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유망주’서 거대 소비시장으로 변신하는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9 10:18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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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차이나’ ② 동남아] 세계 인구 4위·자원 부국…LG·삼성 가전 등 ‘한류’ 탄 한국 제품, 현지화에 성공

 

2017년 12월18일 정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찾은 기자는 택시를 타고 수디르만(Sudirman) 거리에서 탐린(Thamrin) 거리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 이 구간은 자카르타에서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늦은 밤, 새벽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 종일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한데 뒤섞여 있다. 때문에 최근 자카르타에서는 급한 일이 생겨 빨리 가야 할 경우 도로교통을 책임진 경찰에게 돈을 준 뒤, 에스코트를 받으며 막힌 도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때 돈을 받은 경찰은 비상등을 켜고 뒤따라오는 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경찰차의 안내를 받으며 막힌 도로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차량 뒤로 얌체 운전자가 줄을 잇는다. 기자가 탄 택시도 그중 한 대였다. 순간 차량이 몰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

 

쌍용건설이 자카르타에 지은 캐피털 플레이스와 포시즌스호텔 © 사진=쌍용건설 제공

 

아시안게임 앞둔 인도네시아, 거대한 공사판

 

자카르타는 교통지옥으로 악명이 높다. 2015년 윤활유 업체 ‘캐스트롤’이 세계 78개국 주요 도시 내비게이션 장착 차량의 km당 정지·시동 횟수에 연간 평균 주행거리를 곱해 통계를 내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교통난이 심각한 도시로 자카르타가 꼽혔다. 특히 올 8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자카르타 시 당국이 시내 곳곳에서 공사를 벌여 사정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를 방문해 약속시간을 1~2시간 넘기는 것은 결례가 아니다. 늦게 도착했더라도 “차가 막혀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 모두 이해하고 넘어간다.

 

자카르타를 교통지옥으로 만든 또 다른 주범은 ‘공유경제’다. 자카르타를 포함해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공유차 우버(Uber) 운행이 합법화돼 있다. 한 달에 800만~900만 루피아(약 63만~71만원) 정도 사용료를 내면 중소형차를 빌릴 수 있는데,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렌터카를 활용해 돈을 버는 우버 기사들이 많이 늘었다. 또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오젝(Ojek)으로 불리는 오토바이택시 사업자로 변신하면서, 도로 곳곳은 하루 종일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넘쳐난다. 생활을 이롭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공유경제는 이곳에서 교통지옥과 대기오염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는 불편함과 편리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해외 주요 경제기관들이 ‘포스트 차이나’ 시대의 주역을 꼽을 때마다 인도네시아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다. 우선 경제 성장의 기초가 되는 인구수가 2억6000만 명으로 세계 4위다. 연평균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 PwC는 2050년 인도네시아가 전체 GDP 기준 세계 4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최근 조사인 영국의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지난해 12월2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32년 한국은 경제 규모로 세계 8위, 인도네시아는 이보다 두 단계 낮은 10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7년 기준 69.02%에 달한다. 이는 68.7%를 기록한 우리나라보다 다소 높다.

 

중국·인도·미국 등 인도네시아보다 인구가 많은 국가들은 인구수만큼이나 국토가 넓다. 따라서 단순히 인구가 많다는 게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사정이 다르다. 인도네시아 역시 주요 섬을 아우르는 내해(內海)까지 국토로 볼 경우,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국이다. 그렇지만 세계 주요 연구기관들이 인도네시아의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도시화로 인해 대도시마다 값싼 노동력이 차고 넘친다는 데 있다. 단적으로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4500만 명이 한반도의 절반 크기인 자바 섬에 몰려 살고 있다. 자바 섬만 놓고 보면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우리보다 2배가량 높다. 배도운 두산찝따 대표는 “수마트라·칼리만탄(보루네오) 등 다른 섬까지 생각하지 않고, 핵심인 자바(Jawa) 섬만 생산지로 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는 단순히 생산지로서의 매력만 주목받아왔다. 이러다 보니 진출 업체들도 의류·신발·가방 등 경공업 생산업체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임금 등 생산원가가 오르자 서둘러 해외로 떠난 업종들인데, 당시 이들이 선택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인도네시아였다.

 

인도네시아 경제중심지 SCBD에 들어선 퍼시픽 플레이스몰과 증권거래소 내부(오른쪽) © 시사저널 송창섭

 

LG·삼성 등 한국 가전, 프리미엄 브랜드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단순히 생산지가 아닌 소비지로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김병삼 대한무역투자공사(KOTRA) 자카르타무역관장은 “급속한 도시화로 중산층이 성장하며 구매력이 커졌으며, 자동차·TV 등 고가의 소비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면서 “특히 한국 브랜드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갈수록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한국 가전 브랜드인 삼성과 LG는 인도네시아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자카르타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스망기(Semanggi)에 들어선 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 1층에 람보르기니·맥라렌 등 슈퍼카와 샤넬·구찌 등 명품 브랜드 매장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자카르타 상류층이 즐겨 찾는 쇼핑몰이다. 5층에 위치한 가전 양판점 ‘베스트(Best)’ 역시 최고급 제품 일색이다. 베스트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자랑하는 브랜드는 LG와 삼성 등 한국계다. 입구 전체를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다. 또 삼성은 휴대폰 시장에서 수년째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시장점유율은 51%를 기록해 압도적으로 높다.

 

건설 부문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단순 플랜트보다 랜드마크 건축공사 부문에서 선전(善戰)하고 있다. 쌍용건설이 대표적이다. 1979년 지사를 세운 쌍용건설은 1980년 수마트라(Sumatra) 섬 북쪽에 위치한 아체(Aceh)시 동쪽 해안선을 가로지르는 잠비 무아라 분고(Jambi Muara Bungo)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자카르타 내 랜드마크 건물을 대거 지었다. 자카르타 경제 중심지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가 사실상 쌍용건설의 작품이다. SCBD에 위치한 빌딩 상당수를 쌍용건설이 시공했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구시가지에 들어선 그랜드 인도네시아 하얏트호텔·플라자인도네시아·캐피털 플레이스&포시즌스호텔도 쌍용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했다. 강위 쌍용건설 인도네시아 지사장은 “단순 도급공사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현지 건설사가 저가로 수주하고 있으며, 반대로 대형 플랜트·인프라 사업은 정부 간 협약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두 부문 모두 수주가 쉽지 않다”면서 “결국 우리 건설업체들이 승부수를 걸어야 할 시장은 고부가 건축 분야”라고 설명했다.

 

소비시장에 우리 기업 제품이 빠르게 뿌리내리게 된 배경에는 한류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9월초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최대 한류 콘텐츠 축제 ‘K-콘텐츠 엑스포 2017’에서 SM엔터테인먼트그룹은 소속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서라운드 뷰잉용 콘서트 영상 등을 상영해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천영평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원장은 “중국은 자국 문화 콘텐츠에 애착이 강한 반면, 인도네시아 젊은 층은 한류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면서 “이를 활용할 경우 현지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J의 제빵 브랜드 뚜레주르와 한식 프랜차이즈 비비고가 빠른 시간 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도 한류문화를 기반으로 한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팔린 국내 소비재 중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삼양식품의 인도네시아 불닭볶음면 판매량은 1200만 개(80억원)였으며 2017년에는 두 배 늘어난 2500만 개(150억원)로 파악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지난해 삼양식품의 주가 상승에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 시장의 선전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카르타 쿠닝안(Kuningan) 롯데에비뉴 지하 식품점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 아프릴은 “인도네시아에도 한국 고추장과 같은 삼발(Sambal)이 있을 정도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매운맛을 좋아하는 데다 종교적인 이유로 닭고기 소비량이 가장 많은데, 그런 면에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두 가지 요소가 잘 접목된 케이스”라고 소개했다. 대상그룹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PT미원 인도네시아는 조미료 시장 점유율이 20~30%대를 차지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마미수카(Mami Suka)라는 로컬 브랜드까지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퍼시픽플레이스몰 내 가전 양판점 ‘베스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는 LG와 삼성 제품이다. © 시사저널 송창섭

 

미래에셋대우, 온라인 트레이딩 시장 개척

 

아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한국계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이 대표적인 경우다. 2007년 현지 증권사 이트레이드증권 지분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전체 증권사 114곳 중 시장점유율 기준 6위를 기록했다. 특히 미래에셋대우는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한 리테일 부문 매출액이 인도네시아 전 증권사를 통틀어 가장 많다. 또 인도네시아에 온라인 트레이딩 서비스를 처음 선보인 회사가 바로 미래에셋대우다. 류성춘 미래에셋대우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전체 종목 수가 580여 개에 불과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주식시장 규모는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도 그랬듯 인도네시아 역시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리테일 부문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의 선전에 힘입어 현지에 진출한 키움·한국투자·신한투자·NH투자증권 등도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은행업종에서도 한국계 은행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은 우리은행이 출자한 우리소다라은행과 그 외에 KB·하나·신한은행 등이다. 이 중 PT하나은행은 2017년 3분기 말 현재 자산총액 3조1182억원에 당기순이익 571억원을 기록, 하나은행 해외법인 중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확대될 경우 우리 기업들의 시장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거라는 전망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킬 것’이라는 내용의 신남방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정책을 발표한 곳이 바로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이었다. 그만큼 정부의 대(對)아세안 정책에서 인도네시아는 베트남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발표된 이후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기업 아르타 그라하(Artha Graha)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상용차 시장에 뛰어든 것도 그런 포석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롯데가 해외 주력 시장을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지난해 롯데는 인도네시아 재계 2위 살림(Salim)그룹과 함께 온라인 쇼핑기업 인도 롯데 마크무르(Indo Lotte Makmur)를 세운 데 이어, 인도네시아 석유화학기업 2곳도 인수했다. 화학계열사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반튼(Banten)주에서 나프타 분해시설(NCC)을 포함, 100만㎡ 규모의 대규모 유화(油化) 단지를 짓고 있다. CJ그룹의 영화배급 채널 CGV가 현지에서 대성공하자 롯데시네마도 현지 진출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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