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T, '동반성장'은 말 뿐…벤처기업 상대 '갑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1 10:43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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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선 동반성장 우수기업 흉내, 뒤에선 벤처 목 졸라

 

KT가 벤처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 지원금을 위한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 계약(구매조건부 계약)을 빌미로 LTE-M 상품(IoT)을 강매하는가 하면, 특정 업체로부터 부품을 고가에 납품받도록 강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 KT가 돌연 계약 체결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다. 벤처기업이 계약 체결을 염두에 두고 구매한 상품 약정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하자 막대한 위약금을 요구했다. 이를 내지 않을 경우 채권팀을 통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KT는 지난해 ‘동반성장 최우수 명예기업’에 선정된 바 있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획득한 결과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면서 뒤로는 벤처기업의 목을 졸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KT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LTE-M 100대 신청한 직후 ‘계약 불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IT 관련 벤처기업 A사다. 이 업체는 퀵서비스 오토바이 배달통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내고 해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A사의 주장에 따르면, KT와 처음 접촉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이날 A사와 KT는 업무제휴를 맺고 자사 상품으로 선정해 상생하자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A사는 양해각서(MOU)와 구매조건부 계약 체결, 자사 제품의 KT 상품화, 해외 글로벌 마케팅 전략 공동 수립 등을 요구했고 KT가 이를 수락했다.

 

양사는 A사 상품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일회성 구축형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 구축형 사업이란 KT의 LTE-M 회선을 사용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KT가 중간에서 마진을 가져가는 구조로 돼 있다. KT는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의 15% 수준을 요구했다. 사실상 A사로서는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였다. 그럼에도 A사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KT가 당장은 손해가 나더라도 향후 자사 상품에 선정될 경우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회유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KT는 LTE-M 100대를 신청하라고 요구했다. A사에 따르면, KT의 회선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상품의 금형을 제작하는 단계여서 2~3개월 후에나 회선이 사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A사는 그럼에도 KT가 LTE-M 신청을 종용한 것은 연간 매출실적이 9월말 결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상 실적을 올리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A사는 향후 계약 체결을 염두에 두고 어쩔 수 없이 LTE-M 100대를 36개월 약정으로 계약했다. 대당 월 요금이 1만6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달 160만원의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KT 관계자는 “영업부서에서 구매 기간을 9월로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회선에 대한 요구는 A사 측에서 먼저 해 왔다”고 해명했다.

 

A사는 KT가 자사 상품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라즈베리파이를 제3의 회사인 D사로부터 납품받도록 강요했다고도 주장했다. D사를 추천한 곳은 업체 선정과 무관한 개발(IMS)부서였다. 폭리가 의심되는 정황도 있다. 시중가 4만원인 라즈베리파이를 개당 40만원에 납품받도록 한 것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IMS부서 직원의 계속된 강권에 A사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40만원은 라즈베리파이뿐만 아니라 여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OS)와 유지관리비용 등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KT가 A사에 보낸 업무협약 관련 문건


 

정부 중소 지원금 관행적 편법 동원

 

그러나 KT는 LTE-M 계약체결이 완료된 지난해 10월 돌연 얼굴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MOU 체결은 먼저 상당한 매출이 발생한 이후 가능하고, KT 서비스 상품화가 되기 위해서는 일회성 구축형 사업을 1년6개월에서 2년 동안 한 뒤에야 고려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매조건부 계약의 경우 이미 생산된 제품에서 20억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해야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는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의 취지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대·중견기업, 공공기관, 외국기업 등 국내외 수요처에서 구매의사를 밝히고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을 제안한 과제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에 성공하면 수요처에서 일정기간 개발제품을 구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는 주된 목적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다. 2년간 5억원 이내의 정부 출연금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재원으로 중소기업은 제품을 연구·개발해 생산한 뒤 대기업이 제품을 구매하고, 대기업의 상품으로 선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KT의 요구는 결국 A사가 개발을 마쳐 상용화한 기존 제품을 이제 생산할 것이라고 속여 정부로부터 개발비를 지원받으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 KT의 입장에서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납품받을 수 있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 수요처로 참여 시 동반성장지수 산정 과정에서 가산점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정부 지원금이 주된 목적인 중소기업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사실상 많지 않다.

 

KT가 구매조건부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한 것은 이번만의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A사의 항의에 KT 관계자가 “왜 유별나게 구느냐. 우리 KT에서는 거의 90% 이상을 다 그렇게 한다. (이미 생산 완료되고 시판돼) 매출이 검증된 제품만 우리는 구매조건부 계약을 체결한다. 그것 가지고 문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부에서 그걸 어떻게 아냐.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게 A사 관계자의 주장이다.

 

2017년 11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해 열린 ‘KT 2017 파트너스 데이’ 행사에서 황창규 KT 회장(왼쪽 세 번째)이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뉴시스

 

KT “애초부터 MOU 어렵다는 입장 밝혔다”

 

더 이상 KT와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A사는 LTE-M 100대의 약정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KT는 위약금 1300만원을 납부하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채권팀을 통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A사는 자사가 당한 부당한 처사를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KT는 사과와 함께 계약해지를 약속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본지의 취재가 시작되자 KT는 A사와의 계약해지를 보류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KT는 애초부터 MOU와 구매조건부 계약은 힘들다는 뜻을 A사에 전달했다는 입장이다. 당장 기술이나 제품이 완성돼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향후 상용화도 힘들 것으로 판단돼 MOU는 물론 구매조건부 계약도 어렵다는 입장을 처음부터 밝혀왔다는 게 KT 측 설명이다. 하지만 A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KT는 5월 A사에 양식을 보내는 등 MOU 체결을 준비한 바 있다. 또 IMS부서 직원이 A사에 구매조건부 계약을 해 줄 것임을 호언장담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도 있었다. 무엇보다 A사는 최근 또 다른 통신 대기업과 MOU를 체결한 상태다. 제안서를 보낸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뤄진 결과다. 기술과 제품이 미흡해 상용화가 힘들다는 KT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갑질 논란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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