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재건축시장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17.11.07 16:42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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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강남 재건축시장의 혈투…꺾이지 않는 ‘불패 신화’

 

정부의 ‘10·24 가계부채대책’ 발표 직후, ‘강남 재건축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예상이 빗나간 분위기를 연출했다. 업계는 당초 10·24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위축 양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전용면적 76㎡(31평) 한 채 값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8·2 부동산대책’으로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 대다수는 조합원 지위양도가 금지됐지만, 이곳은 거래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재건축 단지 중 하나다.

 

10월29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고덕주공 재건축)’ 견본주택에서 청약 예정자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재건축 투자하면 재미 좀 본다더라’ 인식 여전

 

최근 KB경영연구소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 한국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유망한 투자용 부동산으로 재건축 아파트(응답자의 27.7%)가 꼽혔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투기지역 지정,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 불가 등 메가톤급 규제가 나왔지만, 시장 관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남 재건축 거래 붐과 아파트 값 급등은 2~3년 전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이후 경기 활성화의 일환으로 재건축 규제완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영향이다. 재건축 소형주택 의무건설 비율 완화,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재건축 용적률 완화 등의 조치가 재건축에 대한 투자 수요를 이끌어냈다. 2014년 말 정부는 여기에 재건축 연한을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줄이는 정책까지 더했다. 10년은 더 기다려야 재건축이 될 것 같던 아파트 재건축 연한이 짧아짐에 따라 가장 값어치가 낮을 때인 20~25년 된 중고 아파트까지 재건축 사업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가격이 널뛰면서 재건축시장 판이 커져 버렸다. 실제 이 정책들이 발표된 이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수에 따른 수익성은 국세청이 발표한 상위 1% 고액연봉 1억3500만원을 뛰어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가 조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8월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전용 35㎡(구 11평)가 6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올 7월말에는 10억4000만원까지 뛰었다. 소형 아파트가 단기간에 4억원 가까이 오르며 재건축 불패 신화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치는 속에서 자산가들이 재건축시장을 가장 든든한 투자처로 인식한 이유는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때문이다.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조합이 얻은 이익이 인근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도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 금액의 최고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조합원 개개인이 세금폭탄을 맞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개개인의 조합원이 소위 돈 안 되는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반대하는 이들이 늘면서 각 아파트별 재건축조합의 사업 추진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 재건축사업은 ‘조합설립인가→건축심의→사업시행인가→시공사 선정→관리처분계획인가’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올해 말까지 각 관할 지자체에 재건축사업 추진의 마지막 관문 격인 관리처분인가 신청서를 내야 한다.

 

강남권 재건축조합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올 초부터 사업 추진에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각 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속도를 내고 사업성이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묻지마 투자’가 횡행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 일대 공인중개업소에서는 ‘출발비’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수천만원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실소유주인 매도자가 변심하고 계약 장소에 안 나오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럴 때 매수 희망자가 매도자인 실소유주 통장에 소액을 먼저 입금하는 일종의 ‘거마비’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투기세력과 전쟁 선포

 

8·2 대책 발표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 재건축 투자자를 비롯한 다주택 투기수요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는 규제대상지역을 지역별 과열 정도에 따라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청약조정대상지역이라는 세 갈래로 나눠 그에 상응하는 규제책을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 전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로, 그중에서도 재건축시장 과열이 문제 된 강남3구를 포함해 서울 내 총 11개 자치구는 규제 강도가 가장 강력한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특히 고질적 집값 불안을 보였던 재건축시장과 관련해선 재건축 절차 중 초기인 조합설립인가 단계를 거친 단지들의 경우 조합원 지위양도를 금지했다. 

 

조합원 지위가 양도되지 않으면 결국 현금청산을 해야 하는데, 통상 시세의 80% 정도만 감정가(현금청산 시 받을 수 있는 가격)로 책정되기 때문에 매수자로선 적잖은 금전적 피해를 입게 된다. 즉 정부는 조합원 지위양도가 안 되니 굳이 금전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건축에 투자하지 말라며 거래를 차단한 셈이다.

 

또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서도 대출자당 1건에서 세대당 1건으로 줄이며 다주택자에 대한 금융규제를 강화했다. 조세규제 범위도 늘어났다.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를, 3주택자는 기존세율에 20%포인트를 더해 양도세를 내도록 했다. 투자 목적이 강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특성상 이 같은 고강도 규제책에 힘이 빠지며 급등세는 진정으로, 진정에서 하락으로 분위기가 서서히 돌아섰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에 따른 수익성 우려도 커졌다. 분양가상한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땅값과 건축비 등을 고려해 분양가가 과도하게 책정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로, 정부가 8·2 대책 후속조치 차원에서 내놓은 히든카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 적용 요건을 완화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0월 중순 입법예고 기간을 마치고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11월 중순부터 개정안이 공표·시행돼, 기존에 공공택지에만 적용되던 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까지 확대 적용된다. 업계에선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현 시세보다 10~15% 정도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재건축시장을 향한 악재가 계속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던 재건축 집값은 고꾸라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재건축 시세 흐름을 유도하는 강남구의 경우, 올해 1월부터 8월초까지 한 주도 쉴 틈 없이 집값 상승곡선을 그려오다가 8월 둘째 주 들어서면서 집값이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잠시였다. 한 달간 주춤대던 재건축시장은 이내 추석을 기점으로 오뚝이처럼 시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조합원 지위양도 거래 제한으로 강남권 상당수 재건축 추진 단지의 거래가 묶여버리며 시장 규모는 대폭 축소됐지만, 아직 조합원 지위양도가 가능한 아파트단지나 이민·질병 등에 따라 예외적으로 간간이 거래되는 매물은 희소성을 바탕으로 오히려 높아진 값에 거래된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시공사 선정 임시총회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내년 초 재건축시장의 양도세 회피성 매물 노려 봄직”

 

6·19, 8·2, 9·5, 10·24까지 정부는 세 번의 부동산대책과 한 번의 가계부채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40여 일 만에 한 번꼴로 대책이 발표된 셈이다.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전방위 압박, 특히 강남 재건축을 타깃으로 한 대책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재건축 투자에 리스크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강남권 재건축 매물을 한 채만 보유하고 있다면 정부 정책에 따라 급하게 매도하기보다는 좀 더 지켜보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한 시중은행 고액자산가 담당 부동산 전문위원은 “현 정부 들어서 부동산시장 방향성을 보고 고민하는 이들이 확실히 늘었다”면서도 “5년 이상 중장기적으로 봤을 땐 강남 부동산 가격이 큰 폭은 아니더라도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리서치업체 관계자 역시 “강남권은 교육과 인프라가 훌륭해 수요층이 두터운 지역”이라며 “1억원 내외 범위에서 단기 조정은 연말까지 계속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보유하는 게 추가이익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미 재건축 주택을 한 채 이상 보유한 이가 추가로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할 경우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조언한다. 8·2 대책 당시 추가된 ‘재건축·재개발 5년 내 재당첨 금지’ 조항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씨가 현재 재건축 중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추가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매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개포주공1단지가 올해 12월31일 관리처분인가가 나고, 은마아파트가 이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2022년 12월31일 이전에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다면 A씨는 ‘5년 재당첨 제한’ 때문에 뒤늦게 매수한 은마아파트 조합원 분양권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은마아파트가 최소 2023년 1월1일 이후 관리처분인가를 받아야 두 재건축 아파트 모두에서 조합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장별 재건축 사업진행 속도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보니 재건축 추가 투자의 위험이 따른다. 한 재건축 전문가는 “재당첨 제한에 걸리는 주택을 구입할 때에는 조합원 분양 자격을 잃고 시세보다 낮은 현금으로 돌려받는 현금청산 대상이 돼 재산상 손실이 불가피해지는 만큼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추가투자 계획을 갖고 있다면 언제쯤 시장에 참여하는게 좋을까? 앞서 언급한 두 전문가는 무리해서 급히 들어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3~4년 시간 끌 이유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급등이나 급락이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만 보더라도 호재 여부에 따라 최근 수개월간 1억원 정도의 등락이 계속되고 있다. 재건축 매입을 검토 중이라면 거래가를 지켜보고 있다가 내년 초 다주택자의 양도세 회피성 매물이 급매로 나올 때 잡는 게 좋다”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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