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전작권 전환은 재앙이다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3 14:43
  • 호수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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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의 안보브리핑] 다시 불거지는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논란의 역사와 과제

 

2018년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안보동맹을 맺은 지 65년이 되는 해다. 지난 65년간 두 나라 사이엔 정치, 경제, 군사적 이유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지난 65년을 함께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동맹 사이의 중요한 군사적 연결고리가 흔들리고 있다. 바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때문이다.

 

시작은 한 통의 편지였다.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편지를 보냈다. 중부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해, 북한군이 금강을 넘어 낙동강으로 향해 오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편지엔 ‘지금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 육·해·공군에 대한 작전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한 통의 편지로 우리 군에 대한 지휘 권한은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됐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 아래 둘 근거는 빈약해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정전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고, 그 세부 항목으로 군사원조에 관한 합의록을 작성하면서 우리 군을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통제(operational control)’하에 두는 것에 합의했다. 전쟁이라는 시급한 상황이 끝났음에도 스스로를 지킬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전군주요지휘관 격려 오찬’에 참석했다. © 사진=청와대 제공

 

이승만이 맥아더에 넘긴 작전통제권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작전통제권은 또 한 번 한·미 간 이슈가 됐다. 우리 군 일부가 유엔군 사령관 승인 없이 단독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5·16이 일어난 지 열흘 만인 5월26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유엔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관은 공산침략에서 한국을 지키는 데만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로 한다’는 내용으로 새롭게 합의했다.

 

작전통제권을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시작된 건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전쟁 피로에 지친 닉슨 행정부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아시아에서 한발 물러났다.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미군 철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핵무장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게다가 이후 민주주의 확산을 내세운 카터 행정부가 등장하자 한·미 동맹은 더욱 흔들렸다.

 

위기는 도리어 기회로 바뀌었다. 미 의회와 군부는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에 맹렬히 반대했다. 일본도 미국을 뜯어말렸다. 결국 한·미 양국은 제1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를 통해 연합사령부를 만들고 작전통제권을 유엔군 사령관에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새로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 양국 대통령과 합참의장의 협의에 따르는 조직으로, 양국이 50대 50의 지분을 갖는 구조였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우리 정부도 이제 당당히 작전통제권에 절반의 지분을 갖게 된 것이었다.

 

1980년대 말 냉전구도가 끝나가면서 한·미 양국은 작전통제권을 아예 한국군이 가져가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장과 1970년대 자주국방의 노력으로 우리 군은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한 상황이었고, 88올림픽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정부는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분리해, 우선 평시작전통제권만 되찾아오기로 했다.

 

미국으로서도 냉전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해외 주둔 미군을 감축할 준비를 하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의 국방을 더 이상 미국 주도로 지킬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반미감정도 부담스러웠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 방위에서 주한미군을 보조적 역할로 전환·감축하며, 종국엔 연합사를 해체하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 노태우 정부가 평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이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자, 미국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에 따라 1994년 12월1일 0시부로 평시작전통제권은 우리 군에 전환됐다. 전시작전통제권은 1996년부터 논의하기로 했지만, 제1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가 불안해지면서 논의는 미뤄졌다.

 

2005년 10월1일 계룡대에서 열린 제5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자주국방의 비전을 제시했다. © 사진=청와대 제공

 

노태우 정부, 평시작전권 되찾아와

 

그러나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다시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또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미국으로서도 첨단전력까지 보유한 한국에 더 이상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2001년 시작된 대테러전쟁으로 미국도 전력에 여유가 없어 주한미군을 감축했고, 2004년부턴 10대 주요 임무를 한국군에 넘겼다. 이에 따라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전환 논의를 진행했고, 이듬해 양국은 2012년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0년 북한의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선 2015년에 전작권을 전환하는 것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게다가 2011년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집권이 이어지자 상황은 더욱 예측 불가해졌다. 2013년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이후 미사일과 핵실험을 연이어 실시하면서 전작권 전환 일정을 더욱 연기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우리 군이 재래전을 막을 능력은 가지고 있을지언정 핵전쟁에 대비할 능력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조건에 기초한(conditions-based)’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한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전작권의 전환 여부는 우리 군이 얼마나 건강하냐에 달려 있다. 결국 우리 군이 전시에 상황을 주도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외형상으로 우리 군은 제3세대 전차를 1600여 대 이상, 제4세대 전투기는 200여 대를 보유해 세계적 수준으로 봐도 될 만한 전력을 보유했다. 문제는 전쟁수행 및 지도 경험이다. 전시에 탄약과 군수물자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지, 적의 움직임과 공격의도를 세세히 파악해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연간 40조원 가깝게 국방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실상은 비용의 상당수가 병력을 먹이고 입히는 유지비용에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2015년 9월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한미통합국방협의체 회의 중단을 촉구하며 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방비 상당액 병력 유지비용으로 쓰여

 

더 큰 문제는 병력수급이다. 현재 우리 군은 매년 25만 명가량을 징집해야 유지되는 구조다. 그런데 IMF 이후에 출생률 저하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23년까지 병력을 10만 명가량 줄여야 인구수에 맞게 군대가 유지된다. 10만 명을 줄이려면 무려 10개 사단을 줄여야 한다. 10개 사단을 줄이는 것은 250km에 걸쳐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전방 사단들의 병력만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최첨단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해도 메우기 어려운 공백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역대 정권들은 이미 2006년부터 국방개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개혁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 이명박 정부에선 상부구조 개편을 논의하다가 시간만 보냈다. 현 정부는 2018년 국방예산을 7%나 올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개혁에 필요한 재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우리 군이 전작권을 넘겨받을 만큼의 노력을 해 오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국방개혁이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핵무기를 보유해 한반도 전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전쟁을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들이 점령해야 할 지역에 핵을 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우리 운명을 걸 수는 없다.

 

과거 우리 정부는 한국형 3축 체제를 내세웠다. 비핵 수단인 3축 체제는 북핵 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조적 노력이지, 북핵을 억제하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결국 한·미 동맹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확장억제야말로 북핵을 막는 근본적 대책이다. 문제는 전작권 전환이 지금의 확장억제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전술핵을 철수시켰다. 현재 미국 핵교리에 따르면, 결국 ICBM(대륙간탄도미사일)-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 등 전략핵 삼각 전력으로 한반도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전력이 한반도로 전개되는 데는 최소 수십 분에서 수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미군 4성 장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역사령관에게 전쟁개시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까지 위임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전작권 전환으로 연합사령관직이 사라지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미군 4성 장군이 한반도에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역대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논의하면서 연합사를 대신해 가칭 ‘미래사령부’를 창설하는 방안을 주장해 왔다. 이 방안에 따르면, 미래사령부의 사령관은 우리 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은 미군 4성 장군이 맡게 돼 있다. 이를 두고 일부는 이제 한국군이 미군까지 지휘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정보감시정찰 전력과 최첨단 지휘체계를 갖춘 미군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통신체계를 과연 우리 군이 갖추고 있을까. 여태까지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자국군보다 역량이 부족한 국가의 지휘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미국이 부사령관직을 위해 굳이 4성 장군을 한국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주한미군보다 병력이 많은 주일미군에 4성 장군을 두고 한국엔 3성 장군을 보내는 게 미국엔 합리적이다. 그래서 전작권 전환을 성공적으로 하려고 한다면, 과연 미국의 확장억제를 어떻게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까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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