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재벌家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2 08:59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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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걸친 장기 기획연재 ‘재벌가 후계자들’에서 드러난 재벌가의 민낯

 

한 해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던 지난해 12월26일. 증권시장에 주목할 만한 공시가 떴다. 태광그룹이 계열사 3곳을 합병키로 했다는 뉴스였다. 태광은 계열사인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의 투자 부문을 쇼핑엔티와 4월1일부로 합병한다고 밝혔다. 티시스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97%의 지분을 갖고 있는 SI(시스템 통합) 서비스 업체로, 그룹 내의 대부분 계열사에 IT(정보기술) 서비스를 제공해 온 탓에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지목됐던 회사였다.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사례는 지난해 4월 시사저널의 기획연재 ‘재벌가 후계자들’ 11회 태광그룹 편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아래는 그 내용의 일부다.

 

 

현준씨(이호진 전 회장의 장남)에 대한 승계가 본격화된 시점은 2006년 전후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다. 승계의 중심에 있는 것은 티시스·티알엠·한국도서보급이었다. 이들 회사는 모두 이 전 회장과 현준씨가 지분을 각각 51%와 49%씩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이 설립한 티시스와 티알엠은 2006년 유상증자를 통해 현준씨가 지분을 인수토록 했다. 한국도서보급의 경우는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하던 지분을 전량 이 전 회장과 현준씨에게 넘겼다. 이외에도 현준씨는 동림관광개발 지분도 39%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현준씨에게 비상장사의 지분이 넘어가는 과정과 관련해 ‘헐값 매각’ 내지는 ‘편법 승계’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후 이들 회사에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수직상승했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핵심 계열사 지분 매입에 투입됐다. 티시스와 티알엠은 태광산업 주식 4.51%와 4.63%를 각각 매입했다. 한국도서보급도 대한화섬의 지분 16.74%를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사들였다. 2013년에는 티알엠·티시스·동림관광개발을 합병했다. 현준씨는 티시스와 한국도서보급을 통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물론, 그 산하의 계열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티시스는 현준씨 경영권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곳간’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이후에도 계열사들의 지원사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2017년 5월2일자 시사저널 1436호 ‘오너의 기약 없는 공백’ 중에서)

© 시사저널

 

‘재벌가 후계자들도 청문회 수준 검증 해야’

 

당시 보도에서 시사저널은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고(故) 이임용 창업주의 아들인 이호진 전 회장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고 회장직을 사임했지만 그룹의 실제 오너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아들로 이어지는 3세 경영 체제에 속도를 내기 위해 24세 대학생인 장남 현준씨가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위 두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태광은 지난 연말, 이들 회사를 합병하면서 티시스가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받아도 오너 일가 지분 축소로 인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시사저널은 약 1년 전인 지난해 2월초,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재벌가 후계자들’ 연재를 시작했다. 당시 본지는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선 프롤로그에서 1년간 이어질 장기 기획연재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17년 새해 벽두부터 재벌 대기업에 경영권 승계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경영권을 자식에게 어떻게 넘겨주느냐 하는 것은 재벌의 오랜 고민거리다. 사회 통념상 ‘부자지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은 이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갖은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피의자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으로부터 강도 높게 조사받은 것도 결국은 경영권 승계 문제였다. (중략)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대선후보와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격한 검증 과정과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대기업 경영승계자들에 대해서는 마치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안일함을 보여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의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2017년 2월7일자 시사저널 1423·1424 합병호 ‘재벌가 후계자들도 청문회 수준의 검증 해야’ 중에서)

 

 

40개 기업 대부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대상

 

이런 취지 아래 시사저널은 지난 한 해 동안 40개 대기업의 경영 후계 구도를 면밀히 살피며, 12월까지 총 41회(프롤로그 포함)에 걸쳐 연재를 이어 나갔다. 기사 분량만 원고지 총 1200장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었다. 분석 대상은 30대 그룹 가운데 포스코·농협·KT 등 총수가 없는 8개 그룹을 제외한 삼성·현대차·SK·LG·롯데·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두산·한진·CJ·부영·LS·대림·금호아시아나·미래에셋·현대백화점·OCI·효성·영풍·하림 등 22개 그룹이었다. 여기에 30위권 밖의 그룹 중 경영 승계 문제가 주목되는 KCC·코오롱·한국타이어·교보생명·동부·동원·한라·세아·이랜드·아모레퍼시픽·태광·동국제강·호반건설·하이트진로·LIG·대성·SPC·현대 등 18개 그룹을 더해 총 40개 그룹을 대상으로 그룹 지배구조와 총수 일가 자녀들의 지분 등을 살펴봤다.

 

시사저널은 ‘총수 일가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이나 절차 없이 무조건 경영권을 넘겨받는 게 정당한가’라는 당초 기획연재 취지대로 재벌가 2~4세 자녀들을 집중 조명했다. 국내의 대표적 재벌 기업들은 하나같이 그룹 총수의 자녀를 위해 특혜를 베풀었다. 그 대표적인 게 일감 몰아주기였다. 40개 기업 중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해 갈 수 있는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초고속 임원 승진도 있었다. 아직 미성년 자녀들에게 상당한 회사 지분을 미리 넘겨주는 사례도 있었다.

 

이번 장기 기획연재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2018년 새해 신문 경제면에 자식 대신 전문경영인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준 한 그룹 회장의 사례가 미담으로 소개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런 뉴스가 미담 사례로 새해 첫 신문 경제면에 일제히 실릴 정도로 우리네 재벌들은 아직도 ‘딴 세상’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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