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식물 가치 문화재 못지않게 중요하다
  • 김형운 탐사보도전문기자 (sisa211@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0 08:55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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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4)] 선진국과 달리 우리 정부의 자생식물 가치 인식 ‘걸음마 단계’

 

[편집자 주]

우리 금수강산에서 조상과 숨결을 같이해 온 겨레 자생식물이 최근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미 다가온 종자 및 식물유전자 전쟁에 대비해 겨레 자생식물을 보전하고, 농산물 개방과 물질특허 등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필자는 지난 20여 년간 취재하고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 보호 및 육성의 당위성,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외국의 밀반출 실태, 외국의 자생식물 보호 사례 등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제대로 보전하고 키워 나가는 대안과 방향 제시의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자생식물의 가치를 알고 나면 그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경우 뚜렷한 사계절 덕분에 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유전자 역시 뛰어나 외국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산야에 흔히 널려 있는 자생식물들을 단순한 잡초로 인식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 어떠한 문화재 못지않은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당국의 인식이 안이한 데다, 보전과 활용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식물종이 빈약했던 선진국은 반대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고유 식물종에 관심을 기울이며 채집해 자국으로 가져가 육종과 연구를 통해 산업화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경기도 용인 농업기술센터에 3000여 명이 몰린 가운데, 야생국화 등을 활용한 전시회가 열렸다. © 시사저널 김형운

 

선진국은 식물종 육종 및 연구 통해 산업화

 

특히 자태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백합류를 비롯해 원추리류, 비비추류 등 다년초와 목본류 1000여 종의 자생식물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으로 반출됐다. 이 중 180여 종은 미국에서 상품화되기도 했다. 이들 국가는 이같이 채집된 우리나라 자생식물들을 원예종으로 개량해 역수출하고 있다. 우리 자생식물 개량품종 중 구근류나 종자, 묘목을 우리나라가 수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생식물의 가치와 중요성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세계는 이제 본격적인 자원 경쟁 시대를 맞고 있다. 그간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지금 각국의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현재 각국은 이러한 식물을 자원으로 인식해 고부가가치를 지닌 실용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진국에서는 더욱 귀중한 식물자원의 미래 역할을 인식, 그 식물자원의 보전과 활용대책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자생식물의 경우 그 가치는 최근 약용으로서의 효용가치와 각종 연구결과에서 도출되고 있다. 농학과 원예학, 생물공학과 유전공학적인 첨단이론을 이용해 우수한 형질의 식물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안영희 중앙대 교수(조경학)는 “머잖아 하찮게 여기던 식물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마저 생산지 혹은 자생지 당사국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거래될 전망”이라며 “우리 자생식물의 유전적 특성이 뛰어난 점은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돼 보전과 육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멸종 위기 식물인 광릉요강꽃(왼쪽)과 미선나무 열매

식물학에서는 유사한 식물들을 그룹으로 구분해 가장 큰 단위인 문(門·division)에서부터 강(綱·class), 목(目·order), 과(科·family), 속(屬·genus), 종(種·species) 등 6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종에서도 아종(亞種)을 비롯해 변이종, 품종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렇게 분류된 식물들은 각 종에 라틴어 학명(scientific name)이 붙여진다. 이제까지 무관심했고, 하잘것없이 여겼던 식물들도 이름을 알고 나면 그 식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물론, 더욱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생물다양성보호협약에 가입해 전 세계와 무한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협약은 경제적 가치와 지구환경보호, 개도국 소유 생물자원에 대한 가치인식을 배경으로 지난 87년 6월 유엔환경계획(UNEF) 집행이사회에서 협약을 제정해 특별실무회의를 개최하며 시작됐다. 이후 88년부터 90년까지 3차에 걸친 특별실무위원회를 조직했고, 92년까지 생물 다양성에 관한 법률 및 기술전문가 그룹이 7차에 걸쳐 협상·회의를 실시했다. 이 같은 회의와 협상을 토대로 92년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를 열어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이 체결됐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140개국이 가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96년부터 협약 발효가 시작돼 이 분야에 대한 세계와의 무한경쟁과 함께 생물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됐다.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은 전문과 42개 조항의 본규약 및 2개 부속서로 구성돼 있다. 전문에는 생물 다양성의 본질적인 가치와 생물권 진화, 지속적인 생명체계 유지를 위한 생물 다양성의 중요 역할 인식, 생물 다양성의 현저한 감소현상에 인류의 활동이 관여됨을 인정하고 있다.

 

나도풍란(왼쪽)과 푸른구상나무

 

한국,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 가입

 

또 각국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 인정과 생물 다양성의 감소 또는 손실의 원인 예측 및 방지, 생물 다양성 이용에서 각국 간 긴밀한 유대강화와 인류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협약은 전체적으로는 지구 전체의 생물 보호와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각국별로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처럼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은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기술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앞으로 환경문제와 환경산업의 첨병 역할을 가늠하는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협약에 따라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보전과 육성 및 활용방안이 기로에 서게 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생식물 전공학자들은 “식물 제공국에 대한 기술이전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적절한 대가, 즉 막대한 로열티 지불 등이 수반된다”며 “자생식물 보전과 활용 문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맞아 거액의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당국이 인식하고 적절하고 바람직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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