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잊어버린 우리의 전통 축제
  •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1 19:12
  • 호수 146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월 마지막 날이 할로윈데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할로윈 행사에 필요한 의상을 준비하느라 한참이나 인터넷을 뒤져야 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영화에서나 봄 직한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귀엽기 그지없다. 유치원에서 영·미권 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할로윈데이를 행사로 치르는 것 같다. 그런데 유치원들이 단옷날은 챙기는지 궁금하다.

 

할로윈을 즐기는 것은 유치원 애들뿐만이 아니다. 작년 할로윈데이에 이태원에 나갔다가 골목마다 코스프레 복장의 젊은이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미국 대도시에서 젊은이들이 기괴한 복장(좀비나 칼에 찔린 모습 등 섬뜩한 복장일수록 높이 평가됨)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대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유치원에 다니던 10여 년 전에 할로윈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있다. 아하! 젊은이들에게 할로윈은 유치원 때부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익숙한 축제가 된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수년째 반복적으로 할로윈데이의 유래를 찾아본다. 기억력이 나쁜 탓도 있지만 아일랜드에 살았다는 이름도 생소한 켈트족의 역사와 문화가 와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할로윈 복장의 젊은이들에게 할로윈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즐거운 놀이를 할 수 있는 날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다수의 언론에서 할로윈데이를 가벼운 기삿거리로 다루는 정도에 이르게 된 데엔 상술의 영향이 크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라는 밸런타인데이(2월14일)나 남자가 여자의 사랑을 확인하는 화이트데이(3월14일) 그리고 애인 없는 솔로들이 씁쓸한 날에 짜장면을 먹는다는 블랙데이(4월14일) 등과 마찬가지로 마케팅의 산물일 가능성을 의심해 보게 된다. 

 

꼰대 같은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의 축제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된다. 며느님들에게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은 군대 유격이나 마찬가지로 고통의 시간으로 인식돼 있다. 기실 명절이 돼도 예전처럼 먼 친척까지 모이지 않고 차례나 제사라는 형식을 간단히 끝내고 긴 연휴를 이용해 식구끼리 단출하게 여행을 가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과장하자면 명절의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는 박제화 단계에 이른 듯하다. 실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날들이 필요하다.

 

명절은 일상의 권태로운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기능을 해야 한다. 흉측한 변장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할로윈보다 우리의 명절을 현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을 국수주의라고 치부하지 말자. 문화기질 역시도 DNA 속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의미도 모르는 외국 명절 문화를 흉내 내는 것보다 우리의 명절을 축제화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동안 역사를 역사 속에만 가둬버린 문화정책이 문제다. 

 

찬 음식을 먹는 한식(寒食)날을 한식(韓食)과 연결해 찬 우리 음식을 즐기는 내용으로 포장해 젊은이들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5월 단오는 축제의 장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전통 내용을 이미 갖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정부는 뒷전에 서고 민간문화단체가 주도했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의 머리를 빌려 보자.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