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문재인 정부 정책 독일 '아젠다 2010과 상반되지 않아”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9 10:56
  • 호수 14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 인터뷰] 게르하르트 슈뢰더 前 독일 총리 ② 경제·사회 개혁, 국제 현안

 

※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인터뷰 ① '정치현안·리더십, 남북관계' 편에 이어서 계속 ​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에서 ‘한국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이 자신의 조국 독일처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나라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일 관계가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경제·사회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이 한국에서 꽃피우기를 기대했다. 그가 최근 여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내겠다고 밝히면서 한국과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면에서 2000년대 초반 독일 슈뢰더 정부와 닮아 있다. 재도약과 추락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지금의 한국 경제·사회에 슈뢰더 전 총리의 한마디는 그래서 중요하다. 슈뢰더 전 총리와의 단독 인터뷰는 1월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으며 추가로 궁금한 부분은 서면으로 대신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前 독일 총리 © 시사저널 이종현

 

◈ 경제·사회 개혁 

 

최근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확대, 비정규직 고용 제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신이 추진한 ‘아젠다 2010’과는 반대 흐름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도입하려는 정책은 아젠다 2010의 내용과 전혀 상반되지 않는다. 독일에서도 최저임금을 도입한 바 있으며 도입 후 한 번의 인상조치가 있었다. 독일의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보장제도의 관점에서 필요했던 것으로, 경제적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한국의 비정규직 고용 제한도 아젠다 2010의 내용과 상반되지 않는다.”

 

 

당신이 추진한 아젠다 2010이 독일 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젠다 2010은 독일을 EU(유럽연합) 내 그 어떤 국가보다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물론 개혁에 관해 특히 좌파진영과 노조에서 부분적으로 비판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필요성이 받아들여졌다.”

 

 

당신은 재임 기간 중 탈(脫)원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다. 지금 한국 정부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내 임기 중 탈원전 정책이 시작됐고 부분적으로 성공한 것은 맞다. 현재 집권당인 독일 기민당은 당시에는 야당으로서 이 정책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탈원전 정책을 계승해 펼쳐나가고 있다. 한국도 탈원전의 길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 신재생에너지를 장려해야 한다. 다만 이때 특히 산업 부문의 에너지 가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돼야 한다.”

 

 

예전에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비판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특정 대기업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나는 재벌기업을 전반적으로 비판한 게 아니다. 재벌들은 분명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으므로 그 의미를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기업의 규모보다 기업이 지식을 새로운 제품과 생산 공정에 얼마나 신속하게 구현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급변하는 미래 시장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월드클래스 300기업과 같은 강소기업들이 앞으로 경제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 강소기업을 위해 한국 정부는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독일 역시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강소기업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둘 수 없었다. 이 분야에서 한국과 독일은 서로 협력할 게 많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한국 경제 개혁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젠다 2010의 모토는 ‘지원과 요구(Fördern und Fordern)’였다. 일자리가 없어진 실업자들에게는 국가가 교육기회를 제공해 ‘지원’하고, 이렇게 지원받은 사람들에게 혹 본인의 기대에 차지 않는 일자리라 하더라도 제공된 일자리를 수락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직업교육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와 기업의 역할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2017년 9월11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국제 현안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내 생각에 아직까지 일본 사회는 과거 식민지 시절 자행된 참혹성을 청산하는 것이 일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런 것 같다.”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의 행보가 자칫 동북아시아 군비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 것일까.

 

“군비경쟁은 어떠한 형태든지 필연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일본의 핵무장뿐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에 관한 논의 또한 위험하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핵무기 보유국의 확대가 아닌 축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아시아 다른 국가들이 핵을 보유한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과거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를 비판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가 더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 우리는 양극이 아닌 다극체제에서 살고 있다. 물론 미국은 과거와 다름없이 앞으로도 주요 국가로 남겠지만 지금 세계의 문제는 어떤 한 국가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러시아 등 같은 다른 국가와의 대화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브렉시트로 유럽 통합에 제동이 걸렸다.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때 유럽이 분열의 위기를 딛고 다시 통합 대열에 합류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통합에 제동이 걸린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분열로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을 통해 유럽은 이제 서서히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또한 유로존(유럽경제공동체)에서는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과 경제정책의 조정을 통해 더 많은 통합을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