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부동산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17.11.16 10:48
  • 호수 146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도 허점 탓에 외지 투기수요 몰려

 

정부가 전국 부동산시장에 내린 극약처방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국지적 투기 열풍을 제어하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와 함께, 1순위 재당첨 제한과 분양권 전매를 골자로 한 ‘11·3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은 단기적, 국지적으로나마 약발이 있었다. 서울을 비롯해 지난 한 해 동안 수백 대 1의 청약열풍을 일으킨 지역들에서 투기수요 및 과잉 청약열풍이 잡히면서 청약경쟁률이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에 티로 지적된 것이 있었다. 바로 부산의 투기열풍을 잠재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11·3 대책 발표 당시인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부산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을 보면 205대 1에 달한다. 이로부터 4개월이 지난 올 3월 분양한 아파트들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135대 1을 나타냈다. 경쟁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100대 1을 훌쩍 넘는 기록은 여전히 실수요자에게 청약 당첨의 문턱이 로또 당첨만큼이나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11·3 대책 효과는 부산에 있어선 극히 미미했던 것이다.

 

© 사진=연합뉴스

 

전매 규제 수정작업 들어간 국토부

 

이처럼 여타 지역과 달리 부산의 청약경쟁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제도의 허점 탓에 외지 투기수요가 몰리며 이상과열이 빚어져서다. 정부는 11·3 대책 발표 당시 부산 일부 자치구 7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면서도 1순위 제한과 재당첨 제한만 적용했다. 즉 주택법에서 ‘지방의 민간택지는 분양권 전매 제한 대상이 아니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양권 전매 제한을 둘 수 없어, 이른바 단타로 치고 빠지는 투기세력이 분양권 당첨 후 웃돈을 얹어 분양권을 사고파는 게 지금까지는 가능했다. 결국 전매 제한을 받는 여타 과열지역과 달리 부산은 주택법의 허점 탓에 오히려 특혜를 입은 셈으로, 억대 프리미엄은 비일비재한 일이 됐다.

 

부동산업계에선 청약자격 강화만으로 투기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국토부의 안일한 대처가 부산을 투기 집결지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지난해 부산 아파트값 상승률은 8.49%로 전국 평균(3.66%)의 두 배를 웃돌 정도로 폭등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국토부는 주택법 손보기 작업에 돌입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법을 개정해 지방 민간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권에도 전매 제한 기간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를 새로 만들었다. 전매 제한 조치를 포함한 주택법 개정안은 7월 중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정부는 ‘8·2 부동산대책’ 발표에서 부산을 포함한 지방 민간택지의 분양권 전매 제한을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주택법 개정안은 11월10일부터 시행돼, 이날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됐다. 지방 광역시 민간택지에서 공급하는 단지의 분양권 거래는 기본적으로 6개월간 제한되고, 청약 조정대상지역에서는 과열 정도에 따라 최대 소유권 이전 등기일(즉, 입주일)까지 분양권을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부산에서는 7개 조정대상지역(해운대구·남구·수영구·연제구·동래구·부산진구·기장군) 가운데 기장군을 제외한 6개 자치구가 입주일까지 분양권 거래의 발이 묶이게 된다.

 

주택법 손보기 작업이 시작된다는 게 알려진 올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건설사들은 분양 일정을 앞당기는 데 안간힘을 썼다. 규제가 적용되면 투기수요가 대거 빠지면서 흥행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금융결제원 인터넷 청약 사이트인 ‘아파트투유’를 보면, 부산의 전매 제한을 규정하기 위해 제도개선 작업에 돌입한 지난 7월 이후에 해운대센텀 미진이지비아, e편한세상오션테라스, 기장 이지더원 1차, 협성휴포레 부산 시티즌파크, 해운대 경동리인뷰 1차 등 다수의 사업장이 서둘러 분양을 진행했다. 막차를 타기 위한 청약수요가 대거 몰리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전매가 가능한 만큼 단타수요가 얼마나 기승을 부렸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시를 보면, ‘해운대센텀 미진이지비아’는 지난 7월 전체 가구(184가구)의 30%가 넘는 58건 분양권의 전매거래가 이뤄졌다. 평균 웃돈은 대략 1500만~1700만원 선이었다. 이 단지가 지난 7월26~28일 정당계약을 진행한 점을 감안하면 당첨자 상당수가 계약금을 치르고 5일도 채 지나지 않아 분양권에 수천만원의 웃돈을 얹어 팔았다. 이들은 분양권 당첨만으로 하루에 최소 3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부산에 내려진 투기꾼 퇴치 ‘극약처방’

 

11월초 GS건설이 수영구 광안동에서 분양한 ‘광안 자이’ 역시 평균 청약경쟁률 102대 1이라는 높은 흥행률을 보였다. 정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응에 약 1년의 허송세월을 하며 부산에선 여전히 웃돈을 노린 투기세력이 기승을 부려온 것이다. 앞으로도 분양 일정은 잡혀 있다. 롯데건설도 11월초부터 연제구 연산동에 ‘연산 롯데캐슬 포레’ 1200여 가구 규모 사업장 중 670가구 일반분양을 시작한다. 업계에서는 전매 규제를 받지 않는 마지막 사업장이니만큼, 적잖은 청약수요가 몰리며 흥행광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청약 흥행 여부에 대해선 부동산업계도 아직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전매 제한이 시행되면서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가수요가 빠져 청약경쟁률도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올 연말까지 부산에서 약 4700가구가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된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연말까지 부산 6개구에서 분양 예정인 곳은 △연제구 ‘거제2구역 래미안’ 2787가구 △연제구 ‘연산3구역’ 1029가구 △해운대구 ‘해운대 중동 동원로얄듀크’ 456가구 △동래구 ‘온천3구역 e편한세상’ 439가구 △수영구 ‘센텀 하우스디’ 253가구 등 총 5개 단지 4761가구다. 해당 사업장은 이전처럼 계약금을 치르자마자 바로 분양권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일각에서는 규제로 인한 잠깐의 심리적 위축은 있을 수 있어도 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부산은 고령화 등으로 부동산시장에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수요자도 풍부해 청약시장이 급격히 식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전매가 금지된 지역의 투자수요는 다소 줄어들 수 있어도 인근 비규제 지역의 청약경쟁률이 올라가거나 규제를 피한 단지의 웃돈이 상승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분양권 전매제한이 청약 조정대상지역에 한정됨에 따라,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다른 자치구로 투자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