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茶, 한 손엔 커피 든 대만 사람들
  • 구대회 커피테이너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4 15:12
  • 호수 14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대회의 커피유감] 대만 곳곳에 역사와 전통 자랑하는 카페 명소 자리해

 

필자가 대만(臺灣)으로 커피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대만 사람들도 커피를 많이 마시나?”였다. 중국을 비롯해 대만 하면 떠오르는 차(茶)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다. 대만은 차 관련 산업이 상당히 발달한 것은 물론, 커피 관련 도구와 기계를 자체 브랜드나 OEM(주문자상표생산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56년 문을 연 ‘펑다카페이’(蜂大咖啡)는 명실상부 대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다. 시먼(西門)역 1번 출구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펑다카페이는 환갑이 넘은 가게 나이에 걸맞게 중년 이상의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노련한 손맛과 숙련된 서비스를 자랑하는 직원들 역시 모두 불혹을 넘겼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커피 소품과 네 귀퉁이가 모두 닳은 커피테이블은 요즘 유행하는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곳은 고풍스러움과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언제나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매장마다 작은 로스터기를 비치해 직접 로스팅을 하는 카마 카페 © 사진=구대회 제공

 

매장마다 로스터기 두고 직접 원두 볶아

 

직접 수십 종의 생두를 볶아 사용하는 이곳은 언제나 신선하고 맛 좋은 원두가 가득하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위해 줄을 서서 원두를 사가는 모습은 이곳에서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만큼 대만의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차뿐 아니라 커피를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특히 대만에서 생산되는 원두는 비록 수입되는 원두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자국에서 생산되는 커피라는 프리미엄과 독특한 풍미 때문에 대만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에스프레소는 볶음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과하지 않은 산미 속에서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특히 커피 본연의 기분 좋은 쓴맛이 매력적이었다. 데미타세잔(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커피잔)을 모두 비울 때까지 에스프레소 특유의 강렬함은 필자의 빈 위장을 툭툭 건드리며 마치 스카치위스키 한 잔을 빈속에 마신 것 같은 짜릿함을 주었다. 대만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카페에서 사이펀(Siphon)의 사용이 대중화돼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일본에서 핸드드립 커피가 주를 이루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특별히 대만에서 생산되는 원두를 선택했는데, 사이펀 특유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불쾌한 맛이나 향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커피가 식은 후에도 맛있는 산미와 잔향이 혀와 비강을 기분 좋게 했다.

 

대만에서 가장 인상적인 카페는 프랜차이즈임에도 모든 매장에 로스터기를 두고 직접 커피를 볶아 사용하는 ‘카마 카페’(Cama Café)였다. 비록 매장 크기는 안락한 의자와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여느 카페보다 아담했지만, 매일 생두를 볶아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추출하는 점은 이곳의 배타적인 강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직접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는 그렇지 않은 카페에 비해 커피 가격이 조금 더 비싼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카마 카페의 커피는 한화로 2500~4000원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데일리 드립커피도 선보이고 있는데, 손님이 몇 가지 원두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비록 이름난 카페의 핸드드립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드립커피의 기분을 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론 커피 맛이 조금 밋밋하다. 마치 러시아의 로딩 커피(Loading Coffee) 맛과 흡사하다고 할까? 스타벅스 같은 진한 커피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시시할 수 있으나, 순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는 어필하는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민들이 출근길에 커피 한 잔을 투고(to go)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향후 우리나라에도 매장마다 커피를 볶는 카마 카페 형태의 프랜차이즈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에서 커피에 대한 가장 독특한 경험은 일명 소금커피로 유명한 ‘빠스우뚜C’(85度C)였다. 타이베이뿐 아니라 대만 곳곳에 체인을 둔 이곳은 상대적으로 커피 가격이 저렴하고 매장 위치가 좋아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곳이다. 흔히 소금커피라고 하는 하이옌카페이(海岩咖啡)는 실제로 소금이 들어간 것은 아니고, 살짝 짠맛이 감도는 부드러운 카페라테였다.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성이 강해 자꾸 찾게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필자 입맛에는 썩 맞지 않았다. 짭짤한 커피 맛이 궁금하다면 한번 경험할 것을 권한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쾌적한 실내와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카페를 찾는다면 ‘멜랑지 카페’(Melange Café)가 제격이다. 중산(中山)역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이름이 가진 의미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한다. 이 카페 좌우로는 근사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가 네 곳이나 있어 지역 자체가 작은 카페촌을 형성하고 있다.

 

펑다카페이 앞에 길게 줄을 선 손님들 © 사진=구대회 제공

 

더운 날씨에 마시는 아이스 블랙커피 ‘굿’

 

무더운 날씨에 오랜 시간을 걸은 터라 아이스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강하게 볶은 만델링 원두를 사용한 것처럼 묵직하고 자극적인 쓴맛이 지배적인 커피였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 후 입안에서 혀로 커피를 살살 굴렸다. 그리고 꿀꺽. 깊은 잔향이 오래 남았다. 커피와 함께 시럽과 우유가 예쁘고 작은 벨 크리머(Bell Creamer)에 나왔다. 적당량의 시럽과 우유를 커피에 붓고 휘휘 저으니 제법 아이스라테처럼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 커피믹스 여러 개로 만든 것처럼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했다. 무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커피는 없을 것이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면 그동안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 우리 삶에 들어온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차뿐 아니라 커피도 맛있는 나라, 대만은 커피 도락가(道樂家)에게 또 하나의 낙원으로 이름을 올릴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