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사라진 현대차, 미래 불안감도 커졌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7 14:48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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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終)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해소·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잠재워야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재벌 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들에 “연말까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밑그림과 의지를 보여 달라”고 주문한 것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했지만 현대차그룹은 그대로였다”고 꼭 집어 밝힌 바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8%를 갖고 있고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9%를, 기아차는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보유하고 있다.

 

관건은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에게 어떻게 경영권을 넘기느냐는 것이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오랜 숙제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 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사실상 진두지휘해 온 데다 외아들이어서 경영권을 넘겨받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시장으로부터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국회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내 기존 순환출자를 강제로 끊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본사 건물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김상조 공정위원장, 현대차 순환출자 해소 요구

 

차기 총수인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23.3%와 현대차 2.3%, 기아차 1.7% 지분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은 주력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인 현대, 기아차 지분은 2.3%와 1.7%에 불과하다. 순환출자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단 한 주도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은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꼽혔다. 현재 주식시장에서는 이와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아직까지 어떤 것도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경우 예상되는 것은 삼성그룹의 문제점을 면밀하게 검토할 거라는 점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것은 현대차그룹이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우선 순환출자를 끊는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든다. 당장 기아차가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사들이려면 약 4조3000억원이 필요하다. 또, 현대차가 갖고 있는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려면 4조5000억원, 현대모비스가 갖고 있는 현대차 지분 20.8%를 사려면 6조2000억원이 든다.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쉬운 방법은 정의선 부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우호세력의 도움을 받아 현대모비스가 갖고 있는 현대차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모두를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2017년 중반까지 가장 유력하게 검토된 시나리오였다. KB증권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변화, 이제 시작이다’)에서 “현대글로비스가 반조립제품수출(CKD) 사업부를 매각하고 해운업 등 다른 사업을 시작하면 계열사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부 매각에 따른 주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현대글로비스의 CKD 사업부 매각이 계열사 매출 비중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고 봤다. 그만큼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2016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현대글로비스의 계열사 매출은 10조8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0.5%를 차지했다.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사업부문은 물류와 유통이 양대 산맥이다. 그리고 유통에서 CKD 매출은 절대적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CKD 사업부문 매각으로 현대글로비스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4조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 당시 KB증권은 이 돈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봤다.

 

 

정 부회장, 현대글로비스·엔지니어링 덩치 키워야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다. 단순히 순환출자 고리만 끊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를 각각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나누고, 3개 회사 투자 부문을 합쳐 가칭 ‘현대차그룹홀딩스’라는 이름의 지주사를 세워, 순환출자 구조를 깨는 방안이다. 하지만 3개사 모두 분할과 합병이라는 과정을 거치려면 여섯 번의 주총을 열어야 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이 한층 강화된 것도 부담거리다.

 

반대로 현대모비스나 현대차 등 특정 회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식도 가정할 수 있다. 가령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의 정점에 놓는다면 이런 구도도 가능하다. 현대모비스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한 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부회장이 사들이고, 현대모비스 사업회사는 지주사가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현대모비스 지주사→현대모비스 사업회사→현대차→기아차로 구성된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일부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현행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차그룹 내 금융 계열사 지분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정의선 부회장의 자산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 부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를 높이는 게 손쉬울 수 있다. 최근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14년 정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시켜 실질적 지배력을 키운 바 있다. 경우에 따라 그룹 내 비슷한 일을 하는 현대건설과 합병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017년 3분기 현재 정 부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11.7%다. 하지만 이는 합병비율을 놓고 현대건설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두 회사의 합병은 동종 기업의 화학적 결합이라기보다 총수의 주식 가치나 기업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비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서는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 현대엔니지어링 직원들은 최근 노조를 설립하면서 “최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현대건설과 인위적으로 합병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계 시장 판매 감소·협력업체 매출 최악

 

정몽구 회장의 나이를 감안할 때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이양은 기정사실과 같다. 현재 현대차그룹 경영은 사실상 정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중국발(發) 사드 후폭풍으로 엄청난 매출 타격을 입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을 중단할 의사를 보이면서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중국 내 판매망을 어떻게 재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로 오를 전망이다. 또 정 부회장이 강성 노조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드러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현대차그룹의 문제는 따로 있다. 합종연횡이 심해지고 있는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가 고민거리다. 사드 문제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중국 시장이 사드 반발로 고전하고 있는 사이 미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현대차와 기아차의 해외 판매량은 각각 26만5000대와 12만 대를 기록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3.9%, 22.6%나 떨어졌다. 지난 7월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문 조사회사 포인(Fourin)은 ‘현대자동차그룹 2025년 전략 보고서’에서 “현대차가 최대 해외 사업 기반인 중국에서 선진 메이커와 중국 로컬 메이커 양쪽에 밀리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이면서, 지금까지 구축한 판매 기반이 잠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인은 그러면서 “큰 수익원이었던 북미시장에서는 라이벌인 일본 차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수익 악화와 점유율 저하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중국 공장 판매 회복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미국 공장 가동률도 조정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전기자동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자동차, 무인주행, 커넥티드 자동차 시대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한 민간연구기관 연구원은 “현대차는 R&D(연구·개발) 투자액이 4조원으로 전체 매출의 2%에 불과한데 이는 선진국 완성차 평균치(4%)보다 훨씬 낮다”고 말했다.

 

이런 경영 위기 속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역할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사립대 교수는 “기아차 경영 시절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책임자로 영입하면서 디자인 경영을 추구했지만 그마저도 최근 와서는 러시아 목각인형 같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면서 “M&A나 기술제휴 같은 것을 등한시하고 갑을관계 중심의 선단식(船團式)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 부회장이 여전히 부친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자율주행·전기차 생산을 늘린다고 해도 핵심부품 대부분을 해외 것으로 채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세계 판매량은 2015년 802만 대를 정점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사의 실적 개선을 위해 협력업체를 쥐어짠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현재 자동차 부품업계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사드 보복에 따른 중국 내 판매부진과 강성 노조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완성차 업계에서 현대차가 협력업체에 무리하게 납품단가를 낮춰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자료를 보면, 구조조정 대상(C·D등급)에 오른 자동차 부품업체는 2017년 16개사였다. 2016년 5개에서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16개 중에서 13개사가 퇴출이 임박한 D등급이었다. 서울시 내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완성차와 부품업체 간 종속적인 매출 구조가 이어지면 부품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며, 이는 현대차그룹 차량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쟁 자동차 메이커들이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사이 현대차는 외형 성장을 추구했다. 자동차와 무관한 분야로 업역을 넓힌 것이 오히려 경쟁력 약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부품사의 경쟁력이 한꺼번에 향상되지 않으면 정의선 부회장은 물론 현대차의 앞날도 밝지 않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 남매간 계열사 지분 정리도 주목받는다. 정몽구 회장의 맏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이노션 지분 28.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룹 계열사 중에서 정성이 고문이 최대주주로 있는 곳은 이노션뿐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6년 기준 이노션의 내부거래 비중은 79.9%였다.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 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이 현행 30%에서 낮아지면 정 이사를 비롯해 현대가 오너는 보유 지분을 대거 팔아야 한다. 여기에 지난 12월20일 정부가 밝힌 ‘총수가 자신의 6촌 이내 친족이나 4촌 이내 인척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친족분리가 제한받는 것도 이노션에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보유 지분이 줄어들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재로선 계열사 매출 비중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금융부문에서는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주목받는다.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인 정명이씨는 현재 현대커머셜 고문으로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명이 고문의 현대커머셜 지분은 33.3%다. 남편인 정태영 부회장 지분은 16.7%고 나머지 50%는 현대차가 주주로 있다. 현대카드는 현대차가 37.0%, 현대커머셜이 2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결국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결정해야 계열 분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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