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의 역사도, 민중의 역사도 모두 대한민국 역사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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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취임한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인터뷰(下)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E. H.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 속 그 유명한 한 마디. 역사가가 아무리 중립적이고자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가운데 특정 사실을 선택하는 순간 역사가의 재해석이 들어간다는 통찰이 담긴 한 줄이다. 1961년 ‘역사란 무엇인가’ 초판이 나온 뒤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역사를 배우는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 어쩌면 카의 이 말이 가장 극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사 분야가 근현대사일 수 있다고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설명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치적 도구화’는 역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최근 십여년 동안 역사는 정치와 이념의 대립에 도구로 사용돼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획일적 역사인식을 강요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책을 아주 잘 써서 국정교과서를 하면 괜찮은가?’‘새 정부가 다른 방향성으로 국정 교과서를 낸다고 하면?’ 나는 그것도 반대한다. 역사인식이란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어야 한다. 

 

역사는 언제든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역사 인식은 누구나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학계의 통설과 중론이지만 다른 생각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물론 이 중심이란 것도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사료가 나올 수 있고,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역사학자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역사는 고정불변의 진리일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박물관과 교과서는 그 시대에 가장 보편적 역사인식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둘러보니 지도자 중심의 역사서술이 눈에 띄었다. 다시 말하면 위안부 문제와 같은 피해자의 역사에 대해선 거의 다루지 않은 것 같다.

 

제가 앞으로 균형을 잡아가고 싶은 지점이다. 엘리트나 산업화 중심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또한 민중의 역사도 중요하다. 특히나 여긴 이름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우리 역사는 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갔는가, 대한민국 헌법엔 왜 ‘민주공화국’이란 용어를 썼는가. 결국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게 이 나라의 헌법 정신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자리잡는 과정에선 피해를 입고 고통을 받은 국민의 역사가 분명히 있다. 그런 피해자들의 역사와 목소리 역시 우리 역사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제가 원하는 건 역사의 균형이다.

 

 

전시실 가운데 대통령실을 재현한 공간이 눈에 띈다. 전직 대통령들의 존영이 시기 순으로 벽에 걸려있는데, 전 대통령의 존영은 안 보인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부에선 그 공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전시실 배치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는 중이다. 박물관이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사관이 세 개 층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 전문가가 보기에도 부담스럽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통사관 규모를 좀 줄이고 주제관을 장기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더불어 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체험관을 확대하고자 한다. 역사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느끼고,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해석에 대한 토론도 해보는 공간 속에서 체득돼야 한다는게 제 평소 지론이다. 책으로 배운 역사를 박물관을 통해서 유물과 영상과 함께 공부함으로서 입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물관을 통한 역사 교육이 학교 교육과 상호보완적으로 이뤄지는 것, 그게 제 꿈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한 박물관 전시 뿐만 아니라 음악회, 뮤지컬 공연 등 공연문화도 이뤄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옥상정원에 가서 차 한잔 마실 수 있고, 오픈 아카이브를 통해 자료실에 있는 책들을 얼마든지 읽어볼 수 있게 하고 싶다. 한마디로 복합예술문화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이는 최근 해외 주요 박물관들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예산이 문제다.(웃음)

 

더불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늘리고자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역사문화 공간이 부족하다. 한국학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 등 외국인들 가운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 많다. 이들에게 좀 더 친화적인 프로그램들을 꾸리고 싶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나아가 외국 대사들을 초청해 그들의 역사를 한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싶다. 

 

교육프로그램도 강화할 생각이다. 박물관이 하는 교육프로그램은 일반 시민강좌 프로그램이나 백화점에서 하는 문화강좌, 아니면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좌와는 달라야 한다. 이 강좌는 왜 여기서 하는가. 이런 정체성이 분명히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공헌프로그램도 다양화하고 외연을 확장할 예정이다. 국민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박물관이라면 국민에 대한 서비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장 취임 이후 진행한 프로그램인 ‘다함께 대박’은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경제적 혹은 물리적으로 박물관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박물관이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관장으로선 구성원 모두를 존중하며 ‘소통의 리더십’으로 운영해나가고 싶다. 관장으로 취임한 지 이제 두 달이 돼간다(인터뷰 시점은 2017년 12월27일이었다). 한 달 만에 거의 전 직원과 밥을 한 번씩은 다 먹어본 것 같다. 현재 직원은 용역하는 분들까지 합하면 200명 가까이 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비정규직 인력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실 무기계약직화를 정규직화로 보는 일부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방침을 거스를 수 없는 부분이 크다. 일자리 문제는 정부 기조에 맞춰 차차 다뤄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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