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플랫폼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 김조한 넥스트미디어연구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9 15:53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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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콘텐츠 질적 향상, 한류 콘텐츠 위협

 

한류(韓流)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1월11일 중국의 ‘광군제’ 행사에서 전지현이 다시 모델로 등장했고, 그런 이유로 중국에서 다시 콘텐츠 분야의 한류 바람이 분다고 속단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콘텐츠 비즈니스 진행 상황을 볼 때, 예전처럼  한류 콘텐츠의 중국 수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만약 정치적으로 한·중 관계가 회복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불행히도 중국의 미디어 플랫폼에서 한국의 콘텐츠는 점점 불청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 중국 대륙에서는 한국 콘텐츠보다 중국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인기가 더 많다. 한국 드라마는 중국의 5대 동영상 플랫폼(아이치이·유쿠투도우·러에코·텐센트비디오·소후)에서 2016년 37편의 드라마가 총 136억 조회 수를 기록했으며, 평균 3억7000만 회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 드라마는 아이치이 하나만 해도, 250편의 드라마에서 총 1430억 회를 기록했으며 평균 5억7000만 회를 기록했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사전 제작 드라마가 아닌 경우는 한국에서의 큰 성공에 힘입어 중국으로 수출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조차도 중국 드라마 전체와 비교해 볼 때 밀리는 것이다. 상위 10%를 비교하면 더욱더 차이가 큰데, 중국의 경우 평균 35억 조회를 기록한 것에 반해, 한국 드라마는 평균 12억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 드라마는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성장했으며, 그 와중에 웹드라마 평균 제작비도 4억~8억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제작비가 올라가니 퀄리티도 높아져 성공하는 콘텐츠가 늘고 있다.

 

중국에서 기회가 없다고 해도, 탈출구는 있다. 동남아 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아세안 10개국만 해도 인구가 6억이 넘는다. 그래서일까? 홍콩·싱가포르·중국·호주 등의 자본은 아세안과 인도 시장을 잡기 위해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보보경심: 려》의 경우, 중국에서 편당 6억~7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론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OTT(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들과도 편당 수억원에 계약해 큰 매출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제작비로 150억원을 투자했고 정작 한국에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콘텐츠가 전 세계 매출을 통해 300억원 수준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처럼 《보보경심: 려》는 설령 중국이 없었어도 결코 실패한 콘텐츠가 아닌 것이다.

 

동남아 기반 플랫폼 ‘뷰’ ‘아이플릭스’ ‘비키’ 캡처 사진.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사업자들은 동남아를 ‘향후에 뛰어들 시장’이라고 여겨왔지만, 이미 이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OTT 업체들은 이미 이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특히 ‘뷰’ ‘아이플릭스’ ‘비키’ 등 플랫폼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만큼 한류에 우호적인 업체들도 없으며, 《보보경심: 려》 《도깨비》 등을 성공하게 한 동남아 현지의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 콘텐츠들이 야금야금 시장을 위협해 오고 있는 플랫폼 전쟁터이기도 하다.

 

뷰(Viu)는 홍콩의 IPTV 사업자인 PCCW가 내놓은 서비스로, 론칭 초기부터 한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무심코 뷰의 서비스를 본다면, 마치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뷰는 현재 15개국에서 400만 명의 유료 가입자와 1000만 명의 무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에서 뷰는 유료 가입자 기준 1위다. 아직까지는 적자의 서비스 플랫폼이지만, 한국 드라마를 적어도 8시간 이내에 볼 수 있기 때문에(현지화된 자막 포함)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말레이시아의 넷플릭스 카피켓’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아이플릭스(iFlix)는 말레이시아에서 서비스를 론칭하고 시작했지만, 실제론 말레이시아 회사가 아닌 호주의 인터넷 기업으로 잘 알려진 카챠(Catcha)그룹이 모회사다. 이렇듯 호주 자본과 기술로 시작했음에도 말레이시아에서 마케팅·디자인·개발 인력들을 기용해 말레이시아 회사로 홍보한 것은 완벽한 동남아 현지화를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한류도 핵심 콘텐츠에만 크게 투자해 확실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도깨비》 《푸른 바다의 전설》 《태양의 후예》 《응답하라 1988》 등 4개 시리즈를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이를 포함해 총 19개의 독점 시리즈를 가지고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다. 물론 독점 시리즈의 숫자를 계속 늘리고 있으며, 콘텐츠 숫자도 다른 서비스 업체들과 경쟁할 수준이다.

 

비키(Viki)는 동남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로 보기 어렵지만, 훅·아이플릭스·뷰 등과 현재 동남아에서 경쟁 중인 OTT 사업자임엔 분명하다.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2013년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에 인수되면서, 글로벌 비디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계약하기 시작했다. 《도깨비》 《힘센 여자 도봉순》 《사임당 빛의 일기》 《푸른 바다의 전설》 《화랑》 등을 정식으로 계약해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국 자체 플랫폼 서비스 업체 키우는 전략 필요

 

아시아 미디어산업 분석기관인 ‘MPA(Media Partners Asia)’가 지난 5월에 내놓은 시장 분석은 다음과 같다. “이전까지 아시아에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 가운데 할리우드 콘텐츠가 80%를 점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20%는 한국 콘텐츠와 기타 아시아 국가들의 콘텐츠였다. 하지만 최근엔 할리우드가 50%, 한국 콘텐츠가 30%, 기타 아시아 콘텐츠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즉, 한류 콘텐츠는 아시아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이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동남아에 투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태국의 인구는 한국보다 많은 6796만 명 정도이고, 미디어 시청을 대단히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작년 5월 CJ E&M이 태국의 극장 체인과 영화 합작사를 설립해 로컬 영화 및 합작 영화를 현지에서 상영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기도 했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에서 마마무의 소속사로 알려진 RBW가 베트남 현지 지사를 설립해 현지에서 프로그램 제작 및 매니지먼트 사업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자체 플랫폼을 육성해 서비스하는 한국 회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 플랫폼을 벗어나면 ‘큐텐(Qoo10.com)’이라는 커머스 플랫폼밖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동남아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플랫폼이 중요하다고 말들은 한다. 그리고 우리는 콘텐츠 사업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동남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때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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