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개편은 여야 모두에 중요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개헌은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개헌이 정치권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 발언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를 놓고 “관제 개헌”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반(反)개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등 차기 권력을 놓고 여야가 벌써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헌법은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에서 출발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헌법을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은 어느 때보다 높다. 검사 출신인 4선의 김재경 자유한국당 의원(진주시 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드는 개헌특위 위원장에 선임돼 개인적으로 어깨가 무겁다”면서 “여야 모두 개헌 저지가 가능한 상황이니만큼 충분한 협상을 통해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월15일 열린 첫 회의부터 여야 간 입장차로 뜨거웠다.
“이번 특위는 분명 법률적으로 처음 시작하는 건데, 이미 작년에 개헌특위도 있었고 정개특위도 있었다. 그 성과물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인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를 놓고 입장 차이가 있다. 그런데다가 국민적 관심도 높아 정치권에서 현실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됐다.”
여당에서는 현 정국을 개헌(改憲) 세력과 호헌(護憲) 세력의 대결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알기로 자유한국당에서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 손 들라고 하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건 국민들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프레임이라 본다.”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지난 정부 때도 있었던 일이다. 더군다나 이건 대선 공약이다. 그런 관점에서 문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 의견에 동의한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후에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대통령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에서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고 보는 것 아니겠는가? 나 개인적으로는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약간 생각을 달리한다. 개헌은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바다. 떨어진 후보야 부담이 없겠지만, 문 대통령에게 개헌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국민적 요구가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고치라’라는 것이었다. 다만 문 대통령이 그 정도 언급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4년 대통령 중임제’까지 말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기를 강조한 것도 특위 위원장 입장에서는 좀 아쉽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관제 개헌’ 주장과는 좀 견해가 다른 것인가.
“문 대통령의 개헌 발의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원내 1, 2당은 다 100석 이상 의석을 갖고 있다. 상대방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두 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문 대통령이 한 번만 쓸 수 있는 개헌 카드를 뽑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본다. 국회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대통령발(發) 개헌은 가능하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가는데.
“여당 입장에서야 반개혁 세력으로 프레임을 짜고 낙인을 찍고 싶겠지만 실체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까? 자유한국당도 기본적으로 개헌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내용에 있어서 합의를 하고 누가 주체가 돼 개헌을 추진할 것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을 하지 않고 왜 가이드라인을 던지느냐, 그것에 대한 공세라고 봐야 한다.”
두 번째 개헌특위다. 6개월 안에 합의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개헌특위의 운명은 두 가지다. 만약에 문 대통령이 헌법 카드를 뽑는 순간, 이 특위는 식물특위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6월이 마지노선일 수는 없겠지만 개헌 성사의 촉매제 역할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뒷문이 어느 정도 닫혀 있다면 국민들이 보는 눈도 있고 열망도 알고 있으니 정부 여당이 원하는 6월까지는 안 될지 몰라도 판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당은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지방선거 때 동시에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하자고 한다.
“그건 ‘마이너’한 문제 같다.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서 어떤 국가예산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없겠지만 과연 1200억원이나 드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인가.
“문 대통령이 시한을 못 박은 걸 꼭 그때까지 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말한 거라고 보지 않는다. 문 대통령도 그런 유연함을 갖고 이 문제를 풀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는 6월이냐 연말이냐 등 시기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연말까지 시기를 늦추면 합의안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보는가.
“가령 10월에 합의안이 나온다면 누가 6월을 고집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6월쯤 가면 상당히 윤곽이 나올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청와대가 6월이라는 시점만 고수하지 않는다면 개헌 추진에 적극 나서리라고 보는가.
“우리는 6월이라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합의만 된다면 6월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걸 여당에서 받아준다면 안 될 게 뭐가 있겠는가.”
일부에서는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개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우리 당에서 개헌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내용과 폭에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개헌은 모두 원하는 바다.”
지방분권, 권력구조 등과 관련해 여야 간 시각 차이가 있는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정부 여당이 지방분권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쉽다. 정치권이 원하는 것은 중앙에 집중돼 있는 이 권력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나누느냐 아닌가. 그런데 최근 논의되는 것을 보면 지방권력 대 중앙권력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지방권력을 강화하고 나눠줘야 할 정도로 큰 나라인지 모르겠다.”
차제에 권력구조 개편 말고 다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너무 이념적인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실용적이고 규범적인 것을 다뤘으면 좋겠다. 이념적으로 가느니, 전문에 무슨 사건을 넣고 무슨 사건을 빼야 한다며 갈등한다. 우리나라 질서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다 안 되면 그런 건 싹 빼고, 실제 나라를 운영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는 규정을 넣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권력구조는 뭐라고 보는가.
“4년 중임제가 외형적인 틀에서 맞다고 본다. 내면적인 면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것이 좋다. 큰 골격은 내·외치를 구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