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교보그룹 후계구도…계속되는 상장 연기 ‘전전긍긍’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9 11:57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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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37) 교보생명그룹] 두 아들에게 주식 승계 안 해 상장 ‘부담’

 

교보생명그룹을 상징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투명’이다. ‘투명경영’은 교보생명에 있어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가치다. 교보생명이 회사 소개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자랑하는 것이 2015년 12월 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 ‘A1’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보는 국내 보험사 중 처음으로 무디스로부터 A1 등급을 받았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교보가 투명경영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생보사 빅3’로 불리는 삼성·한화 등과는 달리 유일하게 그룹 오너가 직접 최고경영자(CEO)까지 맡고 있는 회사다. 알려진 대로 총수인 신창재 회장은 의사 출신 CEO다. 신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이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10년간 서울대에서 교수로 지냈다.

 

그랬던 그가 기업 경영에 나선 것은 부친이자 창업주인 신용호 명예회장이 1996년 암 선고를 받으면서다. 신 명예회장은 장남인 신 회장이 가업을 이어가길 원했다. 결국 신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 자격으로 입사해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신 회장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부실뿐이었다. 신 회장 취임 당시 교보는 적자액이 2540억원에 달했다. 국내 대표 생보사였지만 집안 살림은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이때 신 회장이 뼈저리게 느낀 것이 ‘투명경영’이었다는 후문이다.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본사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지나치게 생명보험에만 업종 특화돼

 

물론 이는 전직 의사였던 신 회장의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 또 투자기간을 길게 잡고, 위험 보장에서 본질을 찾으려는 보험업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투명이라는 말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낳게 만든다. 교보가 딱 그렇다. 현재 교보생명의 약점은 기업의 성장 비전이 약하다는 점이다. 신 회장 취임 이후 실적은 좋아졌지만, 이는 교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대형 생보사 전체가 나름 괜찮았다.

 

교보생명그룹은 대체로 생보업에 특화돼 있다. 은행·증권 등 다른 금융업은 둘째 치고, 화재보험 분야에서조차 시장 지배력이 약하다. 한 교보생명 고위급 재무설계사는 “점차 고객들이 보험을 자산관리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우리는 생명보험·연금보험 말고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기업 인수·합병(M&A)을 약속해 왔다. 이때 신창재 회장이 제시한 기준은 ‘적당한 가격’이다. 어찌 보면 참 두루뭉술하다. 그러니 비판론자들이 “교보나 신 회장에게는 기업 성장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신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제대로 된 M&A 성공 사례가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신 회장의 방어적인 전략이 크게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2012년 교보는 KB금융지주와 주식을 교환하는 이른바 ‘스와프 딜’을 추진하려 했다. 교보가 약한 은행 서비스와 KB금융지주가 약한 생명보험 서비스를 서로 충족시켜줄 거라는 점에서 시장의 그대는 컸다. 하지만 이 거래는 중간에 흐지부지 끝났다. 2015년에는 인터넷은행 케이(K)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놓고 고심하다 막판 포기한 전례도 있었다. 한 해 전 우리은행 인수전(2014년)에서 발을 뺀 것도 뒷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또, 지난해 5월 ING생명 인수전에서는 너무 낮은 가격을 써내 고배를 마셨다. 당시 ING생명 측은 지분 100%를 3조원 이상에 매각하겠다고 결정했으나, 교보는 2조원 이상은 비싸다고 판단했다. 만약 ING생명 인수에 성공했다면 교보는 생보업계 2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의 야심작인 신사업도 줄줄이 좌초되고 말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교보생명그룹은 미국과 일본에 있는 교보생명자산운용까지 포함해 총 1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신 회장이 대표이사에 오른 후 세운 것은 KCA손해사정(2002년), 교보데이터센터(2008년),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2013년) 등이다. 그런데 교보데이터센터와 KCA손해사정은 사실상 교보생명그룹에 매출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가령 2002년 설립돼 현재 교보생명의 보험계약 심사와 보험사고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KCA손해사정은 지난해 26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중 93.4%가 계열사 매출이다. 교보정보통신·교보리얼코도 마찬가지다.

 

신 회장 취임 후 설립된 몇몇 계열사는 업황 부진 등의 이유로 매각됐다. 대표적인 것이 악사(AXA)손해보험(옛 교보자동차보험)이다. 국내 최초 인터넷 보험사 교보자동차보험은 교보생명 자본금 확충을 위해 2007년 프랑스 악사손해보험에 905억원에 팔렸다. 2013년 12월말 세워진 국내 최초 인터넷 전업 생명보험사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의 부진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설립 후 분기마다 40억~50억원씩 적자를 내면서 현재 자본잠식 상태다. 당초 교보는 업종의 특성상 5년 후 흑자 달성을 예상했지만,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한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관계자는 “교보는 연금보험의 경우 채권 투자 비중이 타사에 비해 높은데, 이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특수관계인 지분 모두 합쳐도 40% 못 넘어

 

교보를 둘러싼 업황은 신 회장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교보처럼 생보업 한 분야에만 특화된 채 생존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KB금융이 최근 몇 해 사이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을 사들이면서 사업 영역을 늘리고 있는 게 좋은 예다. 당장 KB금융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ING생명 인수전에도 뛰어든다는 각오다. 삼성·한화 등 다른 대형 생보사들도 증권·자산운용 등 다른 금융 계열사와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교보생명그룹에서 교보증권이나 교보자산운용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더군다나 교보증권은 2000년 이후 꾸준하게 매각설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국내 금융권에서 교보는 수년 전부터 IPO(기업공개)를 통한 자본 확충이 대안으로 제시돼 왔다. 다른 금융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자본 확충이 시급한데 이를 위해서는 상장(上場)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올 3분기 현재 교보생명은 총자산 101조5660억원, 당기순이익 5143억원을 기록했다. 대표적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은 기준치를 상회하는 255.6%였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현재 신창재 회장은 지주회사 격인 교보생명의 확실한 지배권을 확보해 놓지 못한 상태다. 올 3분기 현재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은 33.78%다. 누나인 신영애·신경애씨는 각각 1.41%·1.71%씩 갖고 있다. 계열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쳐도 37%가 채 되지 않는다.

 

당장 2대주주로 지분 24%를 보유한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눈치가 보인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이 갖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나눠서 인수한 재무적투자자(FI)다. 이 컨소시엄은 사모펀드 어피너티와 IMM·베어링·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당시 3~5년 후 투자금을 환수하는 조건으로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ING생명처럼 교보생명이 기업공개를 해 FI가 이익실현을 하는 것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봤다. 하지만 교보나 신 회장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FI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현재 교보생명은 FI와 투자약정을 체결하면서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신 회장은 왜 선뜻 기업공개에 나서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현재로선 시장과 신 회장이 생각하는 교보생명의 가치 차이가 크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 회장의 경영권만 위협받을 수 있다. 주식 공모 후 신 회장 보유지분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보생명 측은 “우호지분이 많아 경영권이 흔들릴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고민은 불투명한 경영권 승계다. 신창재 회장은 2010년 사망한 전 부인 정혜원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현재 신 회장의 아들들에게 간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다. 장남인 신중하씨(37)는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2015년 계열사인 KCA손해사정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 차남 신중현씨(35)는 해외에서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두 아들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교보생명 한 고위급 임원도 “언론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장남의 활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몇 해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는 구멍가게가 아니기 때문에, 때가 된다면 내 자녀든 아니든 유능하고 준비된 사람이 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말해 당장 경영권 승계에 나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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