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사태, 스웨덴에선 일어날 수 ‘없다’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6 13:41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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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악화·공장 폐쇄로부터 노동자 보호하는 ‘사회보장세’

 

최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논란은 2009년 발생했던 쌍용차 사태와 많이 닮아 있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소유하던 것을 해외 기업에 매각했던 것이나, 본사의 과도한 차입금 형태의 자금 회수와 비정상적 경영으로 경영난에 휩싸여 경영권 포기나 폐쇄로 이어진 것, 그리고 회사의 부실 경영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 등이 그렇다.

 

한국GM은 한국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군산공장은 폐쇄된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GM의 한국 철수를 위협하고 있다. 올림픽으로 한껏 푸른빛을 띠던 문재인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사회보험청 건물 © 이석원 제공

 

최장 600일간 실업급여 지급

 

이 사태가 정치권까지 뜨겁게 달구는 가장 큰 이유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 사태와 이에 따른 군산 지역 경제의 파탄 우려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선 “회사의 무능 경영의 책임이 왜 노동자 몫으로만 돌아오느냐?”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회사가 부실 경영을 하는 동안 현장 노동자들은 제 역할을 다했는데, 피해는 노동자들이 다 떠안아야 한다는 데서 이 문제는 경제 논리를 떠나 사회 갈등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이번 한국GM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들이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대량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마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회사가 호황일 때 그 알곡은 기업주나 고위 임원들이 다 챙기고, 회사가 부실해지면 그 피해는 노동자들이 다 짊어지는 악순환은 한국 기업과 노동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 가입률 세계 최고 수준의 스웨덴은 이 같은 문제가 없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없다”이다. 하지만 스웨덴 기업들의 부실 경영이나 대량 해고, 기업 폐쇄 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1990년대 경제 위기, 2008년 세계금융 위기 등을 겪으면서 수많은 굴지의 스웨덴 대기업들이 쓰러졌다. 스웨덴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에릭손의 모바일 분야가 일본 소니에 넘어갔고, 사브 오토모빌이 미국의 GM에 매각됐으며, 볼보의 승용차 부문이 미국 포드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웨덴 대기업도 경영난과 구조조정 등의 진통을 겪어왔다.

 

다만 기업들의 경영 악화나 공장 폐쇄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는 일이 스웨덴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스웨덴 대기업들이 재원을 담당하는 ‘사회보장세’라는 것이 있다. 경영 악화 등으로 인한 노동자의 해고나 폐업에 따른 실업 등이 발생했을 때 실업 노동자의 실업수당, 재취업 교육비, 창업 지원 등을 부담하기 위한 사회보장기금의 재원이 되는 사회보장세는 스웨덴 기업이 법인세와 함께 담당하는 직접세다. 1970년대 처음 도입 당시 기업이 낸 사회보장세는 노동자 임금의 39%였다. 현재는 32%가량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스웨덴의 사회보장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보장세로 운영되는 사회보장기금을 통해 실업자는 300일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300일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업무일 기준이다. 300일 후에도 구직을 하지 못했을 경우 실업보험금고의 결정에 따라 추가 300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세는 실업급여뿐 아니라 재취업을 위한 교육비도 지원한다. 여기엔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직업 교육은 물론 실업 상태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지급되는 교육보조금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창업을 할 경우 현금과 컨설팅 지원까지 책임져준다.

 

2008년 에릭손이 애플과 삼성에 밀려 모바일 사업을 포기했을 때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에릭손에 근무했던 한 한국인 직원은 해고를 피할 수 없었지만 회사로부터 퇴직 후 1년간 연봉을 지급받았다. 1년 뒤에는 사회보장기금을 통한 실업급여 지급과 재취업 프로그램을 지원받았고, 이후 창업을 결심하면서 에릭손과 정부 사회보장기금의 창업 지원과 함께 잔여 기간 실업급여도 일시불로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현재 스톡홀름에서 꽤 성공한 자영업자가 됐다.

 

또 2010년 스웨덴 자동차회사 사브 오토모빌은 2018년 한국GM과 닮은꼴이다. 2000년 GM에 인수됐던 사브는 10년 만에 경영악화로 매각됐다. 당시 사브는 3600명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노조는 회사에 항의했고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도 없었고, 거리나 회사 앞에서 농성도 없었다. 이들은 사회보장기금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계엔 지장이 없었다.

 

2010년 GM으로부터 매각된 스웨덴 자동차회사 사브(SAAB) © 사진=EPA연합

 

‘해고가 두렵지 않은’ 노동 문화

 

스웨덴 대기업은 회사가 정상 운영될 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것이 사회보장세다. 회사 경영의 결실을 노사가 함께 나누는 것뿐 아니라 나중을 대비해 비축해 놓는 것이다. 그게 세금의 형태다 보니 기업은 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 때문에 스웨덴 대기업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물론 한국보다도 5%나 낮은 20%의 법인세를 내고도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편이다. 스웨덴 대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2008년까지 39%를 유지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 등으로 28%로 내려갔지만 2014년 이후 다시 30% 중반까지 올라갔다.

 

결국 스웨덴 기업들이 담당하는 사회보장세는 기업의 그 어떤 도덕 경영보다도 명확한 신뢰와 존경을 끌어내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또한 낮은 법인세, 비교적 자유로운 해고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노조, 그리고 사회 구성원 전반에 이르는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회사가 살아남는 게 스웨덴 경제를 유지·발전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2010년 사브 사태를 맞은 스웨덴 IF 금속노조 하칸 스코트 위원장의 말은, 사회보장세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해고가 두렵지 않은’ 스웨덴 노동 문화로 인한 것임을 한국 대기업들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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