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격 인사’의 밑그림은 정현호 작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4 09:59
  • 호수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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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새 컨트롤타워 수장 된 정현호 사장, ‘이재용 체제의 이학수’

 

삼성의 총수는 이미 바뀌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그렇다면 이 부회장의 손과 발이 되어 그와 함께 향후 삼성을 이끌 핵심 인물은 누구일까. 사실 이와 같은 질문은 이 부회장이 2013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삼성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이후부터 재계에선 끊이지 않는 의문이었다. 삼성이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기업이니만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궁금증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 등 삼성 내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이를 두고 많은 가능성들이 제기됐지만, 정작 ‘이재용 체제의 2인자’로 지목된 이는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 이은 삼성의 ‘2인자’로 정현호 신임 사업지원TF장(사장)이 지목받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뉴스1

 

‘작은 미전실’ 사업지원TF 수장 된 정현호

 

궁금증이 극에 달한 것은 10월13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다. 그는 DS(디바이스 솔루션)총괄이라는 현업에서의 중책은 물론, 이건희 회장 부자를 대신해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 오던 인물이다. 동시에 그와 함께 삼성전자 3대 최고경영자(CEO)이던 윤부근 IM(IT&모바일)부문장(사장·현 삼성전자 CR담당 부회장)과 신종균 CE(소비자 가전)부문장(사장·현 인재개발담당 부회장)도 사임을 결정했다. 이들은 현재 2선으로 물러나 고문역을 맡고 있는 상태다.

 

총수에 이어 경영진마저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차세대 주자에 대한 의문은 날로 커져갔다. 그러던 10월31일, 삼성전자는 전격적인 세대교체 인사를 발표했다. DS부문장에는 김기남 반도체 총괄(사장)이 올랐고, CE부문장과 IM부문장엔 김현석 VD(영상 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과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각각 임명됐다. 조직에 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사장들을 사실상 승진시킨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해당 사업 영역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은 경영인이다. 또 자신의 영역에서 이미 능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성실한 천재’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만 수행

 

그러나 정작 이날 주목을 받은 이는 이상훈 경영지원실장(CFO·사장)이다. 경영지원실장에서 물러나, 권 회장이 맡아오던 이사회 의장 후임으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앞서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바 있다. 이사회가 실질적인 최종 의사결정 기구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장은 삼성의 자금흐름을 총괄해 온 재무통이자, 이 부회장을 상무 시절부터 보좌해 온 핵심실세다. 재계에서는 이 사장의 무게감과 맡게 될 중책을 감안, 그를 이재용 체제의 2인자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상황은 11월2일 삼성전자가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면서 또 달라졌다. 이날 인사 명단에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사장)이 포함되면서다. 올해 3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을 떠난 지 8개월여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사실 정 사장의 복귀는 어느 정도 예고돼 왔던 터다. 그가 이 부회장의 복심(腹心)으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유력한 후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 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더 유력했다. 그가 그룹 내 대표 ‘재무통’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사장)은 10월31일 인사를 통해 차기 이사회 의장에 내정됐다. © 사진=연합뉴스

특히 10월29일 인사 때 이상훈 사장이 경영지원실장에서 물러나면서 이런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신설된 ‘사업지원TF’ 수장을 맡게 됐다. 미전실 해체 이후 원활치 않던 전자 계열사 간 소통과 협업 문제를 해소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효율적인 사업을 위한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사업지원TF를 사실상 ‘작은 미전실’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자연스레 그 수장인 정 사장이 ‘삼성의 2인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정현호 사장은 덕수상고(현 덕수정보산업고)와 연세대 경영학과(78학번)를 거쳐 1983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과에 입사하며 삼성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그는 삼성 내에서 ‘성실한 천재’로 통한다. 능력도 출중하지만, 어떤 일도 적당히 넘어가는 적이 없을 정도로 일처리가 꼼꼼해서다. 혹자는 그를 워커홀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 사장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각을 드러냈다. 그 결과, 과장 시절이던 1988년 비서실에 차출됐다. 비서실은 지금은 사라진 미전실의 모태로, 1959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그룹의 심장부였다.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비서실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모했지만, 정 사장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IMF 사태로 1998년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로 바뀌었을 때도, 2006년 대선 비자금 의혹에 연루돼 다시 전략기획실로 조직이 개편됐을 때도 이곳에서 상무로 근무했다.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특검으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서 현업부서에 배치됐지만, 2010년 미전실이 새로 꾸려지면서 다시 부름을 받았다. 미전실에서 정 사장은 2011년부터 경영진단팀장(부사장)을, 2014년부터는 인사지원팀장(사장)을 각각 지냈다.

 

정 사장의 강점은 미전실 3대 핵심인 재무·인사·감사 업무를 모두 경험했고, 모든 업무를 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지원업무 외에 현업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가전과 디스플레이의 경영관리를 맡았고, 한때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부사장)과 모바일사업부 지원팀장(CFO·전무)을 역임하기도 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삼성전자 내 모든 주요 현업 파트를 거친 것이다.

 

 

JY 하버드대 유학 시절 인연 맺어

 

정현호 사장이 이재용 부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한 전력 덕분이었다. 그는 사내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돼 1995년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이 부회장이 하버드대학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미국에는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의 유학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은 이 조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하버드대학 MBA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부회장의 지근거리에서 유학 생활을 보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은 2001년부터 이 부회장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당시 정 사장은 신설된 경영지원총괄 IR그룹장에 배치됐다. 이때 이 부회장이 경영지원총괄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승진하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왔다. 이후 정 사장은 이 부회장과 비슷한 시기 승진하며 함께 성장해 나갔다. 상무 승진(2004년)은 이 부회장보다 1년 늦었지만, 전무(2007년)와 사장(2010년)에는 나란히 올랐다. 물론 이 부회장의 젊은 나이를 감안해 속도를 조절했을 가능성을 감안해도 재벌 후계자와 같은 속도로 승진했다는 점을 놓고 보면 ‘초고속 승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정 사장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가 2014년 정 사장에게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을 맡긴 점이다. 그동안 인사업무를 전혀 담당하지 않았던 정 사장이 그룹의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것을 두고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눈여겨볼 대목은 당시가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대규모 인사 개편을 앞두고 있던 시기라는 점이다. 정 사장에게 그 밑그림을 그리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최근 인사도 정 사장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올해 2월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밖에서 인사 작업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전실이 삼성 내 ‘적폐’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비판을 무릅쓰고 정 사장을 다시 복귀시킨 것도 그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3월 미전실 해체 당시 200여 명의 파견 직원들은 자신의 소속 계열사로 흩어졌다. 여기에 수뇌부는 고문 등의 예우 없이 전원 사임을 결정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김종중 전략팀장, 성열우 법무팀장, 정현호 인사지원팀장, 임영빈 금융일류화추진팀장, 이수형 기획팀장, 박학규 경영진단팀장, 이준 커뮤니케이션팀장 등 9명이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삼성으로 돌아온 것은 정 사장이 유일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그의 ‘2인자’이던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부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이학수 전 부회장 리더형, 정현호 사장 참모형

 

그렇다면 향후 정현호 사장이 맡게 될 임무는 무엇일까. 일단 삼성전자는 사업지원TF의 역할이 ‘사업 조율’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업무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 사장이 맡은 직책의 성격도 ‘CEO 보좌역’으로 밝혔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미전실을 통한 승계 작업이나 대관 등의 업무가 문제가 되면서 이를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사업지원TF가 승계나 대관은 아니더라도, 기획·투자·인사 등 그룹 경영 전반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하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이 부회장의 ‘메신저’로 활약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재 옥중에 있는 이 부회장의 경영 구상과 결정을 그룹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전달하는 소통과 조율의 창구 역할을 도맡으리란 것이다. 총수 공백 상태에서 사실상 그룹의 사령탑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삼성 내부에서 정 사장의 위상과 영향력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를 이건희 회장 시절의 2인자이던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비교하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부산상고와 고대를 거쳐 삼성에 입사, 재경업무를 담당한 이학수 전 부회장과 ‘상고 출신·비(非)서울대·재무통’이라는 이력이 일치해서다. 이병철 창업주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경영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이학수 전 부회장이 역할을 했듯, 정 사장 역시 세대교체 과정에서 2인자로 등장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다만, 두 사람은 성향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평가다. 이 전 부회장이 카리스마 있는 리더형 인물인 반면, 정 사장은 철저한 ‘참모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성향은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부담이 덜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2월28일 구속기소돼 8월25일 1심에서 5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형량을 줄여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특사 등으로 풀려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부회장이 언제 출소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본인이 직접 전면에 나서 조직을 장악하는 인물은 향후 이 부회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신, 정 사장은 이 부회장의 대리인에 머물면서 조직을 다잡고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다.

 

정 사장은 향후 이상훈 사장과 삼성의 경영전략 전반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투톱체제가 언제까지고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사실상 경영 결정권이 이 부회장에게 있는 상황에서 이 사장이 맡은 이사회 의장직은 상징적인 자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 사장 자체만 놓고 보면, 그룹 내에서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 인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04년 구조본에 발탁돼 전자계열사의 전략 및 재무를 담당해 왔고, 삼성전자의 조직 및 인력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추진력이 강하고 합리적인 업무 스타일에 인간적 면모까지 더해져 내부의 신임도 두텁다.

 

무엇보다, 이 사장도 정 사장과 마찬가지로 이 부회장의 하버드대 유학 시절 미국 법인에서 재직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삼성 내부에서 이 사장이 이학수 전 부회장 라인으로 분류된다는 데 있다. 한 삼성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측근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인사를 진행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장 역시 언제 자리에서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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