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논쟁 이어가는 '슈뢰더 개혁' 평가
  • 최예린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0 10:06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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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흥 초석’ vs ‘철 지난 노동시장 개혁’ 의견 갈려

 

“귀족강경노조에 휘둘려 노동시장이 경직되고 있다…‘한국형 하르츠 노동개혁 모델’ 만들겠다.” 느닷없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월22일 신년연설에서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하르츠 개혁’을 꺼내들었다. 홍준표 대표뿐만 아니라 ‘귀족강경노조’와 ‘포퓰리즘 복지’를 비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슈뢰더의 개혁은 단골메뉴다.

 

사민당(SPD) 소속이었던 슈뢰더 전 총리는 지지층인 노조와 결별하면서까지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2000년대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을 흡수하며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이는 독일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영국·핀란드·스웨덴 등 선발 복지국가들이 이맘때쯤 동시에 ‘복지국가 병’을 겪었다. 강력한 해고보호법과 높은 임금으로 기업은 고용에 부담을 느꼈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찾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노동시장 경직성은 경제성장률의 침체로 이어졌다. 세대 간 계약이 붕괴하면서 사회보장체계를 위한 재정도 부족해졌다.

 

이때, 슈뢰더는 ‘아젠다 2010’ 정책을 발표했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을 늘리는 구조적 개혁이었다. 아젠다 2010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미니잡(Mini-job) 등 탄력적인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노동 분야의 하르츠 개혁과 연금 지출의 축소를 골자로 했다.

 

그러나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의 대가로 2005년 총리직을 내려놔야 했다. 그만큼 슈뢰더의 개혁에 대한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인 부분은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꾼 하르츠 개혁이다. 노동계와 좌파 정치인들은 그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사민당이 분열한 것은 당연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재임 중이던 2005년 8월22일 조선소를 방문해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제공

 

고용률 올랐으나 워킹푸어 증가

 

결과적으로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경제강국으로 우뚝 섰다. 많은 이들은 그 공을 슈뢰더의 개혁에서 찾는다. 하르츠 개혁의 마지막 단계가 진행되던 2005년 530만 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는 3년 뒤 30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들어서는 실업자 수가 240만 명 선까지 떨어지면서 1980년 이래 가장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독일 노동청 산하 연구기관의 요아킴 몰러 교수는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을 통해 “아젠다 2010 정책이 없었다면 고용률이 이렇게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낙관 한국자치행정학회 회장(예원예대 사회복지학대학원 교수)도 “초기 평가는 비판적이었지만 메르켈이 아젠다 2010을 이어받아 진행했고, 지금 독일의 성공을 보면 슈뢰더의 개혁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독일 국민이 슈뢰더의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둘로 나뉜다. 좌파 성향의 독일 주간지 ‘슈테른’은 아젠다 2010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2013년에 여론조사를 발표했는데 아젠다 2010이 독일에 유익했다고 답한 비율은 44%에 그쳤다. 43%는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슈테른은 여전히 아젠다 2010을 놓고 독일 국민의 의견이 분열돼 있음을 지적했다. 또 슈뢰더와 같은 정치인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72%에 달했다.

 

가장 비판받는 지점은 하르츠 개혁이다.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함으로써 오히려 노동시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하르츠 개혁은 ‘미니잡’, 즉 파트 타임 일자리나 파견근무, 저임금 노동을 늘렸다. 기업의 고용을 촉진시킴으로써 실업자가 빠르게 일자리를 찾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타게스슈피겔은 2013년 3월10일자 기사를 통해 “지금의 근로시간은 1990년대 초반보다 적다”며 “고용률 상승을 고려해 보면 적은 양의 일이 많은 이들에게 나뉘어 분배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게르하르트 보쉬 뒤스부르크 에센대학 교수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을 통해 “유럽의 그 어느 나라도 독일만큼 심각하게 사회적 불평등이 증가한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워킹푸어(Working Poor)가 늘어났다. 최근 유럽의 여러 매체는 하르츠 개혁 이후 사회문제로 대두된 독일의 워킹푸어를 연달아 보도하고 있다. 통합서비스노조(ver.di) 산하 경제학자 디어크 허셀은 ‘유로뉴스’를 통해 “독일의 문제는 5명 중 1명의 노동자는 1시간에 10유로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독일은 부유한 국가지만 사회적으로 분열돼 있다”고 지적했다. 최낙관 회장은 “하르츠 개혁 이후 노동시장의 질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독일의 성장이 아젠다 2010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하르츠 개혁을 연구한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명암이 분명한 슈뢰더의 개혁은 독일의 대표적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도 분열시켰다. 2003년 당시 사민당은 슈뢰더의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다.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며 복지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사민당은 슈뢰더의 개혁을 기점으로 두 가지 노선으로 갈라졌다. 사민당 당수였던 오스카 라퐁텐이 2005년 주도적으로 좌파당을 결성한 것이다. 또 당시 노동자 지지기반을 잃고 집권에 실패한 후 사민당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이 2015년 5월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독일 하르츠 노동개혁과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주제로 강연하고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형 하르츠 개혁? 기초체력부터 길러야

 

그렇다면 슈뢰더 방식의 노동, 복지개혁은 한국에 적용될 수 있을까?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슈뢰더의 개혁은 꾸준히 인용돼 왔다. 박근혜 정부도 하르츠 개혁을 모범사례로 들어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려 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당장 신년연설에서 하르츠 개혁을 거론했다. 하지만 독일이 슈뢰더의 개혁을 통해 비정규직을 늘렸다는 사실, 연금을 축소했다는 사실만 떼어와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독일은 우리나라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다. 단국대 국제통상학부 한종수·정미경 교수는 연구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독일의 시간제근로자는 적게는 전체 임금근로자 임금의 54.1%에서 많게는 76.2%까지 받았다. 반면 한국은 같은 시기 시간제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 임금의 25.7%밖에 받지 못했다.

또 독일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오래전부터 확보하고 있다. 최낙관 회장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 대학 등록금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지출하지만 독일은 국가에서 등록금이 나온다”며 “연금 하나만 놓고 볼 게 아니라 다른 사회보장제도들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연금 수령액을 줄였다고 해도 다른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들이 개인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독일에 비해 이 같은 기초체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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