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골갱이는 없고 쭉정이만 있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3 22:16
  • 호수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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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권위·소통 행보 나선 문무일 검찰총장 검찰 개혁 핵심인 수사권 조정·공수처 신설은 반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 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8월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과거 시국 사건 등 잘못된 수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검찰이 과거사를 공식 사과한 건 처음이었다.

 

이보다 앞선 7월28일, 문 총장은 경찰청을 전격 방문해 이철성 경찰청장을 만났다. 검찰총장이 경찰청장을 방문한 사례는 문 총장 이전에는 없었다. 검찰총장은 장관급, 경찰청장은 차관급인 데다 검찰은 경찰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문 총장은 “검찰과 경찰은 동반자이고 협업하는 관계”라면서 검찰이 경찰을 하급기관에서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7월2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문 총장의 취임식은 문재인 정부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이른바 ‘PPT 취임식’으로 치러졌다. 근엄한 취임사 대신 문 총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PPT)을 통해 정책 비전을 밝혔고, 취임식 후 검찰 간부들이 서열 순으로 도열해 문 총장과 악수하는 관례도 없어졌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방침에 따라 법무부 간부는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25일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차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문 총장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사월천(四月天)’’이라는 한시를 읊었다. ⓒ 사진=연합뉴스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겠다”

 

검찰총장의 국회 불출석 관행도 깼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제외하고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예결위원회엔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 총장은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에 훼손이 없는 선에서 출석할 의향이 있다”며 국회 출석을 약속했다.

 

문 총장은 취임 후 파격 행보를 보여왔다. 몸을 한껏 낮추고 정치권과 경찰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데 주력했다. 문 총장은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 태어나라는 지상명령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 출발점은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 왔던 검출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청산이었다. 문 총장 취임 후 검찰 고위직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이뤄졌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선 결국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문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제도적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做天難做四月天)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란다(蠶要溫和麥要寒)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기다리는데(出門望晴農望雨)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날씨를 바란다(採桑娘子望陰天)’

문 총장이 청와대에서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읊은 시다. 하늘에 바라는 사람들의 욕구가 저마다 제각각임을 노래한 대만 학자 난화이진(南懷瑾)의 ‘사월천(四月天)’이라는 한시다. 이를 두고 문 총장이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문 대통령과 다를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 권한의 축소와 견제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기소권·영장청구권·수사지휘권·형집행권 등 5대 권한을 모두 갖고 있다. 경찰은 검찰의 권한 중 일부를 경찰이 가져와야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확립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문 총장은 경찰에 권한이 넘어갈 경우 오히려 경찰 권력이 비대해져 국민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영장청구권을 경찰이 행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는 영장청구권의 주체로 ‘검사’만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문 총장은 “지금까지 검찰에서 영장청구권과 관련해 마치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모습이 국민께 비쳤다면 그건 대단히 일을 잘못했던 것이다. 영장청구권은 검사의 권한이 아닌 책무”라며 “영장청구권은 검사의 권한이 아니다. 그 조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어떤 단계를 둘 것이냐, 어떤 방식으로 제한할 거냐, 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즉,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줄 경우 무분별한 영장청구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장청구를 검사만이 할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검찰총장과 데자뷔

 

문 총장은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보장받는 것에 대해서도 “경찰이 이미 수사 개시와 진행을 하고 있고 나머지 하나인 종결권까지 행사한다면 수사권 전체를 경찰이 행사하게 되는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국 문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바라보는 입장은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등 검찰제도를 둔 대부분의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 기능과 수사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경찰수사가 미흡하거나 잘못됐다면 검찰에서 보완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문 총장의 이와 같은 입장은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보여온 검찰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문 총장의 전임인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검찰은 경찰국가 시대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준사법적 인권옹호기관으로 탄생했다”면서 “검찰은 인권옹호기관이라는 검찰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황운하 당시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검찰은 개혁에 반발하기보다는 반성이 앞서야 한다. 검찰은 이제껏 특권계층인 양 마음껏 초과권력을 누려오지 않았는가”라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고백하고 국민들의 판단에 새로운 검찰제도 설계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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