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한부 합의 파기, 원칙상 ‘가능’하지만 실제론 ‘불가능’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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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일방적 합의 파기하기엔 한국 외교적 리스크 너무 커”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만큼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다.”

-1월4일 위안부피해 할머니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

 

“모든 것이 가능하다.”

-1월4일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답변.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이 한 위와 같은 발언은 2017년 12월27일 외교부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꼭 일주일 만에 나왔다. ‘파기’나 ‘재협상’과 같은 극단적인 표현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합의문에 대한 수정 필요성을 시사한 셈이다. 위안부 합의 TF의 검토를 통해 발견된 하자가 양국의 합의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하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려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긴 하다. 위안부 합의는 대통령 명의의 국가 간 합의나 조약 형태가 아니다. 때문에 외교 전문가들은 이를 꼭 지켜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원칙적으론 재협상과 파기도 가능하다.

 

원칙적으론 가능한 위안부 합의안 파기, 하지만 실제로 파기할 수 있을까는 다른 문제다. 한일 양국 간 이뤄진 합의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파기하자’는 또다른 ‘합의’가 이뤄지는 편이 가장 깔끔한 해결책일 수 있다. 

 

서울 용산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 시사저널 박정훈

 

위안부 합의 ‘파기’ 사실상 실현 가능성 없어

 

문제는 이 경우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일본 측은 파기는커녕 재협상의 가능성까지 원천 봉쇄하고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해 12월 위안부 TF 보고서 발표 직후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의 변경을 시도할 경우 한일 관계는 불능에 빠진다”며 “(재협상 시도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월5일 정례브리핑에서 위안부 관련 한일 합의 변경 가능성에 대해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으로 1㎜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한국 측의 일방적으로 파기만이 방법으로 남는데, 이 경우 한국이 져야할 리스크가 상당해질 것으로 보인다. 

 

‘합의 파기도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쪽에선 일본 측의 ‘고노담화’를 묵살하는 듯한 행보를 예로 든다. 1993년 8월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가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군의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하는 성명을 낸 것이 고노담화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 관방장관이자 고노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의 아들인 고노 다로 장관은 선친의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고노 외무상은 “(고노담화는) 다른 고노 씨(아버지)가 발표한 것”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와 한일합의가 전부”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왔다”며 ‘과거형’ 사죄를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합의 파기 후 외교적 부담 불가피

 

어떤 형태로든 국가 간 이뤄진 약속이기 때문에 이를 깨는 행위엔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발생한다. 한국의 일방적인 파기는 결국 한일양국 관계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며, 최악의 경우 한반도 문제에 있어 긴밀한 한·미·일 협력을 요구하는 미국 측의 우려를 증폭시켜 미국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에선 한국 정부가 지게 될 외교적 결례를 낮추는 차원에서 기존 합의의 틀을 유지하고 이를 보완하는 방법만이 가능한 해결방안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합의 파기 시 한국이 지게 될 외교적 리스크 뿐만 아니라 ‘화해치유재단’으로 이미 지급된 일본 측의 ‘위안부 합의금’ 10억엔의 처리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일본사회 전문가는 “일부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에선 10억엔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이 위로금을 받은 일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합의문 파기 문제가 실질적 단계에선 결코 간단치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나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서 뚜렷하게 위안부 합의의 향방을 결정짓는 단어 표현이 배제된 것도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하기 위한 초석을 까는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떤 형태로든, 국내외적으로 위안부 합의 TF 발표 이후 정부의 후속 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보여주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일 위안부 합의 일지

 

2015년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 기자회견서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7개월 뒤인 2016년 7월28일 합의 이행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했다. 같은 해 8월31일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송금했다. 이듬해인 2017년 5월11일 갓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취임 후 첫 전화통화에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7월31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검토하기 위한 TF가 출범했다. 5개월 뒤 12월27일 위안부 TF의 검토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후 이면 합의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계속되면서 합의 파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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