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원은 '경제 살리기', 서민 지원은 '도덕적 해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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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소액연체 지원책… “‘버티면 된다’ 인식 줄 것” ↔ “금융권 부실부터 고려해야”

 

정부가 대규모 빚 탕감책을 내놓은 가운데,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빚은 버티면 된다'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도덕이란 잣대를 취약 계층에만 들이댄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11월29일 발표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은 1000만원 이하의 대출 원금을 10년 넘게 갚지 못한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다.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전부 없애준다. 수혜자는 159만명, 탕감 금액은 6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1월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규모 빚 탕감책, '도덕적 해이' 비판 휩싸여

 

빚 탕감책을 내세운 건 문재인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720만명 신용대사면 공약을 발표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320만명 채무불이행자의 구제를 약속했다. 그때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은 어김없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도덕적 해이는 금융정책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발생한다. 도산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이 그 예다. 경영진은 해운업황의 빠른 변화를 읽지 못하고 방만 경영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5년엔 3조2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같은 해에 임직원은 격려금으로 1176억원을 챙겼다. 

 

더 큰 문제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조 단위의 국민 혈세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은 2015년 10월과 올 4월 두 차례에 걸쳐 대우조선해양에 총 7조1000억원을 지원했다. 이번 빚 탕감책에서 밝힌 탕감액(6조2000억원)보다 9000억원 더 많다. 한 블로거는 “대기업은 망하면 대량 실업이 우려되니 도와줘야 하고, 저소득층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니 도와주면 안 되나”라고 꼬집었다. 

 

 

탕감액보다 많은 기업 지원금…“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고려해야”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11월30일 시사저널에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못지않게 금융권 등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란 허상에 빠져 대기업에 부실대출을 일삼은 결과 IMF가 터졌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빚 탕감 운동을 진행 중인 비영리단체 ‘주빌리은행’의 대표를 맡고 있다. 

 

빚 탕감책을 채무자의 고통이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빌리은행의 백미옥 사무국장은 11월30일 이메일을 통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할 수 있는 조치들은 매우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거래 제한 △통장 압류 △전화 추심 △독촉 문자 △채무자 부재시 주민등록 말소 등이 그것이다. 백 국장은 “빚을 못 갚았다고 벼랑 끝까지 떠미는 것이 합당한가”라고 지적했다. 

 

빚이 있으면 언젠가는 청산할 거란 보장도 없다. 신용회복위원회 제도기획부의 한 관계자는 11월30일 “10년 넘도록 1000만원을 못 갚은 사람은 상환하기 어렵다고 추정한다”고 했다. 유종일 교수는 "정부가 탕감 대상으로 삼는 채무는 갚지 않는 빚이 아니라 갚지 못하는 빚"이라고 주장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력으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분들을 도덕적 해이란 틀에 가둔다면, 평생 연체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빈곤과 금융채무가 악순환하는 금융채무정책을 규탄하고 살인적 고금리 철회를 촉구하는 '빚없는 세상을 향한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가 2008년 1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도덕적 해이 최소화 방안 마련돼

 

그럼에도 빚 탕감이 상대적 박탈감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박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을 고를 때 상환능력을 면밀히 심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등 거둬갈 재산이 있고, 월소득 99만원(중위소득 60%)이 넘으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빚 탕감이 일부 제한된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실한 상환자가 더 큰 혜택을 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인하대 경제학과 장세진 명예교수는 "10년 이상 연체된 빚은 채권자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돈"이라며 "장기 연체자에게 도덕적 해이란 꼬리표를 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빚 부담을 줄여줘 사회로 복귀시키는 게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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