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증언으로 되살아난 트럼프-러시아 의혹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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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서 난타당한 페이스북·트위터·구글이 보여준 러시아 개입 증거

 

주요 소셜네트워크 기업의 법률 고문과 보안책임자가 10월31일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 섰다. 러시아가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로 2016년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 각 회사의 플랫폼과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증언하는 자리였다.

 

러시아 정부가 실리콘밸리를 이용한 증거는 이날 데이터로 공개됐다. 콜린 스트레치 페이스북 법률고문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의 계정에서 발신된 게시물이 미국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1억2600만명의 뉴스피드에 표시됐다”고 말했다. 숀 에제트 트위터 법률고문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 관련 트위터 계정이 2752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확산된 가짜 뉴스와 정보는 총 4억1400만회나 노출됐다. 특히 선거를 목전에 둔 때 집중됐는데 2016년 9월1일부터 11월15일 사이 트위터에서는 3만6746개의 계정을 통해 약 140만 건의 선거 관련 자동 트윗이 생성됐고 이 메시지들은 약 2억88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구글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리처드 살가도 구글 보안책임자는 “IRA와 관련한 유튜브 계정에서 18개 다른 채널에 1000개 이상의 동영상을 업로드했다”​고 말했다. 특히 IRA는 구글에 광고를 집행하면서 4700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월31일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왼쪽부터)의 법률 담당 책임자들. ⓒ 사진=AP연합

 

“거액의 광고를 집행한 타국 정부가 존재한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 사우스캐롤라이나)은 청문회를 시작할 때 “의견의 대립을 만들기 위해 거액의 광고를 집행한 타국 정부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러시아를 분명하게 겨냥했다. 이날 청문회가 주목 받은 이유는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기존 의혹이 디지털 증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가 얼마나 미 대선에 영향을 주려고 했는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인들이 이런 움직임에 고의로 함께 했는지 등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러시아 게이트와 관계된 각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청문회에서는 특히 페이스북이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IRA는 페이스북에 10만 달러 이상을 사용해 3000건의 게시물에 대한 광고를 집행했고 이 게시물들은 약 1000만명의 사용자에게 전달됐다. 이건 일부분에 불과했다. 스트레치 법률고문은 “2015~2017년 사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8만건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작성됐고 2900만명의 사용자에게 전달됐다”고 증언했다. 로이터는 “이 8만건의 게시물은 2016년 11월에 열린 미국 대선을 사이에 두고 페이스북에 게시됐는데 대부분 인종 문제와 총기 소지 등 미국 사회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주제를 다뤘다”고 전했다.

 

CNN은 이미 폐쇄된 이 페이스북 계정에서 작성한 내용의 일부를 입수해 소개했다. 그 중 아이디 'Blacktivist'가 작성한 게시물은 2016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고 약 1주일 뒤 경찰에 의한 폭력 사건이 생기면서 인종 문제를 건드렸다. “흑인은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백인)은 줄곧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를 죽여 왔다”는 게시물을 널리 전파하고 있었다. 

 

11월7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문제가 잠잠해질수록 러시아 의혹은 더 커질 수 있다. ⓒ 사진=AP연합

 

후보 언급하지 않고 갈등을 이슈화 시켜

 

실제 의혹을 받는 게시물들은 대선에서 자웅을 겨루던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을 직접 언급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LGBT(성적 소수자)나 인종, 이민, 총기 소지 등 미국 내 여론을 양분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정치·사회적 분단을 부추기는 전략을 썼다. 상당수의 게시물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6년이 아니라 2015년 부터 전달됐으며 그 중 4분의 1은 특정한 지역을 타깃으로 삼았다.

 

CNN은 “러시아가 관여한 반(反)이슬람을 다룬 정치 게시물이 미시간 주와 위스콘신 주의 주요 그룹을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두 곳 모두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긴 곳이다. 미시간에서는 약 1만표, 위스콘신에서는 2만3천여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얼마나 많은 양의 러시아 손을 거친 콘텐츠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됐는지 지금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은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인 트럼프지만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잠잠하던 러시아 게이트가 실리콘밸리의 입으로 확산되는 지금의 상황 역시 초조하게 바라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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