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는 국경과 민족에 쉬 휘둘리지 않는다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4 11:39
  • 호수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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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인도와 영국, 시타르와 바이올린의 음악적 교류 이야기

 

얼마 전 필자가 참여한 음악 관련 학회 토론에서, 한 한국 음악가가 중국에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해금 연주를 본 중국 음악가가 “이건 원래 ‘우리’ 악기”라고 말해 그 자리에 있던 한국 음악가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몇 악기들, 그중에서도 특히 ‘얼후(二胡)’와 우리의 해금을 비교하면 생김새가 닮았고, 근원적인 연주의 원리도 다르지는 않다(물론 실제 주법의 디테일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그 중국 음악가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면, 자신의 무지와 몰상식, 무례를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해금은 말 그대로 ‘해(奚)족’의 현악기인데, 그들은 현존하지 않는, 몽골 계통의 유목인들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현재의 ‘중국 땅’을 거쳐 온 것은 분명하지만, 해금(고려 때로 추정)과 얼후(당나라 때로 추정, ‘후’는 ‘외래종’이라는 의미) 모두 특정 시점에 해당 악기의 어떤 형태를 들여와 오랜 기간 변형된 채 토착화된 것이다. 각기 다른 국가와 장르의 경계들 안에서 재료·주법·레퍼토리 등을 바꿔오면서, 두 악기는 역사적으로 친척뻘인 다른 악기가 된다.

 

현재 존재하는 국가와 민족, 혹은 그 둘을 합친 국민국가라는 개념 안에서 사유하면 “이건 ‘우리나라’ 악기”와 같은 몰상식이 상식으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익숙한 해금의 모습을 ‘한민족의 전통악기’라고 일차원적으로 연결 짓는 것도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 북쪽의 ‘해금’만 해도 한국과 다른 방식의 개량을 거쳐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이올린은 ‘인도 전통악기’일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바이올린은 인도 땅에, 그리고 인도 전통음악에 일반적 통념보다 훨씬 더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인도 남부지역 기반의 ‘클래시컬’ 음악으로 불리고 있는 (한국 음악의 일상적 분류법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민속악’이 아닌 ‘정악’으로 분류되는) 카르나틱(Carnatic) 음악에서는 19세기부터 바이올린이 사용되어 지극히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올린은 인도 땅에, 그리고 인도 전통음악에 일반적 통념보다 훨씬 더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 사진=EPA연합

 

바이올린, 인도 전통악기처럼 자리 잡아

 

정형적인 카르나틱 연행(演行) 형태를 보면, 장단을 잡아주는 타악기 ‘므리당감(mridangam)’, 4~5줄로 된 발현(撥絃·기타처럼 줄을 튕겨낸다는 뜻) 악기인 ‘탄뿌라(tanpura)’와 함께 바이올린이 버젓이 올라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특유의 약속된 선법(라가·raga)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흥적으로 변형된 보컬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 즉흥 아래서 흐름을 받쳐주기도 하며, 때로는 앞장서 솔로 연주를 하기도 한다.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면, 구음시나위 속에서 소리꾼과 해금이 서로를 주고받으며 따로 또 같이 가는 관계와 비교해 들으면 흥미로울 것이다.

 

민족음악학자 아만다 와이드만(Amanda Weidman)에 의하면, 바이올린은 19세기 초 영·불 제국주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인도 땅에 들어왔다. 초기에는 ‘외래’ 음악 장르들에 쓰였으나, 카르나틱 음악가들의 음악적 현대성에 대한 추구, 그리고 서구에 대한 동경 등 여러 식민지적 맥락 속에서 적극적으로 토착 장르 안으로 끌어들여졌고, 그 결과 19세기 말엽 혹은 20세기 초에는 의심할 나위 없이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다. 튜닝의 방식이나 주법 등은 ‘서구 클래식’의 그것과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순간 울려 퍼지는 남인도의 바이올린을 단순히 ‘수입종’이라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도 땅에 수많은 바이올린을 가져왔을 식민 본국, 영국으로 가보자. 타악기 ‘타블라(tabla)’와 현악기 ‘시타르(sitar)’는 수백 년에 걸친 제국주의, 그리고 포스트-제국주의적 맥락 속에서 영국 땅에서도 사용되어 왔다. 런던 출신의 세계적인 밴드인 롤링스톤스의 엄청난 히트곡 《페인트 잇 블랙》(Paint it Black, 1966)에 시타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몇몇 멤버들이 인도 문화에 심취한 것으로 잘 알려진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1965)에도 마찬가지다. 1996년에 발표된 밴드 쿨라 쉐이커의 메가 히트곡 《고빈다》(Govinda)는 타블라와 앞서 언급된 탄뿌라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하며, 아예 가사가 산스크리트어로 이뤄져 있기도 하다.

 

인도의 음악 거장 라비 샹카가 시타르를 연주하는 모습 © 사진=AP연합

 

인도 악기들, 세계 음악가들에 활발히 사용돼

 

물론 지금 언급한 예들은 서구 록의 어법 안에서 좁은 의미의 음향적 요소로 활용된 부분이 짙다. 상당수 인도계 영국인 음악가들의 존재(타블라 연주가인 탈빈 싱(Talvin Singh)의 음악을 접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20세기 중엽 이후 라비 샹카(Ravi Shankar)와 같은 인도의 음악 거장들이 서구를 방문해 작업들을 해 온 것이 이와 같은 악기·소리들의 이동과 상호작용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구의 음악시장이 비(非)서구의 음악을 산업적으로 ‘발견’하고 ‘월드뮤직’이란 명칭 아래 적극적으로 판매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서구에 역사적으로 친숙하며 음악적으로도 엄청나게 풍부한 인도의 음악적 요소들은 타 지역의 그것들에 비해 많이 활용되어 왔다. 디지털 시대, 가상악기를 통해 음악을 만드는 세계에서도 인도의 여러 악기들은 이미 고도로 다듬어져 독립적인 비싼 패키지로 팔릴 정도에 이르렀으며, 국경을 넘어 세계의 음악인들에게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정리하면, 악기라는 물질은 국경과 민족이라는 담론에 쉬 휘둘리지 않으며, 음악가와 그 음악을 듣는 대중들은 그 담론을 때론 성찰적으로 부대끼고, 때론 무심히 지나치며, 그 물질들을 다뤄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세상의 소리경관은 끊임없이 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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