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北의 목표는 대화로 얻을 건 얻는 것…지금 그 단계”
  • 김지영 기자·박소정 인턴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2.15 07:51
  • 호수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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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반기 국회의장 유력 후보로 부상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엄동설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해빙되는 분위기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 응원단이 대거 남으로 내려왔다. 급기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까지 방남했다.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은 예외다. 일촉즉발의 북 핵·미사일 정국이 평화 모드로 바뀌면서 남북을 비롯한 각국의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다. 일시적 훈풍일 수도 있지만 한반도 정국에 중대한 모멘텀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4년 17대 국회부터 20대 현재까지 외교통일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2월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454호 사무실에서다. 문 의원은 정보위원장을 역임했고 국방위원회 활동도 했다. 명실상부 여권 내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다. 급변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지, 답보상태인 개헌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6선인 그는 상반기 정세균 국회의장에 이은 하반기 의장으로 유력하다. 그는 “의회주의자로 할 일이 남았다”며 “국회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국회 권위는 결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국회가 국민에게 무시당하거나 인기가 없거나 질타를 당해선 안 된다는 것. 그래야 비로소 국회 권위도 제대로 선다는 거다. 영화 《1987》을 얘기할 땐 잠시 인터뷰가 끊기기도 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그 남영동 분실에서 자신이 당했던 통닭구이 고문이 연상된 듯했다. 문 의원과의 인터뷰는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방문단이 대거 남으로 내려왔다.

 

“평창올림픽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역사적 의미를 아주 크게 부여하고 싶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도약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올림픽이 갖는 의미는 엄청났다.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등은 우리 헌정사에 한 획을 그은 도약의 계기였다. 개인적으로 나 같은 70대의 경우, 이런 도약의 계기가 다시 오겠는가.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여야, 남북, 동서 구분할 게 아니다. 이념과 지역, 계층을 초월해야 한다. 그런데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북한 참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북한 참가다. 기적처럼, 성경말씀에 나오는 ‘새벽의 도둑’처럼 엄청난 의미를 갖고 이뤄진 거다. 나머지는 소소한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북측 방남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엇이 중한지에 대해 뭔가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정략적으로 악용한다든지, 보수·진보 시각으로 본다든지, 기존 이분법으로 본다든지, 이렇게 보면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야당(자유한국당)은 그들이 (평창올림픽을) 유치해 놓고서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은 옳지 않다.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을 넘어 저주하는 것이다. 건건이 물고 늘어지는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의 행각은 절대 옳지 않다. 다음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행태다. 역사 앞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 분위기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1월1일 신년사 이후 남북 경색이 급속도로 풀리면서 ‘우리가 북한 전술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관계는 이중성이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대상으로서의 북한이 있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또 하나는 현존하는 최고의 주적(主敵)이란 개념이 있다. 그것도 틀림없다. 이 두 가지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남북 시대를 사는 우리들 아픔이다. 도리가 없다. 어느 것도 소홀히 생각하면 안 된다. 늘 안보적 고려를 해야 한다. 위협하는 북한의 전략전술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건 기본 전제다. 하지만 사사건건 적대시하는 것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럼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투 트랙 전략이다. 강력한 안보태세 확립이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지금 투 트랙으로 가고 있다. (한·미 간) 역할 분담이 나온다. 투캅스 논리에 따라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우리는 대화 쪽으로 가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그걸(투 트랙 전략을) 다시 시작한 거다. 1월1일 (김정은) 연두사로 인해 (남북대화가) 출발한 게 아니다. 이 정부 출범 이전, 이후 했던 작업의 결실이다.”

 

 

남북관계가 ‘갑자기’ 풀린 게 아니라는 것인가.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다. 김정은이 미친 사람도 아니고…. 그들은 다 계산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는 (핵무기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더 이상 (핵무기를) 실현할 일이 없잖은가. 북에서 전쟁을 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한 게 아니다. 그들이 생존전략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거라 보진 않는다. 그들 목표는 대화로 얻을 건 얻는 것이다. 그 작업 단계로 들어간 것이다. 우리도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에 찬성하면서도 대화하자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다. 그게 합쳐져서 1월1일 연두사로 나왔을 뿐이다. 싸우려고 마음먹었다가 ‘이제 대화하자’고 확 바뀌어서 이뤄진 게 아니다.”

 

 

“남북관계 갑자기 풀린 게 아니다”

 

젊은 층에선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대해 불만 내지 반감이 적지 않다.

 

“분단을 보는 관점에 있어 세상이 바뀐 건 틀림없다. 그들은 공정성·정의에 관심이 많은데 단일팀 구성하면 그동안 고생한 (한국) 선수가 아이스하키 팀에서 배제되는 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리고 북한이 건건이 말썽만 부리다가 이제 와서 숟가락 하나 놓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지금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를 충분히 이해한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절절함에 대해 그들은 알 수가 없다. 우리보다 절절하지 않다. 간접 경험도 없고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니까. 그건 우리 세대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됐다. 지난 10년간의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거치며 그들도 은연중에 물이 든 거다.”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북측이 대화에 목이 차서(필요성을 느껴서) 나오기 시작한 거라고 본다.  밑져야 본전이다. 평창의 성공은 북·미 대화의 결정적인 모멘텀을 마련할 수도 있다. 거기서 모든 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첫 출발은 될 것이다.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가 투 트랙으로 이어지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남북대화부터 시작하는 게 유리할 거다. 저기(북한)도 (대화를) 준비하고 기다렸다고 본다.”

 

 

성급한 전망이지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관측도 나온다.

 

“당장은 절대 안 된다. 내가 볼 땐 올해는 어렵다. 미국 입장과 유엔 결의에 따라 진행된 원칙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양해로 유엔의 재의결이 나오든지, 타이밍이 되든지…. 지금은 섣불리 할 수 없다.”

 

 

“文 정부, 적폐청산 안 하면 벌 받아”

 

화제를 바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창이다. 이 전 대통령과 한국당에선 ‘정치보복’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데.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스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것, 이것을 누가 뭐라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한 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공소시효 안에 있다면 명백한 범죄다. 사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본인들의 절절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 잘못했다고 회개해야 한다. 그다음 용서와 화해 절차가 이어지는 것이다. 진상 규명조차 안 됐는데 지금 단계에서 정치보복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

 

“정치 프레임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터지자마자 ‘모든 책임은 적폐에 있다. 적폐를 청산하자’고 했다.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촛불민심의 명예혁명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의 제1 소명은 적폐청산이다. 그걸 안 하면 벌 받는다.”

 

 

일각에선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피로감을 얘기한다.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 9개월 지났다. 아직 1년도 안 지났다. 1년 안에 해도 빠른 거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도 개헌안을 제안할 수 있지만 가장 바람직한 건 여야 합의된 국회 안(案)을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우선 자유한국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자기네가 개헌을 먼저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개헌하자고 했다. 자기네 당론으로 정했고 대통령선거 공약으로도 세웠다.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자기들이 제한해 놓고 이제 와서 안 한다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왜 개헌에 대해 미온적이라고 보나.

 

“선거전략이다. 지방선거와 개헌을 동시에 실시하면 개헌안에 찬성한 국민들이 여당도 찍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개헌을 정말 당리당략으로 쓰는 거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사저널에 자신이 직접 쓴 신년휘호를 선물했다. 문 의원은 2월7일 신년휘호인 ‘국민통합(國民統合)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설명하며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남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심재철·설훈·이해찬, 남영동 분실 동기”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3월20일까진 개헌안이 나와야 하는데.

 

“맨 마지막에 극적으로 타결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국민이 원하면 된다고 본다.”

 

 

민주화운동 세대인데 영화 《1987》은 관람했나.

 

“봤다. 《변호인》(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 때보단 덜 울었다. 면역이 됐나 보다. 《1987》엔 7년 전(1980년)에 내가 끌려갔던 남영동 분실이 나오더라. 내가 통닭구이 고문으로 매달렸던 데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1980년 남영동 분실에 왜 끌려갔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 대통령 지시로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의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심재철(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현 국회부의장)도 남영동 분실에 왔었다. (현 민주당 의원) 설훈, 이해찬 등도 배후 세력이라면서 끌려왔다. 다 감방 동기다.”

 

 

하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내가 정치 인생을 마무리 짓는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시대 의회주의자로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국회의 권위 회복이 급선무다. 지금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괄시받고 인기가 없다. 그러다 보니까 대통령, 정부로부터도 무시당하는 것 같다. 의회가 국민에게 무시당하거나 인기가 없거나 질타를 당하는 분위기에서 민주주의는 꽃피지 않는다. 의회가 모든 정치의 본령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바로미터는 결국 국회가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문제다. 지금 내가 보는 국회는 국민이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수준이다. 그래서 사랑받고 신뢰받는 국회로 만드는 데 마지막 열정을 다 바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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