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박정희 기념에 목을 매며 세금 낭비할 때 아니다”
  • 구미=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7 08:56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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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前 대통령 탄생 100주년 행사’ 찬반 논란 일고 있는 구미市

 

“광주 가 봤능교? 길마다 김대중으로 도배가 돼 있단다. 봉하마을은 또 어떻고. 구미랑 비교가 안 될 만큼 잘돼 있다 카데. 근데 와 구미만 갖고 그라는데?”

 경북 구미시에서 추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구미 시민들은 심심치 않게 ‘김대중과 광주’ ‘노무현과 봉하마을’ 얘기를 꺼냈다. 전직 대통령을 고향에서 기린다는 게 그리 비난할 일이냐는 불만이 섞여 있었다. 이들은 전국적인 반대여론에 부딪혀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이 일부 축소·폐지된 데 대해서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었으면 문제없이 진행되지 않았겠느냐”고도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기념사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는 11월14일인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2주 앞둔 10월31일 찾은 구미는 겉으로 보기에 예년에 비해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 보통 이 무렵이면 각종 기념행사들로 지역 전체가 들썩거렸지만,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전국적으로 기념행사 전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진 탓이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구미시는 애초에 40억원을 편성했던 올해 100주년 기념행사 예산을 13억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그동안 박정희 ‘탄신’ 100돌이라 불렀던 명칭을 ‘탄생’ 100돌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곳곳의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반인반신’ 박정희 기념행사 여전히 활발

 

그러나 이러한 구미시의 행보가 사실상 ‘눈속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월24일 시사저널이 구미시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시회·도록 발간·시낭송회·학술대회 등 9월부터 총 13개의 다양한 10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돼 왔다. 박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기획했다가 우상화 논란으로 취소한 28억원짜리 뮤지컬 《고독한 결단》 하나를 제외하고, 사실상 나머지 100주년 행사는 기존 계획대로 열려온 셈이다.

 

기자가 찾아간 10월31일 이날도 마침 《100년의 귀향》이란 제목의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회가 예정돼 있었다. 평일 저녁임에도 구미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객석 1200석 중 약 3분의 2가 들어찼다. 남유진 구미시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성우들이 나와 박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지은 시를 낭독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시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행사에 참석한 구미 시민 김영주씨(55)는 “시(詩)에서 국민을 향한 대통령님의 애정이 묻어나 눈물이 났다. 이런 대통령은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주일 뒤 같은 공연장에선 역시나 기념사업의 일환인 박정희 시절 파독 광부와 간호사 소재의 뮤지컬 공연도 계획돼 있다.

 

이런 가운데 구미 내 70개 단체가 모여 구미시의 박정희 기념사업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70개 단체 명단을 확인한 결과,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지역 초등학교 동창회와 여러 종친회 단체였다. 일부 단체는 아직 결성조차 되지 않은 채 이름만 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구미참여연대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박정희 기념행사가 여전히 지나치게 우상화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일회성이 아닌 연례행사도 많아, 1년 내내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년 10월, 지역 초등학생들이 직접 박 전 대통령 어린 시절 등굣길을 걸어보는 ‘박정희 등굣길 체험’이 대표적이다. 등굣길은 박 전 대통령이 나고 자란 일대를 가리키는 ‘박정희로(路)’ 그 가운데 위치해 있다. 언뜻 평범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길 곳곳에 박 전 대통령의 어릴 적 모습을 딴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올해부턴 등굣길 체험은 ‘숲길 체험’이란 이름으로 바꿔 진행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행사 취지와 내용은 동일했다.

 

 

웨딩홀·골프장 건물로 전락한 새마을회

 

구미는 과연 ‘새마을운동’의 도시였다. 큼직한 행사명엔 어김없이 박 전 대통령의 상징인 새마을이 붙었다. 시내엔 새마을지도자대학까지 자리 잡고 있다.  구미시청은 ‘새마을과’를 별도로 마련해 관련 사업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새마을회도 구미엔 ‘경북도 새마을회’와 ‘구미시 새마을회’ 두 곳이 있다.

 

문제는 새마을회가 정작 새마을과 관련한 일은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에서 맡아야 할 일감과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는 것이다. 구미참여연대에 따르면, 시에서 담당해야 할 ‘작은 도서관’ 사업을 구미시의 경우 구미시 새마을회에 맡겼다. 도서관 이름 역시 ‘새마을 도서관’으로 짓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경북도 새마을회도 문제가 심각하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위치한 새마을회관 건물은 대부분 웨딩홀과 실내 골프 연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새마을 전시관은 정작 안내 직원도 없이 불 꺼진 상태로 방치돼 있다. 새마을회 직원은 “유지비만 1년에 5000만원이 드는데, 마땅한 수익사업이 없어 웨딩홀과 골프장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며 “웨딩홀은 그나마 임대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만큼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경북도 새마을회에서 1km가량 이동하면, 사실상 구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박 전 대통령 생가가 나온다. 그러나 생가 역시 탄핵 정국 이후 방문객 수가 급격히 줄었다. 기자가 방문한 11월1일은 평일임을 감안하더라도 직원이 방문객보다 많을 만큼 인적이 뜸했다. 생가에 비치된 방명록도 하루에 몇 장 넘어가지 못했다. 생가의 한 직원은 “개인보다 단체 방문객이 대부분이고 거의 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며 “오늘 하루 5~6팀 정도가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생가 내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향하는 곳은 민족중흥관 건물에 위치한 대형 돔 스크린 상영관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담은 영상이 천장 가득 홀로그램으로 상영된다. 65억원을 들여 건립한 이곳은 한 해에 전기세만 8000만원에 달한다.

 

➊ 870억원 규모의 새마을 테마공원 공사 모습 ➋ 구미참여연대가 구미역 앞에서 매주 진행하는 박정희 역사자료관 찬반 설문조사 ➌ 구미시 박정희로에 위치한 경북도 새마을회관. 건물 대부분을 웨딩홀이 차지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새마을 벨트’ 한 해 유지비만 70억~80억원

 

현재 구미시는 8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생가 일대에 새마을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생가 옆 8만 평에 달하는 부지에 세미나실이 포함된 연수관과 새마을운동 전시관 등 건물 6동을 지었다. 올 연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부지는 준공을 두 달 앞뒀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대부분 땅만 뒤집어 놓은 흙밭이었다.

 

공사 과정에서도 잡음은 끊임없었다. 시공사인 STX의 회사 사정으로 인건비가 체납돼 두 달여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게다가 개관 후 매년 수십억원대에 이를 운영비 탓에, 향후 테마공원 운영을 두고 경북도청과 구미시청이 서로 미루고 있는 모양새다. 그 때문에 공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공원이 준공된 후에도 운영 주체를 정하는 일 때문에 개관이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정희 기념사업을 찬성하는 구미 주민들의 시선에도 걱정이 가득하다. 구미에서 40년을 거주한 정영애씨(70)는 “구미에 볼 게 뭐가 있나. 그거라도 제대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는데, 자꾸 시끄럽게 문제만 생겨대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TX 관계자는 공사가 약 80% 완료됐으며 기한 내 준공하는 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흙밭인 부분은 조경을 위한 공간이라 금세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뿐 아니라, 애당초 새마을운동이라는 알맹이부터 부실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비슷한 동상과 비슷한 새마을 전시관이 이미 구미에 여러 곳 있기 때문이다. 산책 삼아 생가를 방문했다는 조희수씨(가명·35)는 “우리 또래에 누가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겠냐”며 “담당자들이 박정희 틀에만 갇혀 창의적인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인혁 구미참여연대 전 사무국장 역시 “관련 공무원들조차 새마을운동이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최소한 ‘새마을 테마공원’이라는 이름과 콘셉트만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애초에 공공의료원이나 임대아파트를 짓는 게 지역 주민에게 더 이득이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생가에서 새마을 테마공원으로 이어지는 ‘새마을 벨트’ 허리 부분에 들어설 ‘박정희 역사자료관’은 현재 구미의 가장 시끄러운 ‘논쟁거리’다. 남유진 시장이 앞장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기념사업에 대체로 찬성하는 시민들조차 이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강하다. 건물을 짓는 데만 200억원이 들 뿐 아니라, 전시될 유물들이 박 전 대통령이 쓰던 재떨이나 볼펜 등 대부분 무의미한 것들이라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구미참여연대가 매주 구미역과 별빛공원 일대에서 진행한 역사자료관 건립 길거리 찬반조사 결과 역시 반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10월 무렵부터 시작한 건립 반대 길거리 서명운동도 2000명을 돌파했다. 서명에 동참한 주민 김부기씨(60)는 “나는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의미 없는 물건들을 보관하려고 저리 크게 건물을 짓는 건 과도한 신격화”라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구미시청은 지난 10월19일 역사자료관 건립공사에 대한 입찰공고를 냈다. 연일 전시관 건립 준비를 위한 열띤 회의를 열고 있다. 구미시청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부서 직원 김아무개씨는 “역사자료관은 이미 설계가 끝났고 올해 기공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아직 기공 디데이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11월14일 박 전 대통령 탄생일 무렵이 되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김병철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오늘날 구미는 전국 실업률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명색이 공단 도시임에도 노동자 쉼터 하나 없는 복지 약체 지역으로도 꼽힌다”며 “박정희 기념에 목을 매며 세금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구미시의 과도한 박정희 기념이 고향 구미에서 그를 더욱 ‘반쪽짜리 영웅’으로 만들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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