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정에 쫓기는 개헌을 우려한다
  •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09:25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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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얼핏 영화 제목과 비슷해 보이는 이 표현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당시의 판단을 후회하는 말일 수도 있고 또한 지금이라도 제대로 고치게 돼 다행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 단일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구성할 당시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다. 정치적 이유로 그동안 노력한 한국 선수들 일부가 피해를 보는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게임이 모두 끝난 지금의 국민정서는 어떠한가. 한국 여자팀은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남북 선수들의 합심 노력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셈이 돼 버렸다.

 

우리는 항상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다른 정보를 획득하면서 판단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론 과거의 결정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비용이 수반된다. 국가경제를 살릴 것이라 믿고 선택한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를 정부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가장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국민들을 분노에 빠뜨리고 있다. ‘정의사회구현’을 내걸었지만 정의롭지 못했던 전두환 정부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그뿐이랴. 구태와 같은 정치부패는 없을 것이고 원칙을 지킬 것이라 믿어서 뽑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결국 촛불시위와 문재인 정부 탄생을 낳았다. 허탈하게도 한국 정치는 국가원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역대 대통령은 한 명도 없는 실패한 대통령 역사를 갖게 됐다. 그때의 결정은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고통을 국민들이 겪고 있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2월7일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정책기획위원회 개헌 준비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가 논의되고 있다. 제1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개헌안이 과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다. 개헌추진론자들은 1987년 헌법개정은 대통령직선제 도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이뤄졌지만 졸속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지금은 개헌 내용에 관한 공감대가 훨씬 낮은 상황이다. 정부 형태, 지방분권 등 중요 부분에 관한 정치권의 합의가 없는 상태다. 대통령이 나서 개헌안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정치권의 갈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개헌추진론자들은 6월 개헌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과 국민투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선 당시 대부분의 후보들이 6월 개헌을 찬성했다. 6월 개헌투표 실시 공약 때문에 문재인 대선후보를 찍은 유권자는 많지 않다. 1200억원으로 추산되는 국민투표 비용보다 설익은 개헌안이 더 걱정이다. 개헌을 찬성하는 국민이 60%를 넘지만 개헌 문제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하는 다른 안건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가 있다. 헌법은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국가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다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말을 가까운 미래에 해야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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