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맺기”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2 15:26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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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펴낸 재일동포 지식인 강상중 교수

 

그는 1950년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1세다.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와세다(早稻田)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나는 해방됐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후 일본 이름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를 버리고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

 

재일 한국인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아 대학원에서 유예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독일에서 그는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통해 ‘자이니치(在日)’라는 자기규정과 문제의식이 근대화와 서구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콘텍스트로 이해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1998년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東京)대학 정교수가 됐고,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저자 강상중 교수 © 사진=사계절 제공

이 책은 재일 한국인 2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인 강상중 교수의 이야기다. 도쿄대 정보학연구소 교수,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을 거쳐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펴내며 본격적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분들은 처음엔 ‘이런 마을에 누가 오겠냐’ ‘이제 우리 마을은 끝났다’ ‘사람이 없다’와 같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수도권  중심 사고에 젖어 있었다고 말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역 활성화에 노력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했고, 전 직장보다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활기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인생이 풍요롭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상중 교수는 그동안 여러 저작을 통해 자신의 출신으로 인한 좌절과 방황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긴 했으나, 유년기의 가정환경부터 청년기의 혼란과 각성을 거쳐 정치학자이자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지식인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이 책은 ‘미니 자서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상당 분량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다.

 

 

삶 자체가 역경 극복 과정이었던 ‘자이니치’

 

이 책은 NHK 방송 프로그램을 옮긴 것인데, 10여 년 전 이미 ‘성공 신화’의 하나로 주목받은 인물의 일대기를 일본의 공영방송에서 새삼스럽게 재조명한 이유를 주목해 볼 만하다. 반세기 전 강 교수가 겪은 정체성의 위기, 계속되는 실패와 출구 없는 방황을 지금의 일본 사회가 비로소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모든 경제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내리막 세상, 심각한 취업난과 증가하는 비정규직 일자리, 세상을 하루아침에 뒤집어놓는 전 세계적 금융위기나 거대한 자연재해…. 강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역경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다. 위기에 처한 일본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삶 자체가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던 ‘자이니치(在日)’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고, 강 교수는 자신이 맞닥뜨렸던 역경을 자이니치의 울타리를 넘어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보편적인 고민으로 확장해 ‘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자기 인생을 세대별로 나누고 마음속 힘 길러야”

 

“매달 200만원 월급제와 500만원 월급제가 있다 치고 500만원을 받으려면 15시간 이상 근무, 200만원을 받으려면 7~8시간 일해야 한다고 하면, 어느 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판단해 보면 200만원이다. 사회관계를 풍요롭게 가질 수 있게 되고 내 삶 자체가 풍요로워지는 것이 먼저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강상중 교수는 구체적인 하우 투(How to)를 제시하기보다는 ‘인생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서의 ‘일’ 혹은 ‘직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평생직장’에서 일하는 명확한 목표가 사라진 오늘, 강 교수는 크게 두 가지로 ‘일’을 정의한다. 첫째,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개인의 생계수단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맺기라는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꼭 기업에 취직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경로로 사회에 참여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넓은 의미의 ‘일하기’를 시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일은 ‘나다움’의 표현이다. ‘나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스스로가 알고 있는 ‘나다움’과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의 ‘그다움’을 모두 살피기를 권한다. ‘이런 일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라며 내가 아는 ‘나다움’만을 고집하다가 자기 자리까지 잃지 말고,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본다면 뜻밖의 영역에서 ‘나다움’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강 교수는 ‘나다움’이나 ‘자아실현’이라는 말에도 너무 짓눌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2020년경 한국은 최고의 장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제 겨우 20대가 뭔가를 결정했는데 그것이 자기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시야를 좁게 보는 것 아닐까? 한국은 학벌 사회고 피라미드형이지만, 결코 지속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자기 인생을 세대별로 나누고 일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어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속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New Book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펴냄│1만3800원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특히 추리소설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보인다.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는 어느 날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돼 있었다. 모든 증거들이 꼼짝없이 자신을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상태에서 추적이 시작된다. 

 

 

나를 넘다

마티외 리카르·볼프 싱어 지음│임영신 옮김│쌤앤파커스 펴냄│2만원

 

 

명상과 AI·뇌과학·의과학의 융합연구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성과 영성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만나서 ‘뇌와 명상’에 관해 8년간 나눈 ‘세기의 대화’를 묶은 책.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깨어나는가? 명상은 뇌를 바꾸는가? 의식과 무의식, 자아에 관해 세계적인 뇌과학자와 40년 이상 명상수행을 해 온 승려가 갑론을박, 난상토론을 펼친다.  

 

 

블루오션 시프트 

김위찬·르네 마보안 지음│비즈니스북스 펴냄│2만원

 

 

‘블루오션 한다’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비즈니스의 프레임을 바꿔놓았던 블루오션 전략. 이 책은 블루오션 전략이 왜 필요한가부터 팀을 꾸리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응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을 도출하고 적용하기까지, 또 조직의 체질을 바꾸고 구성원의 태도 변화를 이끄는 방법까지도 세세히 제시했다.

 

 

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임미경 옮김│밝은세상 펴냄│1만3800원

 

 

27개국 해외 판권 계약을 마친 프랑스 베스트셀러.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사는 세 사람을 하나로 엮어낸 장편소설로, 세 인물은 최악의 빈곤부터 치유가 어려운 질병 등 각자의 삶에 나타난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다른 삶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여전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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