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15살은 ‘말괄량이 삐삐’…자기주장·반항심 강해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9 14:43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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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式 자녀교육 우려하는 이주 한인 부모들

 

“형님, 우리 아들이 오늘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스웨덴 한 대기업으로 파견돼 3년째 근무 중인 후배가 하소연한다. 

 

“뭐라는데?”

 

“내년이면 자기는 아빠 허락 없이 여자와 자도 된다네요.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예요?”

 

“XX가 내년에 몇 살이지?”

 

“15살이오. 스웨덴 나이로. 중학교 3학년 되는 거예요.”

 

이 후배의 아들은 현재 사춘기다. 어느 날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스웨덴에선 15살이 되면 부모의 허락 없이 이성 간의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15세는 18세가 되기 전, 즉 법적으로 성년이 되기 전 어른을 준비하는 나이다. 식당이나 극장 등에서 성인(Vuxen)과 구분되는 할인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는 어린이(Barn) 자격이 대체로 14세까지다. 즉 15세가 되면 스웨덴 미성년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 중 많은 부분들이 없어진다. 서서히 어른으로 가는 준비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어린이(14세 이하 청소년 포함)들은 적어도 한국의 부모들 입장에선 키우기 어렵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반항심도 강하며,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스웨덴 스톡홀름 엔겔브렉트스콜란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 © 사진=연합뉴스

 

토론에 가까운 스웨덴式 꾸지람

 

최근 스웨덴 가정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들이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신고다. 만약 가정에서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매를 들 경우 많은 아이들은 즉시 경찰이나 지역 어린이 기관에 신고한다. 자녀가 원할 경우 이들은 자녀와 부모를 격리시킨다.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어떤 체벌도 불법이다. ‘아이는 교육의 대상이지 훈육의 대상이 아니다’는 게 스웨덴 어린이 교육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꾸지람도 한국 사람들 눈에는 제대로 된 꾸지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녀와 부모가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 부모의 일방적인 꾸지람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꾸지람을 위해 부모는 자녀에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지적해야 한다.

 

물론 자녀도 반론을 편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 그것이 상대적 개념의 잘못이라면 자신의 경우는 어째서 잘못한 것이 아닌지 소명하고 항변한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해도 그에 합당한 벌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스웨덴 생활이 익숙지 않은 한국의 이주 가정은 혼란을 겪는다. 부모가 익숙해지기 전에 자녀는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한 다수의 선진국 교육 전문가들은 “스웨덴의 이런 방식의 가정교육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토론이 가능한 사람으로 자녀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와 이런 식의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주입식이 아닌 토론 위주의 학교 교육의 영향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오래된 일은 아니다. 현재 스웨덴 20크로나 지폐의 모델이며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말괄량이 삐삐(원제 Pippi Långstrump)》가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1945년부터 48년까지 4권으로 출간된 후 69년부터 75년까지 다시 6권의 시리즈가 나왔으며, 1979년부터 2000년 사이에 2권이 더 나와 총 12권으로 된 이 동화는 지금까지 1억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세계에서 18번째로 많이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1969년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후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됐다. 지금도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서 다시보기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7년 KBS에서 방영돼 상당한 인기를 끈 바 있다.

 

농경 중심 사회인 스웨덴에서도 전에는 가정폭력이 많았다. 특히 농경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 가부장 중심 질서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물론 가정 내 자녀에 대한 훈육도 폭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말괄량이 삐삐’는 그런 스웨덴 사회에 엄청난 반향이었다.

 

1960년대 스웨덴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의 한 장면 © 사진=연합뉴스

 

삐삐로부터 배우는 저항의식

 

동화 속 삐삐는 자유분방하다. 학교는 제 맘대로 빠지고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한다. 학교 선생님이나 마을의 어른 그리고 경찰관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른이라도 불의하거나 부당하면 삐삐는 그에 대해 응징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이야기를 어른의 권위 때문에 참는 법이 없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스웨덴 사회는 서서히 이 파격 캐릭터인 삐삐에게 빠져든다. 동화가 TV 드라마로 방영된 후 그 파급력은 더 커진다. 그저 재미로 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자존감과 권위에 대한 저항 의식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삐삐 사고방식’은 스웨덴의 사고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상당히 많은 스웨덴의 교육 전문가나 아동 전문가들은 현재 스웨덴 아동들의 독립성이 강하고 자존감이 어른 못지않으며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삐삐에게서 찾는다. “1945년 이후 스웨덴은 언제나 삐삐 제너레이션”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스웨덴으로 이주한 한국의 부모들 중 상당수는 스웨덴식 교육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와서 목격한 것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스웨덴 어린이들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이들이 너무 자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고민으로 모이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들이 스웨덴 애들처럼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이 될까봐 걱정도 커진다.

 

거의 모든 스웨덴의 기성세대가 ‘삐삐 제너레이션’인 스웨덴과 삐삐가 그저 어린 시절 추억 거리 중 하나일 뿐인 한국. 그 간극의 차이는 스웨덴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가장 큰 고민의 크기와 비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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