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일가 사익 추구 동원돼도 간판은 ‘공익(公益)재단'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3 16:54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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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정조준한 5대 그룹 공익법인 운영 실태… 지출 중 0.9%만 목적대로 사용하거나 인건비 0원인 곳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대기업이 소유한 공익법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공익법인들의 설립 목적과 운영 실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을 정조준한 것은 실제로 공익사업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이 돼 편법 경영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에서는 모두 35개 대기업이 68개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비영리기관 정보제공 시스템 ‘한국가이드스타’를 통해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기업의 공익법인 설립 목적과 목적사업비 사용 비중(2017년 6월말 공시자료 기준)을 분석했다.

 

왼쪽부터 롯데재단이 위치한 서울 중구 롯데빌딩,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있는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서울 용산구 삼성생명공익재단 © 시사저널 포토

 

삼성, 공익법인 3곳 목적사업 비중 평균 30%

 

삼성은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 공익법인으로 분류된 삼성문화재단은 미술관 운영과 장학사업, 문화·학술단체 사업 지원을 공익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총지출 501억7962만원 중 목적사업비는 96억1514만원으로, 그 비중은 19.2%밖에 되지 않았다. 삼성문화재단은 수익사업으로만 392억8802만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목적사업비는 전체 지출의 단 0.9%에 불과했다. 총지출 1조3174억원 가운데 목적사업비로 쓴 금액은 124억5630만원이었다. 수익사업 지출이 전체 지출의 99%를 차지하는 것이다. 삼성이 운영하는 다른 공익법인에 비하면 삼성복지재단의 목적사업비 지출 비중은 비교적 큰 편이다. 삼성복지재단은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장학사업, 보육시설 운영, 사회복지 프로그램 지원 등을 고유목적사업으로 하고 있는데, 362억2255만원의 총지출 가운데 목적사업비로 260억7288만원(72%)을 사용했다.

 

한국가이드스타는 공익법인에 대한 투명성을 ‘체크리스트’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외부회계감사를 받았는지, 기부금 금액을 공시했는지, 고유목적을 위해 비용을 사용하고 있는지 등 14개 항목을 파악해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삼성이 운영하는 세 곳의 공익법인은 외부회계감사를 받았다고 표기했지만, 회계감사자료 전문을 국세청 공시 첨부자료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 교육 지원과 대학생 학자금 대출 지원,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 어린이 희귀질환 치료 지원 등을 고유목적으로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총 197억3621만원의 지출 중 188억원 이상(95.3%)을 목적비로 사용했다.

 

SK그룹의 행복나눔재단은 결식이웃 급식센터 설립과 자립 지원, 사회적기업 설립·지원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체 지출 141억7184만원 중 목적사업비는 116억3885만원으로, 그 비중은 82.1%였다. 학술과 장학을 목적사업으로 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은 184억8103만원의 지출 중 150억4864만원(81.4%)을 고유목적비로 지출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23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지만, 일반관리비(인건비, 임대료 등)로 사용한 금액이 0원이라고 보고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측은 “모금과 임대료 부분의 지출금액은 없다”며 “목적사업과 관계된 사람들의 인건비와, 수익사업과 목적사업을 공통으로 하는 직원들의 급여 중 목적사업에 해당하는 부분을 모두 목적사업비에 포함해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가이드스타 관계자는 “법인에 회계나 총무 업무를 맡는 직원이 있는데, 이들의 인건비는 일반 관리비에 속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구분 못해서 문의가 오는 경우가 있다”며 “2018년 바뀐 공익법인 회계 기준에는 이를 구분해서 작성하게 돼 있다. 구체적으로 교육을 하면 이런 문제점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LG는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LG연암문화재단은 장학금과 연구비 지급 사업, 과학기술 학술개발, 교육기관 지원 사업, 국내 대학 교수의 해외 연수비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153억3855만원의 지출 중 139억1703만원(90.7%)을 목적사업비로 사용했다. LG연암학원은 연암대 경영과 연암공대 설치 및 경영을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교육 공익법인으로, 485억2387만원 중 418억1928만원(86.2%)을 목적에 맞게 사용했다. 그러나 LG연암문화재단은 외부회계감사를 받았다고 표기하지 않았으며, 회계감사 자료 전문을 국세청 공시 첨부자료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LG연암학원은 기부 관련 항목 금액도 불일치했다.

 

클래식 진흥 및 대중화를 위한 콘서트홀 운영, 음악가 양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롯데문화재단은 총지출 231억5558만원 중 89억5999만원(38.7%)만을 목적사업비로 사용했다. 소외계층 지원과 시설, 주민 문화와 복지 등을 지원하는 롯데삼동복지재단과 장학금 지급과 학술·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롯데장학재단의 목적사업비는 각각 총지출에서 92.8%, 96.8%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두 재단 역시 투명성에서 발목을 잡혔다.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에 따르면, 두 재단은 급여 부분에서 지출한 경비 현황을 0원으로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고용직원 수가 3명이지만 인건비로 사용한 돈은 0원이라고 기재했고, 롯데장학재단은 고용직원 수를 0명으로 보고했다. 한국가이드스타 관계자는 “고용직원 수를 0명이라고 하거나, 인건비 내역을 0원이라고 기재한 경우 본사에서 파견하는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공익법인이 기업의 하나의 부서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 재단들도 하나의 공익법인으로 목적을 갖고 조직을 구성한 만큼 구성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목적과 독립성 등을 감안할 때, 파견 형태가 아닌, 전문성 있는 인력을 채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5대 그룹 공익법인, 계열사 주식 4조원 보유

 

현행법은 공익법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 공익법인이 출연 받는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 및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현금과 부동산 등 주식 이외의 자산을 공익법인에 출연한 경우에는 그 전액에 대한 상속세 및 증여세를 면제해 주고, 주식은 발행 주식 총수의 5%(성실공익법인 20%) 한도에서 면제한다.

 

이 같은 세제혜택을 받으면서도, 대기업이 실제 공익 목적사업비로 사용하는 돈은 적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이거나 경영권 세습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특히 재계는 이번 공정위 조사의 칼날이 경영권 승계 논란이 일고 있는 대기업을 겨냥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공익법인은 목적사업 비중이 현저히 낮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해 운영돼 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물산 주식 200만 주를 3060억원에 사들여, 공공의 이익에 써야 할 재원을 사실상 이 부회장의 지배구조 강화 수단으로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4.7% 보유한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출연은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 자녀들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4.45%)와 이노션(9%) 지분의 역할은 향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중심의 후계구도에서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재단 소유의 대규모 현금이 우호 지분 매입에 투입될 경우, 재단을 통한 지배력 강화 효과가 극대화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재벌닷컴은 지난해 8월 20대 그룹이 운영하는 40개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의 지분 가치가 6조7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중 5대 그룹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 보유 총액은 약 4조원에 달한다. 삼성 2조7541억, 현대차 4526억, SK 2676억, LG 2889억, 롯데 2365억원 등이다.

 

롯데장학재단은 가장 많은 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장학재단은 대홍기획 21%, 롯데제과 8.69%, 롯데칠성음료 6.28%등 7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2007년 롯데장학재단에 기부한 공시지가 500억원가량의 토지를 하루 만에 롯데쇼핑에 700억원에 팔기로 하고, 두 달 뒤 다시 가격을 올려 1030억원에 매각한 것과 관련해 2016년 검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롯데장학재단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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