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면접 때 춤 시켜놓고 ‘낄낄낄’이라니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13:13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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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그의 딸 이야기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한 지상파 방송국의 카메라 보조요원을 뽑는 면접시험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남성들로만 구성된 면접관들이 춤을 잘 출 것처럼 보인다며 춤추는 모습을 한번 보여 달라고 난데없는 주문을 해 온 것이다. 취업이 급했던 그는 마지못해 그 요구에 응했지만 찜찜한 마음은 계속 남았던 모양이다. “방송국 면접이 원래 춤도 추고 그러는 거야? 카메라 기자하고 춤이 무슨 상관 있다고. 그리고 춤을 춰보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들 낄낄거리던지. 나는 그게 더 기분 나빠.” 그가 집에 돌아와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했다는 말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아프게 흔들고 있는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 움직임과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는 성추행 폭로들을 보면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이 스물일곱 어린 여성이 겪었던 그 어처구니없는 ‘저질 면접’ 사건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 여성을 앞에 세워놓고 아무렇지 않게 어처구니없는 주문을 내놓은 그 남자들의 역겨운 ‘낄낄거림’이 환청으로 끼어들었다.

 

힘겹게 말문을 연 한 여성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공공기관을 넘어 문단과 연극계 등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가해자들 중 일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를 했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쏟아내는 ‘순간적인 실수’나 ‘관습’ 같은 어휘도 전혀 공감되기 어려운 치졸한 변명으로 들린다.

 

2월1일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 사진=연합뉴스


 

그들이 저지른 성추행 혹은 성폭력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추악하고 저질스럽게 남용했다는 점이다.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진심의 소통 따위는 애초부터 안중에 없었다. 지위나 위세가 앞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만 있었을 뿐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비굴한 인간의 전형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그저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경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다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갔던 일인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싫고 귀찮은지 모른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었을 테니까.

 

성폭력 사건으로 추문의 중심에 선 거물 연출자는 사과 기자회견에서 ‘제어되지 못한 더러운 욕망’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가 말한 더러운 욕망은 곧 더러운 권력에 다름 아니다. 같은 권력자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준엄함을 제대로 알고 시대와 세상에 대해 공감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권력을 그처럼 더럽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남이야 어찌 됐든 자기 좋은 쪽으로만 살고 싶은 그들에게는 욕망을 제어하고 싶은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입사 지원자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고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낄낄거릴 수 있는 그 가벼움의 문화다. 왜곡된 권력 관계에 대한 고민을 거부한 인간들의 그 비겁한 가벼움이 걷히지 않는 한 약자들의 고통과 비명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늘 깨어 있지 못하면 우리 모두 잠재적 가해자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 어디에도 함부로 다루어져도 좋은 생명은 없다. 지금 내 마음 어느 한구석에도 언젠가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고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감성의 적폐가 들러붙어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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