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이차나무 지킴이 웡지마을 부랑족을 만나다
  • 서영수 감독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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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감독의 Tea Road(3)]

 

다큐멘터리 ‘티엔츠푸얼(天賜普洱, 하늘이 내려준 선물 보이차)’을 제작하는 중국 CCTV 제작진은 ‘중국 전통문화 베스트 5’로 선정된 보이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소수민족 차로 홀대받아오다가 문화와 산업, 관광업의 키워드로 떠오른 보이차를 중국 정부가 정한 정의로 살펴보자. 

 

윈난성 표준계량국은 2003년 3월1일 보이차에 대한 정의를 “윈난성의 특정한 지역 내에서 채취한 윈난산 대엽종 찻잎으로 쇄청(曬青)한 모차(毛茶)를 원료로 후(後)발효 가공을 거쳐 만들어진 산차(散茶) 또는 긴압차(緊壓茶)”라고 처음 공식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불만과 이견을 제시하며 보이차 정의에 대한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엽종 찻잎 길이는 성인 얼굴만 하다. © 사진=서영수 제공

2004년 4월16일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국 농업부에서 좀 더 포괄적인 내용으로 발표를 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수정보완이 거듭됐다. 중국 정부는 2006년 10월1일부터 관련 업계와 학계 의견을 수렴해 2008년 12월1일 “윈난 지역 대엽종 차나무 잎을 가지고 쇄청한 원료로 만든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라고 핵심 정의를 일단락 지었다. 2009년 6월1일부터 ‘보이차 지리 표시 상품 보호 관리법’을 시행한 윈난성 정부는 2008년 발표기준을 따르고 있다. 

 

최종 발표가 처음 발표와 다른 점은 윈난성 안에서도 ‘특정 지역’이라는 지리적 제한이 완화됐으며 보이차 업계의 유통 현실을 반영해 제조 방법이 확연히 다른 ‘생차와 숙차’를 모두 보이차로 인정했다. 원료에 대한 두 가지 규정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지만 원칙과 현실사이에 괴리감이 크다. 우선 햇살로 말리는 쇄청모차를 명기함으로써 기계를 사용해 단시간에 고열로 말리는 홍청(烘青)을 배제했다. 후발효를 전제로 하는 보이차는 홍청을 하면 발효 대신 산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량생산하는 대형 차 공장에서 홍청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생차 © 사진=서영수 제공

 

숙차 © 사진=서영수 제공

 

수증기로 숨을 죽여 원형으로 만든 긴압차 © 사진=서영수 제공

2003년부터 변함이 없는 또 다른 중요 규정인 ‘대엽종 차나무 잎’은 논란 대상을 넘어 아예 무시된다. 대엽종은 성숙한 찻잎 면적이 40~60㎠이상이며 중엽종은 20~40㎠, 소엽종은 20㎠이하로 분류된다. 다 자란 대엽종 찻잎은 길이 20cm가 훌쩍 넘는다. 예로부터 대엽종이 아닌 중엽종, 소엽종으로 만든 보이차가 청나라 황실공차로 진상됐다. 오늘날에도 중․소엽종으로 만든 차가 보이차로 정식 허가를 받아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 정부가 발표한 보이차 정의 속에 내재된 허를 가늠할 수 있다.

 

중국 CCTV 제작팀과의 마지막 촬영 날이 밝았다. 웡지(翁基)의 아침은 조상을 기리는 노래로 시작된다. “위대한 조상 파아이렁이 물려준 금나무 은나무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가네”라는 노래를 구전으로 물려받은 부랑족은 원시림 속에 드문드문 서있는 차나무를 찾아 험난한 산속으로 들어가 차나무 위로 올라서서 찻잎을 채취하는 쉽지 않은 노동을 한다. 채취한 찻잎으로 차 만드는 과정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지만 부랑족은 차 만드는 일을 대대손손 천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 조상에게 감사하는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한다.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일반적인 노동요와 결이 다른 부랑족 노래는 조상을 향한 경외심과 자연에 대한 감사로 충만한 찬양가로 들렸다. 차나무를 보살피고 차 만드는 행위를 신성한 사명으로 믿는 웡지마을 부랑족은 종교 미션을 수행하듯 차에 성심을 다하고 있었다. 

 

웡지마을(위)과 웡지에서 내려다 본 망징산 다원. © 사진=서영수 제공

웡지에 사는 부랑족은 성인이 되면 나무에서 추출한 검은 진액으로 남녀가 모두 치아를 까맣게 물들이는 풍속이 1980년대까지 이어왔다. 치아가 검을수록 미인으로 인정받았다. 결혼하면 처음 1년은 여자가 남자 집에 가서 살지만 2년 째 부터는 부부가 처가로 돌아와 평생을 살아야한다. 이런 모계사회 흔적은 전통작명법에서도 나타난다. 이름만 있고 성이 없는 부랑족은 모자연명제(母子連名制)를 따라 어머니 이름을 이어받는다. 다른 지역에 사는 부랑족은 아버지와 형제자매 이름을 받아 작명하기도 한다.

 

웡지는 부랑족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망징과 망홍 등 부랑족 부락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산등성이가 있어 중국민족문화유산관광시범구(中國民間文化遺產旅遊示範區)로 지정됐으며 중국 10대 휴양 명승지로도 선정됐다. 조상이 남긴 유훈을 신앙처럼 지키며 살아온 차나무 지킴이 웡지마을 부랑족은 ‘삶’ 그자체가 살아있는 관광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무수액으로 치아를 검게 물들인 부랑족. © 사진=서영수 제공

한바탕 요란한 빗줄기가 지나가고 햇살 부서지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다가왔다.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비구름 걱정에 잔여 촬영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촬영이 끝나면 자유로운 바람처럼 나 홀로 차산 탐방을 나설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중국 CCTV 제작팀과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돌발 변수가 생겼다. 촬영팀을 줄곧 안내하던 란창현(瀾滄縣) 소속 문화담당 공무원이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을 위해 산 아래 후이민향(惠民鄕)에 저녁 만찬을 준비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저녁식사는 해야 하니 “좋다”고 했더니 그는 “란창현 정부가 예약한 호텔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아침 란창현 현장과 조찬을 같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더니 대략 난감했다. 미리 예약한 사륜구동 SUV와 운전해줄 분이 이미 웡지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선택한 그날 밤 모두가 취했다.​ 

 

햇볕으로 말리는 산차를 쇄청모차라 부른다. © 사진=서영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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