망의 당’ 11%, 입헌민주당 2% 그리고 사민당과 공명당은 100% 반대다. 자위대 명기 조항 삽입에 필요한 중의원 3분의 2인 310석을 얻기 위해서는 공명당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9조 개정이나 자위대 명기 조항 삽입에 대해 공명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다진 아베 총리의 강한 의욕을 공명당이 언제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아베 총리의 꿈은 분명하다. 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국가를 만들고 강한 일본을 건설하는 것이다. 크게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헌법 개정, 특히 9조의 개정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다. 군사·경제·사상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은 강력한 미·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북한의 미사일 및 핵실험을 명분 삼아 방위능력을 높여 가고 있다. 

 

아베 총리의 관심은 오직 미국과 중국에 있다. 북한 문제를 상황 이상으로 집중 부각시켜 강한 일본을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관심 대상 순위에서 밀려 있다. 양국 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한·일 문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로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나마 북한 문제로 공조가 기대되지만 대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제재를 우선하는 아베 총리의 기본 시각이 달라 당분간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재정립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아베 총리의 입장 차이가 커 대화 복원은 쉽지 않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생각은 확고하다. ‘불가역적’이다. 협상은 이미 끝났으며,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냉각된 한·일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원론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우호적인 관계 개선은 간단치 않다. 먼저 만나야 한다. 그리고 서로 협의하고 협상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문제를 우선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 교류, 인적 교류, 문화 교류 등 무너진 우호관계의 저변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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