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미국 문화가 궁금해?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4 17:13
  • 호수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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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그럼 ‘컨트리·블루그래스’ 한번 들어봐

 

미국의 ‘시골’ 음악, 컨트리 음악은 한국의 소리경관 안에 늘 있어왔지만 그다지 많이 논의되지는 않는 장르다.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1971)에서부터 샤니아 트웨인의 《유아 스틸 더 원》(1998), 한때 이 장르의 아이콘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민》(2010), 그리고 전자음악에다 컨트리적 요소들을 녹여내 클럽 신을 휘저었던 아비치의 《웨이크 미 업》(2013)까지. 방송에서, 거리에서 우리의 귀에 자주 흘러들어 친숙한  컨트리는 주변 여기저기에 있어왔다. 그러나 이 음악들은 컨트리로서보다는 형용사가 붙지 않은 ‘팝’ 음악으로, 혹은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음악에 막 갖다 붙여지는 ‘포크’와 같은 라벨로 더 많이 인식돼 왔다. 그래서 그런지 컨트리는 많은 한국의 대중 혹은 청자(聽者)들에게 실제보다 멀게 느껴지는 장르다.

 

컨트리는 미국 중부 및 남부 지역의 유럽인들 사이에서 향유되다 20세기 초중엽에 와서야 현대적 형태로 확립됐다고 알려진다. 전통적인 컨트리에선 기타와 밴조(Banjo),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가 자주 쓰이고, 거기에 때로 보컬이 함께 이루어진다. 현재는 드럼과 전자기타 등 여러 악기들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주로 장조풍이며, 독특한 컨트리 ‘풍’의 꺾기와 릭(lick·특유한 무드를 지니는 선율 덩어리를 일컫는 말)이 다른 장르들과 컨트리를 구분 짓는 음악적 특징이다.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니 캐시가 생전인 1995년 공연하고 있는 모습 © 사진=PDP 연합

 

미국 음악 산업에서 컨트리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최근 한국에서 트로트 음악 시장의 위상과 비교할 수도 있겠다. 10~ 20대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주류 팝 매체들에서는 살짝 물러나 있는 듯하나, 그로부터 반(半)독립적인 거대한 공연 및 음반 산업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일반 팝 가수와는 다소간 변별되는 ‘컨트리 싱어’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운 신인들도 끊임없이 발굴된다. 컨트리 전문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고, ‘더 보이스’(The Voice)와 같은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컨트리 음악가 지망생들이 자주 등장한다(심사위원석에도 으레 ‘컨트리 담당’이 앉아 있다). 매년 컨트리음악협회(CMA) 상과 컨트리음악아카데미(ACM) 상과 같은 독립적인 대형 이벤트들도 개최된다.

 

또 굳이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음악 중 하나다. 예를 들면 20~30대의 친한 미국 태생 친구들에게 최근의 컨트리 히트곡들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어르신들’ 혹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남부·백인·남성의 이미지를 내포한 표현인 ‘레드넥’(Redneck)이 생각나는 음악이며 자기는 그 장르에 관심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 발표된 누구의 노래인지 대체로 알고 흥얼거리는 것이다.

 

미국 중부 테네시주 주도(州都)이자, 컨트리 성지라고도 불리는 내슈빌(Nashville)의 ‘브로드웨이’ 지역은 날마다 살아 움직이는 컨트리 박물관이자 전시회다. 필자는 몇 년 전 이틀간 짧은 일정으로 이곳을 들렀었는데, 정신없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오후부터 밤까지 거리의 건물 건물마다 컨트리가 연주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클럽들을 입장료 없이 들어가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었다. 클럽에선 때때로 음료를 주문하거나 밴드에 감사의 표시 몇 달러를 건네기도 했다. 낮 시간에도 볼거리들이 풍성했다. 거리 여기저기에 공연들도 많았고, 오래된 라디오 방송국이나 레코드 가게 등을 하나하나 들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조니 캐시(Johnny Cash) 같은 음악가들과 관련된 ‘사적지’를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 윌리 넬슨이 2011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프랭크 어윈 센터에서 열린 텍사스 산불 피해자를 위한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여기가 블루그래스(Bluegrass) 음악의 고향이오’라는 문구다. 거리의 팻말에 적혀 있던 말이다. ‘푸른 풀’은 켄터키나 테네시 등 중부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컨트리의 한 파생 장르로 여겨지는 블루그래스는 이들 지역에 기반을 두고 1930~40년대부터 발전해 온 어쿠스틱 현악기 중심의 소규모 밴드음악 형태를 가리킨다. 모든 노래가 빠른 템포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타와 밴조, 만돌린과 바이올린 등이 빠른 속도로 함께 ‘깽깽’거리며 만들어내는 흥겨움 속에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가감 없이, 복잡한 비유 없이 이야기로 풀어간다. 이 장르의 시조 중 하나로 여겨지는 빌 먼로(Bill Monroe)의 노래 《길이 내겐 참 어둡네》 같은 노래가 있다.

 

 

외로운 도로를 걸어내려가네

떠난 사랑을 생각하면서

곧 다시 함께할 걸 알면서

그이는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이라네

- 빌 먼로의 《길이 내겐 참 어둡네》 가사 중에서

 

필자 역시 한때 블루그래스 스타일 밴조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는 바람에 밴조 줄을 어쿠스틱 기타에 매어 한창 연주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도 이 장르의 음악을 독창적으로 흡수해 공연하는 팀들이 있다. 블루그래스의 전형적인 악기 편성을 갖춘 밴드 컨트리공방이 최근 발표한 《앞좀보소》와 같은 트랙이나, 컨트리 록의 찰진 매력을 보여주는 대니보이 앤 더 캐리지스의 여러 노래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먼 곳의 흥겨움과 페이소스를 한국 땅으로 데려와 노는 사례다. 필자에게는 컨트리, 그중에서도 유독 빠른 템포의 블루그래스가 뭐랄까, 여행으로 짧게 겪었던 미국 땅의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음악으로 느껴진다. 그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독자 여러분도 소개된 음악을 찾아 들으며, 음악을 통해 바다 건너 이국의 내륙 지방으로 여행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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