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현장, 그곳은 무법천지였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6 09:21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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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건설사들, 경쟁업체 비리 찌르고 돈으로 표 매수 ‘진흙탕 싸움’

 

서울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의 역사 내 플랫폼을 비롯해 2·3번 출구는 GS건설의 ‘자이 프레지던스’ 광고판으로 도배돼 있다. 구반포역 주변은 얼마 전까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 건으로 시끄러웠던 주공1단지 1·2·4주구(住區)가 위치한 곳이다. 반포 주공1단지 재건축은 기존 5층 또는 6층 건물 2120가구를 헐고 여기에 최고 35층 5388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공사비만 2조6400억원을 웃돌아 역대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불렸다.

 

수년 전부터 GS건설이 공을 들였기에 초반 판세는 GS건설에 유리했다. 하지만 사업설명회를 열고 본격적인 수주전에 돌입한 뒤, 현대건설이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역대급 사업을 놓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건설사가 입찰경쟁을 벌였기에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잡음이 터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단적인 게 현대건설이 내건 ‘이사비 7000만원 지원’이다. GS건설은 현대건설이 지원하는 이사비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품·향응에 해당한다며, 주무부처인 국토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논란은 커졌다. 그 결과 국토부는 일정 부분 GS건설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대건설의 이사비 지원이 과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9월27일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시공사 선정 투표에서 반포 주공1단지 주민들은 시공사로 현대건설 손을 들어줬다. 전체 조합원 2194명이 투표에 참여한 임시총회에서 현대건설은 1295표를 얻어 886표를 얻은 GS건설을 눌렀다.

 

올 하반기에 시공사를 선정한 반포동 주공1단지, 잠원동 한신4지구, 잠실동 미성크로바 아파트(왼쪽부터) © 시사저널 고성준, 최준필·연합뉴스

 

건설사들 금품 살포, 향응 제공 수면 위로 드러나

 

왜 주민들은 시공사로 현대건설을 선택했을까? 투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후,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GS건설의 꼼수’를 비판했다. 주민들의 입장을 종합하면 이렇다.

 

GS건설과 현대건설 모두 사업설명회를 호텔에서 열거나, 각종 기념품을 제공하는 등 시공사 선정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평균 연령대가 70대인 노년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입주민들은 7000만원 상당의 이사비를 지원한다는 현대건설의 제안에 마음이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씨는 “GS건설이 마음껏 자금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하자 국토부 힘을 빌려 현대건설을 견제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또 GS건설이 사외이사인 권도엽 전 국토부 장관의 힘을 빌려 친정인 국토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푼이라도 더 지원해 주는 건설사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GS건설의 ‘판 걷어차기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왔다. 부재자 사전투표율이 82%를 기록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시공사를 결정하는 재건축 임시총회 사전투표율은 보통 40~50%에 불과하다. 조합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미 사전투표에서 현대건설을 지지하는 몰표가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반포1단지 주변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반포 주공3단지 시공권을 딴 GS건설보다 강남권에 랜드마크급 아파트를 지으려는 현대건설의 절실함이 (주민들에게) 더 와 닿았다”면서 단지 내 서울시 땅을 500억원대로 싸게 매입해 일반분양분을 높이겠다는 GS건설 계획에 대해서도 주민들 대부분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수주 실패로 GS건설은 홍보·설계비용 등을 합쳐 모두 300억~400억원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400억원이었던 GS건설 입장에서는 한 사업장에서 300억~4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한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다.

 

반포 주공1단지 시공권 경쟁은 숱한 뒷말을 낳게 만들었다. 일부 대형 건설사들의 무리한 수주 활동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도 그때부터다. 부산·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의 도를 넘는 수주 활동은 투표가 끝난 뒤에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었다. 대형 건설사들 모임인 한국주택협회가 10월17일 도시정비사업 공정경쟁 실천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GS건설이 빠진 이날 회의에서 대형 건설사들은 과도한 이사비와 이주비 지원 등 양적인 경쟁을 중단하고, 주택 품질 향상 등 질적인 경쟁을 도모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10월11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교통회관에서 미성크로바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 조합원 투표가 열렸다. 행사장 앞에서 GS건설과 롯데건설 관계자들이 열띤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주택건설업계 자정결의 서둘러

 

주택협회가 서둘러 자정(自淨) 결의라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회원사들의 수주전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틀 앞선 10월1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와 주민 간 금품이 오간 정황이 발견된 것도 주택업계에 깊은 시름을 안기고 있다. 한신4지구는 앞서 시공사를 정한 서초구 반포동 주공1단지, 송파구 잠실동 미성크로바와 함께 하반기 ‘빅3’ 사업장으로 꼽혔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시공권은 결국 롯데건설이 차지했다. 롯데건설은 이외에도 서울 대치2지구·방배14구역에 이어 신반포13·14차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강남권 여러 지역에서 시공권을 따냈다.

 

그런데 한신4지구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GS건설이 경쟁자인 롯데건설의 금품 살포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이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롯데건설은 앞선 미성크로바 시공권 경쟁에서 GS건설을 누른 데 이어, 한신4지구 수주 홍보전에도 일찍 뛰어든 상태였다. 반포 주공1단지와 미성크로바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GS건설로서는 한신4지구마저 패할 경우 수주 물량 확보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0월15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GS건설은 1359표를 얻어 1218표를 얻은 롯데건설을 141표 차로 누르고 시공사로 최종 결정됐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GS건설은 조합원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는 순간 언론에 ‘매표 시도 근절을 위한 신고센터 운영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신4지구에서 신고센터를 운영한 지 6일 만에 금품·향응 제공으로 의심되는 25건이 접수됐다”고 언론에 밝혔다.

 

이날 GS건설이 밝힌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롯데B/M 특별관리자’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한신4지구 재건축조합 이사·대의원·조합원을 A플러스부터 C등급으로 분류해 최고 1000만원에서 500만원의 계약금을 준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조합 이사 ‘OOO씨’와 체결한 약정 내용에는 당사자가 지지자 50명 이상을 이미 확보했으며, 부재자 확보 시 1인당 100만원의 별도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 적혀 있다. 또 활동비를 별도로 지급한다는 것과 시공사로 선정될 경우 당사자에게 계약금의 3배인 3000만원 지급, 재건축조합 상근이사로 추대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현재 상근이사인 또 다른 조합원은 시공사 선정 후 조합장 추대를 약속했다고 적혀 있다.

 

진위 여부를 놓고 현재 업체 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건설사들의 금품 살포 및 각종 향응 제공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한 조합원이 경찰에 금품·향응을 신고함에 따라 경찰은 10월23일 서울 잠원동 롯데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쟁사인 GS건설도 자체 신고센터에 접수된 증거 목록을 경찰에 넘긴 상태다. 이와는 별도로 경찰은 강남권 10여 곳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시공권 수주와 관련한 비리 혐의를 포착함에 따라 수사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필요하다면 해당 건설사에 대한 특별수사도 벌이겠다는 움직임이다.

 

GS건설이 운영한 불법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설사 제공 금품 © 사진=GS건설 제공

 

“건설사들 ‘내로남불式’ 폭로전 과연 옳은가”

 

이러자 국토부도 10월30일 도시정비사업 제도 개선안을 내고, 재건축 이사비 지원 상한 규모를 150만원으로 제한했다. 또 입찰 단계에서 건설사가 시공과 관련한 사항만 제안하고 지금처럼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등에 대해서는 제안할 수 없도록 했다. 건설사뿐만 아니라,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업체가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책임을 지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일단 이번 논란을 통해 그동안 음성적으로 진행돼 온 수주활동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업계 관행을 대형 건설사 스스로가 고발했다는 것은 특이점이다. 건설업계 내부에서 “반포 주공1단지와 한신4지구 등 주요 수주전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활동해 온 GS건설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으로 폭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전직 대형 건설사 도시정비사업 담당 직원은 “승자(GS건설)가 패자(롯데건설)를 경찰에 신고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면서 “과연 해당 수주전에서 롯데건설만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도 “자정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이런 전략을 쓰는 기본 취지가 자사의 영업활동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업설명회를 유명 호텔에서 연 뒤 참석자에게 고가의 기념품을 주는 일이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신4지구에서도 고가의 선물세트가 오갔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주 과정에서 ‘수주기획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OS (Outsourcing)요원 관리 및 수주 판촉활동을 총괄하는 수주기획사는 시공권 수주전에서 ‘첨병’ 같은 역할을 한다. OS요원은 재건축조합 구성부터 조합원 성향·요구사항 등을 사전에 파악하고, 일선 조합원들에게 각종 향응을 제공하는 일을 도맡아 진행한다. 조합의 내부 분위기 및 수주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이른바 ‘감도 체크’를 하는 것도 수주기획사의 몫이다.

 

 

“상대측 건설사 비리 사실 가져오면 보상하겠다”

 

부재자 투표는 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을 위해 미리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엄밀히 말하면 사전투표다. 그런데 이 부재자 투표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에서 운용하는 홍보요원(현장에서는 OS요원이라고 부름)들이 조합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투표소까지 따라다니며 득표활동을 하는 것이다. 말이 비밀선거지, 사실상 매표행위인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아웃소싱 업체와 계약해 금품을 뿌리고 있다. 때문에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증거를 없애 ‘꼬리자르기’를 하거나 하청업체에 책임을 미루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건설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증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많다”면서 “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강해지면 재건축 비리에 대한 수사와 비리 척결이 한층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신8차에서 만난 한 주민도 “양쪽 건설사가 지정한 OS요원이 하도 집을 찾아와 귀찮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결과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면서 OS요원을 동원해 표를 매수하는 경우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조합이 발송한 시공사 투표용지를 임시총회 3~4일 전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투표권=돈’이라는 등식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로선 OS요원을 동원해 자사 선정 여부를 손쉽게 판단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금품 제공을 위한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잠원동 한신4차단지 내 상가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단지를 걸어 다니다 보면, OS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만나 ‘상대측 건설사 비리 사실을 가져오면 보상하겠다’는 말을 건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공사가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조합의 업무를 지원해 주는 정비사업체에 돈을 주고 조합원 명부를 통째로 넘겨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GS건설이나 롯데건설처럼 전체 매출에서 주택사업이 40~50%를 차지하는 건설사로서는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체 간 입찰 담합을 벌이는 일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리 관행은 끊을 수 없는 것일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국토부가 발표한 시공사 선정 개선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호권 주거환경연구원 사무처장은 “아파트 재건축 비리의 온상인 정비사업체에 대한 처벌 규정이 빠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수주 활동 위반 시 누가 처벌하느냐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주 활동 제한은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형 건설사들에만 좋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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