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文 대통령의 포항 방문 너무 늦었다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7 09:59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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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월24일 경북 포항을 방문했습니다. 11월15일 오후 2시29분 한반도 지진 관측 사상 역대 두 번째인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지 9일 만입니다. 문 대통령은 7박8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공군 1호기 안에서 지진 발생 보고를 받았고, 11월15일 오후에 귀국했습니다.

 

포항 방문 관련 기사는 이미 많이 나왔으니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합니다. 문 대통령의 포항 방문 시기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장 현장에 달려가는 방안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통령은 16~18일 사이 지진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지 초동 대처가 한창이고 수능 연기 후속 조치 때문에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최고의 정치인입니다. 대통령이 하는 모든 언행은 하나하나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고현장에 바로 가느냐 여부는 몹시 정치적이겠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문 대통령은 귀국 즉시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나았다고 봅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여럿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24일 지진 피해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을 방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우선 이번 포항 지진이 국민들에게 큰 공포를 안겨줬다는 점입니다. 이 지진은 체감상으로 근래 몇 십 년, 어쩌면 백 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진 중 가장 강력한 지진입니다. 11월24일 현재 피해액이 지난해 경주 지진의 약 8배에 달하는 것만 봐도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호 이 코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포항 지진은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근거 없는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지난해 9월12일의 경주 지진 때만 해도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지진 났다는 것을 기사 보고 안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지진이 난 것을 거의 전 국민이 몸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항 시민들이 느꼈을 공포심은 가히 형용불가(形容不可)입니다. 문 대통령이 주무 장관과 국무총리를 바로 현장으로 보내고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이런 미증유(未曾有)의 초대형 재난을 당해 망연자실한 포항 시민들 입장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현장에 와서 같이 슬퍼하고 위로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필요한 행정조치는 국무총리가 해도 됩니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병인 지역감정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지역감정이 엄연히 남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출신지가 경상도, 더 정확히 시쳇말로 말하면 PK지역입니다. 사고가 난 포항은 TK지역에 해당합니다. 지금 문 대통령에게 가장 반감이 강한 지역은 TK지역입니다. 또 공교롭게도 포항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고향입니다. MB는 문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적폐청산의 주요 대상이죠. 그래서 포털에 “MB 고향인 포항에서 지진이 나서 안 오나?”라는 댓글이 제법 보입니다. 저는 문 대통령이 이런 이유로 포항에 빨리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젭니다.

 

이런 부작용도 있습니다. 11월23일 대기업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깁니다. “대통령이 포항에 아직 안 가니 우리도 눈치가 보여 성금을 낼 수 없다.” 대통령이 포항 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몰라 기업들이 우왕좌왕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현장이 중요하다는 뜻인데, 문 대통령은 이번에 현장에 가보지 않고 서울에서 지휘를 했습니다. 앞으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언제 가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방문시점 비교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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