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가락국 마지막 왕의 무덤이 산청에 있는 이유는
  • 문경보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5 09: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해김씨 문중, 신라에 나라 넘긴 구형왕(양왕) 추모 '추향제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시점인 기원(紀元)을 전후로 낙동강 유역에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살았던 변진 지역에 가야의 여러 나라가 있었다. 그중 AD 42년에 김해 지역에서 건국된 나라가 가락국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락국을 세운 사람은 김수로왕이었으며, 그 왕비는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다. 가락국은 6가야의 맹주로서 주변의 다른 가야들 중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6세기경 신라의 세력팽창에 의해서 가락국의 후신으로 알려지고 있는 금관가야는 결국 멸망한다.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신라에 나라를 양위한 뒤 낙동강을 건너 현재 행정지명인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에 있는 왕산에서 은거하다 한많은 생을 이별한다.

 

전설에 따르면 구형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흙이 아닌 돌로 무덤을 쓰라"고 유언했다. 521년 왕에 올라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군림한 구형왕은 양왕이라고 불리며 돌무덤에 묻혀 있다. 구형왕과 왕비의 유물은 조선시대 1793년(정종 17년)에 왕산에 있는 사찰인 왕산사 나무상자에서 발견됐다. 

 

이후 구형왕의 후손인 김해김씨 문중은 석총 옆에 수호와 재실을 겸한 덕양전(德​讓殿)을 세우고 매년 봄(음력 3월16일)과 가을(음역 9월16일)에는 구형왕(양왕)을 추모하는 향례(饗禮)가 치러져 오고 있다. 

 

올해 음력 9월14일인 지난 11월4일에도 어김없이 산청 덕양전에서는 추향제례가 성대히 열렸다.

 

 

 

덕양전 추향대제 ⓒ 산청군 제공

 

 

1793년 산청서 양왕 유물 발견된 이후 봄·가을 향례


경남도로부터 모범이 되는 우수선현 제례행사로 선정​되기도 한 덕양전 춘·추향 제례는 전통문화보존과 자긍심 고취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이날 제례에는 가락종친회 종원들을 비롯해 관내 기관단체장과 문중·유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초헌관에는 김병욱 국회의원, 아헌관에는 김선유 전 진주교대총장, 종헌관에는 황재규 산청경찰서장이 맡았다. 

 

지난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덕양전은 홍살문과 함께 직사각형의 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영전각, 안향각, 추모재, 동재, 서재, 해산루 등으로 꾸며져 있다. 

 

덕양전과 사적 214호인 구형왕릉이 있는 산청 금서면 화개리 왕산 일대는 최근들어 허준 순례길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경사진 언덕의 중턱에 층단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가야의 일반적 묘지와는 다르다. 

 

경사진 지형에 수만 개의 잡석으로 모두 7단으로 쌓아올려진 정상부는 타원형의 봉분으로, 높이 7.15m에 달한다. 지난 10월9일에는 덕양전의 입구인 임덕문도 만들어져 한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