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은행, 靑 출신 인사 특혜채용 의혹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3 14:43
  • 호수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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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9급 출신, 미검증 근무경력으로 서류 통과…면접 점수도 ‘만점’

 

한국은행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9급 상당 행정요원(비서)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전례 없던 경력공채를 실시하고, 이 행정요원의 애매모호한 경력을 인정해 줘 서류심사에서 경력 부문 만점을 준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그는 이후 진행된 실무평가 및 면접에서도 고득점을 받아 해당분야 1위로 합격했다. 한국은행에선 “당시 상황에선 최선을 다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무결점’ 채용 시스템을 강조해 오던 한국은행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게 한국은행 안팎의 분위기다. 게다가 이 행정요원은 채용 후 비서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몇 달 전에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비서실로 옮겼다.

 

시사저널이 여당의 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 일하던 A씨(여·27)가 한국은행 비서직 경력공채에 지원해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7월1일부터다. A씨 채용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A씨를 뽑았던 경력직 채용공고 자체가 한국은행에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1차 서류심사 과정에서 가장 배점이 큰 경력점수에서 그가 만점을 받으려면 4년 이상의 경력이 인정돼야 하는데, 그 근거가 부족했음에도 만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A씨는 2015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 조교를 청와대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경제수석실을 나와야 했다. 이후 A씨는 청와대 내 다른 비서실로 두 차례 옮겼다. 그러다 한국은행이 갑자기 경력직 채용을 실시했고, A씨는 청와대에 재직 중이던 2016년 5월 지원했다.

 

한국은행 인사경영국 인사팀이 국회에 제출한 ‘2016년 3월 경력직원 채용 계획’을 보면, 한국은행은 전문 직원 2명(재산관리실 전화교환설비 관리 담당 1명, 커뮤니케이션국 기록물 정보화 담당 1명) 및 일반 사무직원 10명(현업 경력직 5명, 비서 경력직 5명) 등의 채용 계획을 이주열 총재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얼마 뒤 보고된 계획을 그대로 담은 채용공고를 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은행 본관 © 시사저널 박정훈

 

“A씨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이 잘 봐주라 한다”

 

2016년 5월 냈던 채용공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한국은행은 2010년과 2012년 그리고 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일반사무직원 35명을 공개 채용했다. 한국은행에서 C3라고 불리는 일반사무직원은 ‘정형화된 일반사무를 수행하는 인력’을 말한다. 여기엔 비서직군도 포함된다. 정기적으로 C3 직군에 포함시켜 뽑던 비서직을 별도의 공고를 내서 뽑은 것은 A씨가 지원한 2016년 5월이 처음이었다. 이는 “한국은행의 인력수급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는 게 여당 의원실 관계자의 지적이다.

 

일례로, 2015년 한국은행이 같은 직군을 채용할 때는 연말까지 필요한 전체 수요를 파악한 후 대대적인 채용공고를 냈다. 한국은행 인사국이 2015년 6월 이 총재에게 보고한 ‘2015년 일반사무직원(C3) 채용계획’을 보면, “2015년 7월1일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한 정원 및 인건비 측면에서의 신규채용은 크게 완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은행 측이 일반사무직원의 경우 신규채용을 권고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불과 몇 개월 뒤인 2016년 3월 한국은행은 비서직군을 포함한 경력직 일반사무직 채용계획을 자체적으로 세웠다. 이 채용공고는 한국은행의 연간 채용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공고였다.

 

이에 대해 의원실 측은 “2015년까지 비서직은 서류 전형에 한해서 경력을 우대해줬으나, 비서직을 특정해서 뽑은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공고에 지원하면서 두 장의 경력증명서를 한국은행에 제출했다. 하나는 2009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예금보험공사에서 근무한 경력증명서(사진2)이고, 또 하나는 2011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청와대에서 일한 경력증명서(사진3)였다.

한국은행은 경력기간에 따라 점수 차등을 둬 4년 이상이면 40점, 3년6개월부터 4년 미만은 38점, 3년 이상부터 3년6개월 미만은 36점을 부여했다. A씨는 4년 경력을 모두 인정받아 40점 만점을 받았다. 한국은행은 공고를 낼 당시 “재직 및 경력증명서상에 담당업무가 명확히 기재(비서, 텔러)돼 있어야 하며 경력조회 과정에서 이를 소명하지 못하는 경우 관련 지원 자격 및 경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했다.

 

❶ 2016년 5월 한국은행이 낸 채용공고. 사진 하단에 보면 비서 업무를 했다는 경력이 증명서 상에 기재돼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❷ A씨의 대통령 비서실 경력증명서. 3년간은 비서 경력이 적시돼 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❸ A씨가 한국은행에 낸 예금보험공사 경력증명서. 역시 어디에도 A씨가 비서로 근무한 사실이 나와 있지 않다.

대통령 비서실이 발급한 경력증명서(사진3 참조)에 따르면 A씨의 근무 기간은 총 4년10개월이다. 이 중 3년 동안은 경제수석실에서 비서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나머지 1년10개월 동안은 소속만 있을 뿐 정확히 어떤 업무를 했는지 기재돼 있지 않다. 즉 대통령실 근무 동안 3년의 경력만 기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씨가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예금보험공사에서 일한 2년 중 적어도 1년을 비서로 일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A씨가 한국은행에 낸 서류를 보면 어디에도 비서 경력이 기재돼 있지 않다. 즉 한국은행이 공고한 기준으로 보면 1년 경력은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다.

 

A씨는 서류심사에서 총점 92.3점을 받아 55위로 통과했다. 한국은행은 1차에서 경력(40점), 학업성적(30점), 전공(20점), 자격증(10점), 보훈가점(10점) 등의 항목 총점을 더해 총 20배수(100명)를 선발했다. 서류로만 따진다면 A씨에게 경력점수를 36점(3년 이상 3년6개월 미만)만 줘야 했다. 만약 A씨가 36점을 받았다면 그는 서류심사 커트라인 점수인 89.6점 이하로 떨어져 탈락했다. 서류통과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실무평가 및 실무면접에서 A씨는 각각 9위와 1위를 차지했다. A씨는 2차 심층면접에도 1위를 했다. 이 결과, A씨는 최종순위 1위로 한국은행에 채용됐다. 하지만 정작 A씨는 입사 후 비서직이 아닌 일반사무직에 배치돼 일하다가, 은행 내부에서 채용 절차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오자 한국은행 측은 그를 총재 비서로 일하게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감사원서 진상조사

 

한국은행 내부에선 규정대로 하면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했어야 하는 인물이 서류심사를 통과한 것에 대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 일각에선 인사 라인의 개입 여지가 있는 실무면접과 심층면접에서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복수의 한국은행 관계자들은 “서류에서 떨어져야 하는 사람이 서류를 통과하고, 2차례 면접에서 1위를 받은 것은 사전에 얘기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비서 한 명을 채용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왜 이렇게 무리수를 뒀을까.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2016년 한국은행 국감이 끝난 후 이주열 총재가 기획협력국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마련한 자리에서 한국은행 한 고위 관계자가 ‘A씨에 대해 새누리당 모 의원이 잘 봐주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A씨에 대한 소문이 내부에서 확산됐다”며 “이 발언을 했던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의 동생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행 직원들이 대부분 알고 있었는데도 이런 발언까지 하니 더욱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은행에 대한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에 대해 한국은행 공보관실 및 인사팀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예금보험공사 경력이 애매해서 직접 예금보험공사 인사팀 직원에게 전화해 비서실 근무 경력을 확인했다”며 “예금보험공사 소속으로 2년 일하면서 그중 1년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에 파견 근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예보 소속이던 2년은 용역업체에서 파견했던 직원이었는데, 파견업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경력증명서를 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밖에서 보는 것처럼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특혜를 줬거나 뒷배경이 있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며 “같이 입사했던 직원들도 다른 부서에 (순환)근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한국은행에 A씨의 경력을 전화로 확인해 준 예금보험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현재는 근무하지 않는 당시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또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서류로 확인이 어려운 경력을 은행 측이 전화로 직접 확인해, 이를 근거로 채용한 사례는 심각한 절차 위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이 같은 채용 의혹은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감사원 등에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서류상으로 채용공고와 맞지 않는 명백한 절차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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