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선 지사 “외국인들이 처음엔 ‘평창’을 ‘평양’과 헷갈려 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 16:22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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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 삼수 끝에 유치했던 김진선 前 강원지사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산파(産婆)’로 불린다. 강원 지역 도지사로서 2010년과 2014년, 그리고 2018년까지 올림픽 유치 삼수 과정을 주도했다. 직접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세 차례 유치를 호소하기도 했다. 김 전 지사 스스로 “나만큼 평창올림픽을 시작부터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할 만큼,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태동부터 지난 십 수년 역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전국적으로 올림픽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던 2014년 7월, 갑작스레 초대 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퇴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서 밝혀졌지만, 김 전 지사는 당시 상황과 구체적인 사퇴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그를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자신의 발언이 자칫 올림픽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다만 그는 내년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올림픽 역사와 비화를 소상히 담은 책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흔히 올림픽을 잘 안다는 사람들의 얘기 중에도 내가 보기에 사실과 다른 부분, 왜곡된 게 참 많다. 세월이 지나고 그런 잘못된 정보들만 남아 있으면 큰일 아닌가. 평창올림픽은 그 자체로 스토리 가치도 있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게 내가 올림픽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과제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시사저널은 12월1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 전 지사와 만났다. 현재 김 전 지사는 대부분의 생활을 강원도 오대산 인근 자택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강원도청 기획관리실장 시절부터 꿈꾸기 시작해, 도지사 시절 3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올림픽은 내 ‘삶’이자 ‘운명’과 다름없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현업에선 물러났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올림픽’에 대한 걱정과 기대뿐이었다.

 

김진선 전 강원지사 © 시사저널 임준선

 

“평창, ‘평양’과 헷갈려 할 만큼 인지도 없었다”

 

김 전 지사는 1998년 지사 취임 1년 만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발표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온 강원도를 발전시킬 방도를 고민한 끝에 나온 답이었다.

 

“강원도청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다가 1993년 말 잠시 보직대기 상태였을 때 내가 메모해 둔 두 가지가 있다. ‘국제관광엑스포’, 그리고 ‘동계올림픽’ 개최였다. 국민들이 자기 지역은 더 발전시키라 하면서도 강원도만큼은 늘 자연 그대로 보전하라 한다. 그게 강원도 사람들에겐 한(恨)이었다. 1995년 부지사로 돌아와 그 메모를 다시 펼쳤다. 최각규 당시 지사를 도와 관광엑스포 유치부터 진행했고 1999년에 속초에서 개최했다. 다음 과제가 올림픽인데, 그때만 해도 지식이 없어 혼자 일본 나가노올림픽 현장에 공부차 다녀오기도 했다.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1998년 지사 되고 바로 추진해 이듬해 유치를 공식 발표했다.”

 

그 후 2011년 평창이 2018년 개최지로 결정되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 과정도 산 넘어 산이었다. IOC에 정식 도전장을 던지기도 전에 전라북도 무주, 부산 등과 치열한 국내전을 벌여야 했다. “두 번째 도전 땐 무주와 대결하다가 IOC 도시 신청 딱 하루 남기고 평창으로 겨우 단일화를 이뤘다. 그러니 해외에서 제대로 된 유치전을 하기엔 너무 시간이 짧았다. 세 번째 도전 때도 부산과 끝까지 격돌했다. 결국 투표까지 가게 돼 상당히 힘들었다.”

 

대외적으론 평창의 낮은 인지도가 발목을 잡았다. 2003년 처음 도전했을 때 경쟁 도시는 캐나다 밴쿠버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다. 이들에 비하면 평창은 국제사회에서 무명(無名) 그 자체였다. 김 전 지사에 따르면, 당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은 동계스포츠를 하지 않는 나라로 인식됐다. 게다가 ‘평창’의 어려운 발음은 외국인들에게 평창을 더욱 생경한 곳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자꾸 ‘평양’이라 했다. 평창이 2018년 개최지로 선정된 후 2013년 초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이 처음 평창을 방문했다. 그때 그 위원장이 고백하더라. 2003년 처음 후보 도시 리스트를 봤을 때 북한 평양이 올라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10년 만의 고백에 서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김 전 지사에게 조직위에서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하는데 중도하차해 아쉬움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지금 조직위원들이 올림픽 시작부터의 깊은 이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조직위 매뉴얼이 충분히 마련돼 있으니 그대로 잘 준비할 것”이라고 답했다. 올림픽 개최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정권교체로 걱정했던 부분도 지금은 대부분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 행보를 보니 동계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핵심 과제로 생각하고 살뜰히 챙기더라. 새 정부 들어 오히려 더 적확한 인식을 갖고 홍보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불투명한 예산 편성과 허술한 홍보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특히 올해 초 공개된 ‘아라리요’라는 제목의 올림픽 홍보영상은 아마추어적인 퀄리티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지사 역시 “볼 때마다 얼굴이 후끈거려 고개를 돌렸다. 초보적인 정도를 넘어 기본적으로 동계올림픽을 전혀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5월3일 김진선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올림픽 엠블럼 선포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정세 위해서라도 올림픽 성공해야”

 

그는 일각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올림픽 시설의 사후 유지·관리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공감했다. “이 문제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도 완전한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일단 지금은 대회를 잘 치르는 게 최우선이다. 또 기업이 제품을 내놓는 것처럼 스포츠 행사에 경제적인 잣대만을 과하게 들이대서도 안 된다.” 그는 ‘돈 먹는 하마’라며 과도한 올림픽 예산을 걱정하는 여론에도 “유치 초반에 분산개최, 공동개최 등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성공 개최 시 얻을 수 있는 베네핏(benefit·이익)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김 전 지사는 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둔 지금, 국민들이 이번 올림픽이 갖는 함의와 가치를 다시금 새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2014년 세계적인 올림픽 중계권자인 미국 NBC방송 사장단이 평창을 찾았다. 당시 식사 자리에서 그들이 내게 ‘어떻게 세 번이나 유치 도전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줄줄이 설명한 게 있다. 우선 중국·일본 등 주변국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는 마음. 그리고 30년 전 88서울올림픽 때 개발도상국 대한민국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또 하나, 남북분단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강원도에서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열고 싶었다는 마음까지. NBC 사장이 그때 내 말을 듣더니 탁자를 탁 치며 잘 알겠다고, 적극적으로 돕겠다 하더라.”

 

김 전 지사는 최근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를 위해서라도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 핵 위기로 불안해하는 참가국들에 굳건한 신뢰를 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 2020년엔 일본 도쿄올림픽이, 2022년엔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연이어 열리게 돼, 극명한 비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전 지사는 이젠 국민 모두 올림픽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그는 “유치 도전 세 번 내내 국민들 지지가 90% 이상인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면서 “이 올림픽은 특정인이, 혹은 강원도가 아닌 국민 전체가 유치한 행사니만큼, 결과에 대해서도 다 같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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