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사망’에 유아인 등 동료 연예인들 곤욕…어긋난 추모 문화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6 09:03
  • 호수 146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말 진정성 있게 애통해하는지 지켜보겠다’고?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벌어졌다. 10월31일, 한 곳에선 전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주혁에 대한 애도 행렬이 이어졌고, 한 곳에선 송중기-송혜교 커플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렸다. 두 곳을 모두 오가야 하는 동료 연예인들도 고통스러웠고,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도 혼란스러웠다. 이런 와중에 유아인이 크게 비난받는 일이 벌어졌다. 유아인은 김주혁을 애도하며 ‘애도는 우리의 몫; 부디 RIP-’라고 SNS에 올렸다. 문제가 된 건 ‘RIP’였다. ‘Rest In Peace’의 약자로 영어권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관용어다. 네티즌은 고인을 추모하는 글인데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 지나치게 스타일에 신경 쓴 것 아니냐, 이런 지적으로 유아인을 비난했다.

 

논란을 더욱 키운 사건이 발생했다. 유아인이 춤을 춘 것이다. 송중기 결혼식 때문이었다. 비공개 행사였지만 중국의 한 매체에 의해 결혼식과 피로연 모습이 모두 공개됐다. 신랑신부 지인들이 흥겨운 시간을 갖는 피로연 때 연예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아인이 장쯔이와 잠시 춤을 춘 것이 문제가 됐다. 이미 ‘RIP’ 논란이 있던 터여서 네티즌이 더욱 예민하게 본 것이다. 네티즌은 유아인이 애도 메시지만 올리고 빈소에 조문도 가지 않았다며, 애도 메시지에 진정성이 없다고도 질타했다. 결국 유아인이 ‘나의 시대에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반박글을 올리고, 직접 빈소를 찾아 비통한 모습으로 조문하는 이미지가 공개된 후에야 논란이 잦아들었다.

 

사실 애도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든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자기 뜻대로 하면 그만인데, 대중이 너무 예민한 측면이 있었다. 또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어쨌든 결혼은 경사다. 장례식은 물론 엄숙하게 치러야 하겠지만, 결혼식도 그 나름의 의미에 맞게 치러져야 한다. 특히 장쯔이라는 해외 귀빈까지 하객으로 온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선 흥겨운 분위기에 맞춰주는 것이 하객과 신랑신부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너무 과도하게 장례식 분위기에 맞추라는 강압적 시선이 있었다.

 

10월31일 배우 유아인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송중기-송혜교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 사진=뉴스1

 

추모하지 않으면 해명해야 하는 분위기

 

김주혁 장례식으로 구설수에 오른 건 유아인만이 아니었다. 컬투의 정찬우도 가수 선미가 추모의 의미로 올린 국화꽃 이미지에 무심코 ‘꽃 예쁘네’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곤욕을 치르고 사과했다. 그는 사과한 이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심지어 송혜교도 구설수에 올랐다. 경사의 당사자가 장례식에 가지 않는 건 우리의 풍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중기는 신혼여행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김주혁의 빈소를 찾았다. 그러자 인터넷에선 ‘왜 송혜교는 가지 않은 것이냐’는 물음이 나왔다.

 

정준영과 《정글의 법칙》 제작진도 도마에 올랐다. 정준영은 《1박2일》에서 김주혁과 아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나왔었고, 정준영의 라디오방송에 김주혁이 직접 출연해 응원해 주기도 했었다. 네티즌은 정준영이 왜 빈소에 나타나지 않는 거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알고 보니 사고가 나기 전에 《정글의 법칙》 촬영을 간 상태였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남태평양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준(準)원시생활을 체험하는 내용이다. 그런 촬영을 나갔으면 일정을 다 마치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영상제작은 공동작업이고 특히 해외 로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투입되는 일이어서 개인 사정으로 촬영 일정을 깨기는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준영을 찾았다. 방송사 측에선 제작진과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통신이 끊어진 오지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촬영팀과 연락 불능이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긴 하지만, 오지 촬영의 특성을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제작진에 대한 비난까지 나타났다.

 

결국 《정글의 법칙》 제작진이 연락 재개 후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입장에 따르면, 촬영팀이 통신이 끊어진 지역으로 들어갔었고, 게다가 그 주변 지역에 있는 전화국마저 화재로 불통 상태가 됐었다고 한다. 그나마 기상 악화로 인해 현지 촬영팀이 예정보다 촬영을 일찍 마치고 통신 가능지역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김주혁 사망 소식을 하루 일찍 전할 수 있었고, 정준영은 바로 귀국 준비에 들어갔다며 다만 직항편이 없어 입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정준영의 소속사는 정준영이 비보를 접한 후 현지에서 ‘큰 슬픔에 빠지며 오열’했고,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김주혁이 안치된 납골묘를 찾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런 시시콜콜한 발표가 왜 필요할까? 그만큼 네티즌의 성화가 컸다는 이야기다. 김주혁 빈소를 찾지 않으면 마치 패륜아인 것처럼 몰아갔고, 슬픔이 아닌 다른 정서를 표출한 사람을 단죄했다. 단죄받지 않으려면 틀림없이 애통해하고 있다는 발표를 구체적으로 하고 인정을 받아야 했다. 빈소를 찾은 사람도, 얼마나 애통한 마음을 표시하는가를 하나하나 분석당했다. 확실하게 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가 이뤄졌다. 이 자체가 확실하게 우는 모습을 보이라는 사회적 압력이다. 빈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느라 잠시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연예인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웃으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11월2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우 김주혁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난감해진 건 연예인이다. 평상시에도 남들이 인정할 정도로 애통한 모습을 보이는 게 쉽지 않은데 이번엔 경사까지 겹쳤다. 차태현·이미연 등 많은 연예인들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빈소를 찾아야 했다. 대중이 ‘정말 진정성 있게 애통해하는지 지켜보겠어’라고 눈 부릅뜨고 있는 마당에 결혼식 하객으로 가는 것은 가시방석에 앉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획일적인 경향이 있다. 하나의 가치, 하나의 정서를 집단적으로 강요하고, 어긋나는 사람에겐 사회적 처벌이 가해진다. 보수적 경향도 있어서 연예인에게 ‘예의’라는 가치가 강요된다. 예의 중에서도 추모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언론이 장례식장에 나타나는 연예인들을 한 명 한 명 중계하면서 네티즌의 감시를 돕는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장례와 관련된 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게 슬퍼하는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야 화를 면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풍경일까?

 

장례식 취재와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2011년 SG워너비 출신 채동하가 사망했을 땐 사진기자 풀(POOL)이 빈소 첫째 날만 취재하며 별도의 조문객 취재를 하지 않는다는 언론사 간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반면에 이번엔 날마다 조문객 중계가 이루어졌고 네티즌은 그의 애통해하는 정도를 평가했다. 그리고 나타나지 않은 자, 불손한 자를 단죄했다. 추모를 강요하는 살벌함,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TOP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