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개는 없다 멍청하고 나쁜 개 주인이 있을 뿐”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3 15:12
  • 호수 146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웨덴, 동물엔 최고의 복지…주인에겐 강한 책임 강조

 

언론사에 처음 발을 들이면 선배 기자들이 신입 기자들에게 해 주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는 사람이 개를 무는 해괴한 일은 생기지 않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기삿거리도 안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기삿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인기 연예인 최시원씨 가족이 소유한 맹견 프렌치 불독이 또 다른 유명 인사를 문 사건을 비롯해, 요즘 일부 맹견들에 의한 ‘개 물림’ 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맹견 공포증’ 또는 ‘대형견 기피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각 인터넷 공간에선 맹견을 소홀히 관리한 견주(犬主)에 대한 책임론도 거론되지만, 개 자체에 대한 혐오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에 대한 맹목적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미 1000만 명 시대를 넘어선, 반려동물 강국의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거꾸로 반려동물 혐오국으로 급속도로 이동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스웨덴에서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에 개를 데리고 탈 수 있다.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개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 사진=이석원 제공

 

“제도나 법이 아닌 결국 사람 문제”

 

최근 한국의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스웨덴의 한 반려동물 전문가는 “일부 견주들의 몰이해와 정서 미달이 빚어낸 촌극”이라고 비판한다. 유럽 반려동물 권익단체에서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피터 브롬크비스트는 한국에서 ‘개 물림’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그로 인한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는 한국 내 보도를 보고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단적으로 얘기한다. 그는 “제도나 법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스웨덴은 오히려 한국보다 법이 강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식의 사고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은 반려동물, 특히 개와 고양이의 복지 천국이기도 하다. 워낙 개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유럽에서도 스웨덴은 독일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동물 복지 국가로 유명하다.

 

스웨덴의 동물 복지는 거의 인간과 같은 선에 있다. 스웨덴에서 반려동물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농업국(Jordbruksverket)은 동물 복지와 관련한 여러 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개의 영양에 대한 규정은 개가 너무 살이 찌거나 마른 것도 제재의 대상으로 삼는다. 개에게 충분하고 적절한 영양 공급의 의무를 견주에게 지운다. 개가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상세한 규정들도 있다. 쾌적하고 위생적이어야 한다. 특히 대형견의 경우 개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의 넓이까지 상세히 규정한다.

 

또 개가 하루에 야외에서 활동해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나 개가 목줄 등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최대한의 시간에 대한 규정도 있다. 또 실내에서는 목줄을 묶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심지어 개를 목욕시키기 위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경우에 대한 안내도 있다.

 

어린 강아지가 어미의 곁에서 강제로 떼어지는 것도 법으로 금지한다. 생후 8주 안에 어미에게서 떨어뜨리는 것은 금지돼 있고 6개월 이내엔 어미에게서 떼어놓지 말 것을 권고한다. 또 출산한 암컷의 경우 어미와 새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반드시 확보해 줘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지난 9월 가톨릭 스톡홀름 대교구가 반려견과 반려묘를 비롯한 동물들에게 축복을 주는 미사를 진행했다. 북유럽 유일의 추기경인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 추기경이 직접 미사를 집전했다. © 사진=이석원 제공

 

견주의 소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

 

그런데 이런 동물 복지는 견주 등 동물 소유자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개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즉 자기가 아무리 예쁘다고 생각하는 개도 다른 사람에겐 위협이나 불편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당신의 개가 다른 동물이나 인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견주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소양이다.

스웨덴의 모든 개들은 라벨을 부착해야 한다. 문신이나 마이크로 칩으로 그 개에 대한 모든 정보 추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물론 이는 공인된 수의사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등록된 개에 대한 복지의 문제와 함께 책임의 문제도 관리한다. 등록되지 않은 개는 불법 체류자와 마찬가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과 처벌보다 견주의 소양과 타인에 대한 배려다. 한국에서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목줄이나 입마개에 대한 규정도 지역이나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다. 철저히 규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율에 맡기는 곳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결국 자율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 물론 지역에 따라 개가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가했을 경우 견주를 처벌하기도 하고, 위험한 개를 즉시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게 주기는 하지만 시행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견주 스스로가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는 기본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스웨덴 가톨릭에선 매년 9월에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에게 축복을 주는 특별한 미사를 한다. 이날은 북유럽 유일의 추기경인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 추기경이 직접 동물들에게 축복을 준다.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뿐 아니라 가축도 해당된다. 모든 동물을 인간과 같은 신의 피조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잇따른 맹견 사건·사고는 한국의 일부 동물 소유자들이 동물에 대한 이성적이고 성숙한 정서와 인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면서도 결국 사람들은 일부 맹견, 일부 정서가 불안정해진 동물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과 어우러져 사는 동물이 아닌 그저 소유물이나 장난감, 대체 위로품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반려견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에바 뷕스트룀은 “동물을 그들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세계에서 살게 했으면 그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는 소유하고 대리만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멍청하고 나쁜 개 주인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