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發 쇼크, 여의도도 '미투 폭로' 이어진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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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좌진들 “국회 내 성폭력 만성화된 분위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정무비서 성폭행 파문이 여의도 정가를 휩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 진술이 보도된 직후 본격적인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등 빠르게 선을 긋는 양상이다. 자유한국당은 거세게 비난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정계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파문에 휩싸인 가운데 국회에서 미투 운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정치인들을 긴장시키는 모양새다.

 

 

여의도에 상륙한 '미투'…여·야, TF 구성 등 뒤늦게 부산

 

민주당은 안 전 지사에 대한 출당 및 제명 등 최고 수위의 징계를 추진하며 빠르게 선긋기에 나섰다. 민주당은 3월5일 안 전 지사의 의혹이 불거진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 회의를 연 뒤 징계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안 지사에 대해 출당·제명 조치를 밟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민주당 당헌·당규·윤리규범상 품위유지·성실 의무 위반 등 혐의를 받게 됐다. 

 

한국당을 포함한 야당은 안 전 지사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좌파진영이 집단 최면에 빠져 얼마나 부도덕한 성도착증세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안희정 지사 성폭행 사건 수사는 권력에서 자유로운 특검에서 해야 공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 수사를 요구했다. 민주평화당은 “안희정 지사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고, 정의당은 민주당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3월6일 충남 홍성군 충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02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안희정 전 도지사의 자리가 비어 있다. 안 지사는 6급 여직원의 성폭행 폭로가 나오자 이날 도지사직에서 물러 났다. © 사진=연합뉴스

 

안 전 지사의 공백으로 무주공산이 된 6·13 지방선거 충남지사 선거에도 후폭풍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안 전 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충남지사에 도전했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당분간 예비후보로서의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변인은 “피해 당사자가 얼마나 고통 속에 힘들어 했을지,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며 “도민들께서 받은 상처에 어떻게 사죄드릴지 가슴이 먹먹하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의 트위터 지지자 그룹인 팀스틸버드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활동 종료와 계정 삭제를 선언하며 지지를 철회했다.

 

민주당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폭로에 이어 보좌진의 성희롱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 내 젠더폭력 태스크포스(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당 내 성폭력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해 전담 인력을 둬 상담·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여성 의원들이 여성 보좌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도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TF를 구성할 예정이다.

 

 

선은 그었지만…미투에 벌벌 떠는 여의도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태의 후폭풍에 여의도는 뒤숭숭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 의혹에 연루된 다른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소문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이다. 조만간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여의도에서도 실명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사례가 나왔다. 한 의원실에서 5급 비서관인 J씨는 3월5일 국회 홈페이지에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2012년부터 3년여 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J씨는 “직장 상사 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며 “‘뽀뽀해 달라’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부터 상습적으로 엉덩이를 스치듯 만지거나 팔을 쓰다듬고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음담패설까지 (하는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발언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보좌관은 근무지를 옮겨 다른 의원실에 소속돼 있었지만, 이날 곧바로 면직 처리됐다.

 

국회 보좌진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한다. 국회 내에는 이미 성폭력이 만성화된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상명하복 질서가 명확해 국회 전반에 권력형 성폭력이 뿌리 깊게 퍼져있다는 얘기다. 국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익명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의원실의 구조상 한 번 찍히면 다른 의원실에서도 일하기 힘든 분위기여서 실명 공개를 대체로 꺼리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미투 제보’가 이어지는 건 국회의원과 고위 직급 보좌진이 막강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현재 4급 보좌관 2명, 5급 보좌관 2명, 그리고 6~9급 비서와 인턴을 포함해 대략 9명을 보좌진으로 둘 수 있다. 모든 임면권한이 의원에게 주어져, 예고 없이 해고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정치인의 특성상 의원실 내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도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 문제제기가 쉽지 않다. 실명으로 미투 운동에 참여한 비서관 J씨도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경력이 쌓일 때까지 사직서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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