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조정자’ 노리는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6 14:55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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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회담을 바라보는 中 시진핑의 속내

 

“9~18일에는 손을 내놓지 않고, 27~36일에는 얼음 위를 걷는다(一九二九不出手 三九四九冰上走).”

 

지난 1월10일 중국 베이징에 소재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의 첫 질의응답에서 민요 한 소절이 등장했다. 일명 ‘구구노래(九九歌)’로 불리는 이 민요는 각 지방마다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동지 후에 몰아닥친 엄청난 한파를 재미있게 풀어낸 노래다. 루캉(陸慷) 대변인은 구구노래를 불쑥 꺼내며 최근 한반도 정세가 엄준한 상황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이웃인 중국은 전날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걸 환영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3면에 실은 사설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다루었다. 인민일보는 “남북의 상호관계 개선, 화해협력 추진, 한반도 긴장국면 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는 국제사회의 환영과 지지를 받을 만하다”고 했다. 이 신문은 곧이어 ‘파레토 법칙’을 꺼내들었다.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제시한 이 법칙은 결과의 80%가 원인의 20%에서 나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인민일보는 이 법칙을 인용하며 “북핵 문제의 해결은 동북아 당사국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진 못하겠지만 최소 대가로 각국이 최대 이익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직전 중국의 입장은 아주 곤란했다. 지난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어기고 북한과 유류를 불법으로 거래하려던 중국인 소유의 선박이 잇따라 적발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발뺌했으나 국제사회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또한 미국은 이달 들어 중국에 대한 강력한 무역 제재를 예고했다. 따라서 중국은 지난 1월6일부터 철강, 금속, 기계, 차량 등의 대북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원유 및 정제유 수출을 제한했다. 이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내놓은 최고 강도의 대북제재다.

 

중국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의 ‘조정자’로 나설 가능성이 대두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0월17일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Xinhua 연합

 

“중국은 한반도 정세 조정자”

 

중국은 자국 내 북한식당도 줄지어 폐쇄했다. 영업정지 시한인 1월9일까지 북한과 인접한 단둥(丹東), 선양(瀋陽)뿐만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등 연해 대도시의 북한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일부 식당은 북한과 중국 사람의 지분 및 명의 변경, 법률 소송 등을 통해 영업을 계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입장이 어느 때보다 강경해 정상영업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중국은 9일부터 선양에 있는 칠보산(七寶山)호텔까지 영업을 정지시켰다.

 

칠보산호텔은 지난 2000년 문을 연 160개 객실을 갖춘 15층짜리 고급호텔이다. 북한이 중국에 투자한 프로젝트 중 단일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40여 명의 북한 직원이 근무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은 선양을 무대로 해외 사이트를 해킹하는 공작을 벌여왔다. 이로 인해 칠보산호텔은 북한 해커의 주요 활동기지로 의심됐었다. 호텔 지분의 70%는 북한이 갖고 있으나, 30%는 중국 훙샹(鴻祥)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이런 지분 구성을 들어 칠보산호텔은 중국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론전을 펼쳐왔었다.

 

중국은 강력한 대북제재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냈음을 은연중 지적했다. 1월9일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을 통해 “중국은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국면을 돌파토록 하는 중요한 조정자”라고 자찬했다.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든 가장 우려하는 건 중국의 반응”이라며 “유엔 제재 결의의 성과 여부도 중국의 태도가 결정적이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중 관계는 최저 상태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제 궤도로 돌아온다”며 “중국의 힘은 강하기에 그 어떤 주변국도 중국에서 멀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건 중국 정부의 오랜 입장이기도 하다.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중단(雙中斷),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인민일보는 “쌍중단과 쌍궤병행이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중국의 대외정책이 지난해 10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전후해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중국은 북한이 미국의 동북아 진출을 막는 완충지대가 된다는 인식을 강력하게 갖고 있었다. 이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에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통제되지 않는 북한은 동북아 현상유지를 바라는 중국의 뒤통수를 쳤고, 중국의 부담은 갈수록 커졌다.

 

이에 따라 중국은 2년 전부터 북한의 붕괴를 막는 정책을 점차 버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중국은 2016년 말 10만 명을 동원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점령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북한을 분할 지배하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필자에게 “만약 한국이 계속 중국에 우호적이고 통일 이후 미군이 철수하거나 주둔을 최소화한다면 북한 정권을 계속 유지해 줄 필요가 없다”며 “종잡을 수 없고 통제가 불가능한 북한이 없는 한반도 정세가 오히려 중국의 발전에 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란 완충지대 버릴 수 있다”

 

중국의 변심은 당대회에서 주창된 ‘신형 국제관계 구축’으로 대변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위해 과거와 전혀 다른 대외정책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따라서 중국은 이전과는 다르게 강력한 대북제재를 지속할 공산이 크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중국의 속셈을 파악하고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유달리 “우리 민족끼리 남북관계 개선을 하자”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북대화 국면에서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할까. 한·중 관계는 사드 사태의 수렁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우리 입장에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대북 압박이 지속돼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결코 방관자가 아님은 인정하되, 대화와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우리가 갖고 있다고 인식시켜야 한다. 여느 때보다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능수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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