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후 방어수단’ 자진 무장해제한 유도탄고속함
  • 박동욱 기자 (sisa510@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1 17:28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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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전 시 ‘지그재그’ 운항 이어 ‘전자견시장치’ 누락도 확인…부실 수주 및 건조 배경에 누가 있나

 

2015년 1월29일,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전격 체포됐다. 2008년 10월께 고속함 및 차기 호위함 수주 등의 편의 제공 대가로 옛 STX그룹 계열사로부터 아들이 설립한 요트 회사를 통해 7억7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정 전 총장은 대법원까지 이어진 2년간의 소송 끝에 결국 올해 2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정 전 총장이 뇌물을 받은 시기는 우리나라 해군 역사상 최초의 전투함용 독자 모델 전투체계를 갖춘 유도탄고속함이 건조되던 때와 겹친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 전 총장에게 우회적으로 뇌물을 건넨 STX엔진과 같은 STX그룹 계열사이던 STX조선해양은 2007년 3월 방위사업체로 지정됐고, 그해 10월 입찰 공고가 난 차기 고속정(PKX-A) 유도탄고속함 2~5호함을 수주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2002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목숨으로 사수하다 전사한 용사들의 이름으로 부활한 유도탄고속함이 각종 비리와 의혹에 연루되면서 의미가 반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STX조선해양 수주한 유도탄고속함 뒷말

 

국내 3대 방위사업체인 대우조선해양·한진중공업·현대중공업 등은 당시 STX조선해양이 방위사업체에 지정된 것에 반발, 법원에 지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STX조선해양의 고속정함 사업 진출을 막지는 못했다. 서울행정법원도 방위사업청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갓 방위사업체 지정을 받아 새로운 PKX 전투함 건조 사업에 뛰어든 STX조선해양의 기술력이었다. STX조선해양이 수주한 2~5호함의 시제함인 제2호 함정(한상국함) 시운전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났다. 인도 시기를 1년여 앞둔 2009년 6월 시운전 당시 제2호 고속정은 ‘지그재그’ 운항으로 차기 고속정 사업이 무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STX조선해양은 인도 시기를 1년이나 넘겨 해군에 인도했지만, 이후에도 배기가스를 밖으로 내보내는 ‘폐기신축관’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차기 고속정의 최후 방어수단인 핵심 정보수집 장비 설치 계획이 방위사업청의 오락가락 행태 속에 슬그머니 철회된 사실도 확인됐다. ‘대공함물표(전자견시)장치’로 불리는 이 기기를 중도 포기한 것은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뇌물 사건 및 부실 건조 의혹 등과 맞물려 방산비리 의혹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차기 고속정의 초기 건조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관계자의 폭로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1호함에 없던 정보수집 장비인 ‘대공함물표(전자견시)장치’를 2호함에 장착하는 프로젝트를 STX조선해양과 추진했다. 대공함물표장치는 함정의 레이더 방어망에 포착되지 않은 적함이나 적 항공기에 전자빔을 발사해 자동으로 측량, 선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술통제장비의 핵심 정보수집 기기다. 견시병이 육안으로 방위각, 거리 등을 대략 인지해 육성으로 불러주는 방식에 비해 신속성과 정확성이 개선돼 방어력을 높이는 일종의 ‘전자견시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자견시장치 설치 슬그머니 철회 왜?

 

방위사업청은 2007년 6월께 시제함(윤영하호 1호함) 건조 과정에서 전자해도시스템에 이 대공함물표장치를 포함해 설치키로 결정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STX조선해양(2~5호함)과 한진중공업(6~9호함)은 당시 국내에서 선박의 정보수집 기기 생산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던 부산의 A업체에 ‘대공함물표장치’를 주문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계획은 돌연 중단됐다. 대공함물표장치를 설치할 경우 기존 전투체계 시스템과 연동해 작동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기술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고민에 빠진 방위사업청은 STX조선해양·한진중공업 등 고속함 건조업체를 비롯해 대공함물표장치 납품 계약 업체와 밀고 당기는 핑퐁 게임을 벌이다 대공함물표장치를 포기했다. 방위사업청은 2010년 7월12일 차기 고속함 탑재장비 사양검토 회의를 열어 대공함물표장치를 납품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 이후 방위사업청 직원과 조선업체의 담합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정을 일시 유보했지만, 2011년 8월24일 해군과 다자간 협의체인 형상통제심의회의를 열어 대공함물표장치 삭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고속정 건조업체가 납품업체에 통지한 표면적 계약 취소 사유는 ‘납기 관련’이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랐다. 사양검토회의에서는 ‘장비 중복’으로, 두 차례 형상통제심의회에서는 ‘원가 부정과 납품 불능’ 등으로 취소 이유가 달랐다. 계약 취소에 따른 배상을 하지 않기 위해 ‘을’의 입장인 납품업체에 취소 이유를 떠넘긴 인상이 짙게 풍기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고속정사업팀 직원과 함정 제작사의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자 2010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자체 감사를 벌였다. 감사 결과 장비 추가 결정과 관련, 해당 납품업체는 연관성이 없다는 통보를 방위사업청으로부터 받았다. 대신 방위사업청 관계자가 국방부 감찰단에 고발됐다.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는 방위사업청 감사와 별도로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 역시 원가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납품업체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 때문에 국방부의 또 다른 조사는 방위사업청의 감사 결과를 물타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군 안팎에서 나왔다.

 

이후 국방부 검찰에 고발된 해당 간부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진행되지 않았고, 어떤 징계를 내렸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간부는 그 이후 전역한 뒤 STX엔진 핵심 간부로 특채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함 및 차기 호위함 수주 등의 편의 제공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올해 2월 법정구속됐다. © 연합뉴스

 

후속함 시운전부터 갖가지 ‘異常 증상’

 

대공함물표장치 장착 포기 문제와 별도로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에는 초기부터 갖가지 의혹이 따라붙었다. 방위사업청은 2007년 11월23일 STX조선해양과 2~5호함 건조 계약을 체결하면서 2호함 납기일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연장해 줬다. 입찰공고 당시 경쟁업체인 한진중공업의 도크(Dock)가 꽉 차 있는 바람에 입찰을 포기한 것을 감안하면, 납기 6개월 연장은 ‘특혜’라 할 만하다.

 

문제는 납기 연장에 그치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이름을 붙여 만든 2번함은 고속으로 움직일 때 직선주행을 하지 못하고 ‘갈지자’로 운행하는 심각한 결함을 나타냈다. 결국 STX조선해양은 2010년 9월30일 인도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가 1년이나 지연된 2011년 9월말에 전격적으로 해군에 인도했다. KBS가 ‘고속함 잇단 결함…2조4000억 사업 위기’라는 타이틀로 심층 보도한 직후여서 뒷말이 나왔다.

 

이 같은 부실 건조 의혹을 받은 차기 고속정이 2011년 9월 해군에 인도된 뒤 ‘직진성 문제’가 기술적으로 말끔히 해결됐을까. 이 부분은 해군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갖가지 부실 건조 의혹에다 이번에 대공함물표장치의 석연치 않은 중도 포기까지 밝혀지면서 차기 고속정함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대공함물표장치 납품 포기 사실을 폭로한 제보자는 “방위사업청은 당시 대공함물표장치의 (사양) 삭제 이유로 ‘레이더’와 중복돼 불필요하다고 했으나 대공함물표장치는 근접 물체를 신속히 정확하게 파악해 대응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멀리 있는 물체를 발견하는 레이더의 기능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갖가지 의문에 대한 서면 질의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고속함의) 지그재그 운항은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후 해군에 정상 인도됐다”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또 대공함물표장치 포기와 관련해서는 “업체 간 소송 진행 및 수사 관련 사항으로 답변이 제한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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